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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작가가 되기까지 오래 걸린 과정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하기 힘들었던 일부터 했다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내성적인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며 웃는 얼굴 만들기


첫 출근 날, 방송국의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사람들은 바쁜 발걸음으로 지나가고, 인사는 건성으로 흘러갔다. 누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겠지만, 내성적인 나는 그 냉기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리고 금방 결론을 내렸다.


“문제가 있다면… 아마 나겠지.”


그래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첫 번째 과제는 “큰 소리로 인사하기”였다. 3층 라디오 제작부로 출근하던 매일 아침, 계단을 한 칸씩 오르며 나는 마치 경기 전 선수처럼 숨을 고르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세요!”를 내뱉는 그 한 마디를 위해. 지금 돌아보면 참 단순한 일인데 그때의 나는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사실 답은 어린 시절에 있었다.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였다. 엄마는 늘 답답해했다.


“왜 말을 안 하니? 왜 인사를 못 하니?”


심부름에 보내면 상인에게 인사 한마디 못 하고 물건만 들고 돌아오는 그런 아이였다. 사교능력이라는 것이 내겐 먼 행성의 언어 같았다. 그런 내가 사교능력과 외향성이 중요한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건 스스로를 매일 조련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방송작가라는 꿈은 포기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연습했다.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

큰 소리로 인사하는 연습.

억지로라도 웃어보는 연습.


계속하다 보니 이상하게 웃음만큼은 내 몸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미소는 어느새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보도국의 한 국장님은 나를 “늘 웃는 작가”로 기억하셨다.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항상 좋은 에너지를 주는 작가”라며 칭찬하셨다. 미소 하나가 이렇게 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물론 웃는 얼굴은 종종 오해도 불렀다. 만나는 남자들이 “저 여자가 나 좋아하나?” 이렇게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남편이 “웃음 단속 좀 해”라고 농담하던 시절이 있을 정도니까.


그래도 그 작은 노력이 내 방송작가 인생의 첫 문을 슥 밀어 열어준 건 사실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는 진리를 나는 그때 온몸으로 배웠다. 내성적인 나에게 ‘인사’와 ‘웃음’이 바로 그 첫 번째 숙제였다.



하지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건 인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방송작가라고 해서 글만 쓰는 게 아니다. 특히 지방 방송사에서의 작가는 구성 · 취재 · 자료조사 · 섭외 · 편집 · 원고 작성까지 이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 그야말로 ‘방송잡가’ 그 자체였다.


나는 녹음기를 들고 마트로, 거리로, 회사로 혼자 인터뷰 컷을 따러 다녔다. 정말 쉽지 않았다. 번호를 달라며 작업 거는 사람도 있었고, “좀 생각해보겠다”고 말해놓고 한참 기다리게 하다가 그냥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인터뷰를 거절하면 설득하느라 체력이 다 빠져나가기도 했다.


차도 없던 시절에는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버스가 잘 가지 않는 곳까지 몇 킬로를 미친 듯 걸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면 배가 고파서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는데, 그때는 ‘혼밥’ 문화도 흔치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이 좋았다. 그때 먹었던 뜨끈한 순두부찌개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혼자였지만, 그 한 끼는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보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방송작가 일을 해냈던 힘은 ‘글쓰기’보다 ‘사람과 부딪히는 용기’에서 나왔다. 웃으며 다가가는 것, 거절당해도 다시 시도하는 것, 그리고 낯선 곳을 기어코 찾아가는 끈기.



그리고 지금은… SNS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예전에는 사람 한 명을 섭외하려면 현장을 직접 찾아가야 했고, 여러 차례 통화를 반복해야 했다. 인터뷰할 사람 전화번호를 찾는 것조차 하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메시지 한 줄로 대화가 시작되고 DM 하나면 인터뷰가 성사되고 게시글 하나로 신박한 출연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웃음과 용기로 문을 열어야 했다면 지금은 여기에 SNS라는 강력한 도구까지 손에 쥔 셈이다. 우리에게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있다. 세상과 연결되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처음 방송작가를 시작했을 때 SNS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SNS가 없던 시절, 웃음 하나로 문을 열고 땀 흘려 취재했던 경험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살아 있는 자산이다. 그리고 그 자산 위에 SNS라는 새 무기를 얹어 이제는 훨씬 자유롭게 사람들과 연결되며 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내성적인 나에게 ‘인사’와 ‘웃음’은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숙제였다. 그리고 그 작은 노력들은 결국 ‘웃는 작가’라는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었고, 나의 방송작가 인생의 문을 열었다.


지금 나는 그때보다 훨씬 강한 무기를 들고 있다. 바로 SNS라는 새로운 연결의 문이다. 예전보다 소통은 더 쉬워졌고, 세상과의 거리는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웃으며, 걸으며, 글을 쓰며 또 다른 문을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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