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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빛내던 시간, 나를 지킨 선택

누구를 위해 빛낼 것인가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보이지 않던 곳에서 빛나던 시간들


방송작가로 살다 보면 뜻밖의 순간에 새로운 문이 열린다. 교통방송 개국 소식을 들은 것도 그랬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지인이 한번 지원해 보라며 연락을 주었다. 나는 이미 아리랑국제방송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는 두 방송사를 병행해도 된다며 적극적으로 지원을 권하셨다.


큰 기대 없이 이메일로 지원서를 보냈는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희 교통방송 개국 준비중입니다. 경력을 보니 꼭 모시고 싶습니다. 함께 해 주시죠.”


그 짧은 통화 속에서 내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일이 누군가에게 명확하게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하는 확신 같은 것.


며칠 뒤 임시청사로 먼저 와보라는 연락을 받고 PD를 만났다. 그는 구석구석을 직접 안내해주며 옆에 있던 아나운서 후배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함께 개국 준비하는 작가님이에요.”


그 한 마디가 참 고마웠다. 새로움과 감사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아리랑 방송을 정리하고 교통방송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놀라운 인연이 또 이어졌다. 예전 MBC 시절, 나를 “참 잘 웃는 작가”라며 칭찬해주셨던 국장님이 교통방송 사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사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내가 사실 너를 찾으려고 했어. 여기 방송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어서. 근데 연락하려고 하니 이미 와 있더라고. 잘 왔어. 정말.”


그 이후 주요 게스트, 외부 인사가 올 때마다 사장님은 늘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주도 최고의 작가입니다.”


그 말은 과장도 인사치레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의 시간을, 나의 일을, 나의 경력을 정직하게 봐준 결과였다. 오래 쌓아온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라는 이름,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분명한 가치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그 순간들 덕분에 나는 교통방송에서도 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때론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맡으며 피곤함보다 더 큰 보람 속에서 일했다. 아이템을 만들고 섭외를 하고 생방송을 챙기면서도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여기서 제 역할을 하고 있구나. 여기서 나는 제대로 쓰이고 있구나’


빠르게 현장을 파악하고 수많은 생방송을 지나며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역시 잘해”

“믿고 맡기는 작가야”


화면 캡처 2025-11-28 121659.jpg


방송작가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나를 움직이게 한 건 결국 ‘사람’이었다. 방송국 문을 처음 열고 들어섰던 날부터,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선후배들과 함께했다. 혹독하게 일은 가르치면서도 생일이면 케이크를 챙겨주던 PD님, 매일 아침 작은 요구르트를 쥐여주던 아나운서 언니처럼. 나를 믿고 다독이며 함께 성장하게 해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손길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배웠다. 작가란 MC와 PD를 빛나게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자료를 찾고, 새벽에 원고를 고치는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 존중’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흔쾌히, 기쁘게, 그들을 빛내기 위한 일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나를 챙겨준 것이 단지 인간적인 호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그들은 프로그램을 살리는 힘은 좋은 원고와 좋은 인터뷰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열정을 다해 찾은 아이템과 섭외, 원고가 프로그램의 생명줄이 되고 그 프로그램이 MC와 PD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살뜰히 챙겼고 나는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 섭외의 기술, 아이템을 바라보는 시각, 방송의 리듬,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감각까지 경력이 쌓여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늘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매일이 즐거웠다. 힘들어도 기꺼이 버틸 만큼, 그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존중받지 못한 순간, 그리고 나의 선택


하지만 가까워 보이던 관계도 바람 한 줄기면 균열이 생긴다. 새로운 MC와 함께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PD는 중간에서 대화를 잘 조율해 주었고 서로 방식이 달라도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며 1년 남짓은 무난하게 지냈다.


그러다 PD가 바뀌었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리를 잃어갔다. 누구도 내게 직접적으로 잘못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서히 공기가 바뀌었다. 내가 내놓는 의견이 덜 들리는 듯했고, 원고에 대한 신뢰도 예전만 못한 기류가 생겼다.


20년 가까이 쌓아온 경력이 있음에도, 나는 다시 초짜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축소시키는 내 모습이 낯설었고 서글펐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깊은 곳에서 문장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는 공간에서 누군가를 빛내기 위해 애쓰고 있을까?”


작가는 누구를 빛나게 하는 직업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존중을 기반으로 할 때만 가장 아름답게 완성된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은 무모했다.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면 더 머물러야 했고 남편도 일을 쉬고 있던 때라 내 마음속에서는 수십 번의 논쟁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 결국 나를 움직인 건 아주 단순한 문장이었다.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


방송작가는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그 일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 하지만 전제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때.

서로의 자리를 인정할 때.

그 온기 속에서 함께 만들어갈 때.


그 조건이 무너진 순간, 내가 오래 지켜온 일의 의미도 함께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남의 무대를 빛내기 위해 살기보다 이제는 내 사람들, 내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을 빛나게 하는 삶을 살겠다고.


그 선택이 완전히 옳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그날 이후 나는 나를 지키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삶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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