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것
[트레킹에서 만난 친구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국인이면 좋아하는, 아니 한 문장 정도는 외우고 있는 '김춘수 시인의 꽃'. 갑자기 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시가 지금 이야기할 친구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꼬리를 보러 가는 길,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 것은 우리의 가이드인 프라카스만은 아니었다. 카트만두에서부터 꼬부랑길을 한참 지나왔다. 중간에 휴게소도 들렀지만 엉덩이에 느낌이 사라질만한 때, 몸을 주욱 피고 싶어 할 때 즈음 로우 캠프에 도착했다._트레킹의 첫 시작점_ 로우 캠프에서 시작을 알리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꺼낸 플래카드를 주섬주섬 접어 가방에 넣고 있을 때 하얀색 강아지? 개 한 마리가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여기 사니?” 한국말을 당연히 못 알아들을 테지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우리 곁에 흰둥 개가 따라붙는다. 마을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겠지, 적당히 따라오다 돌아가겠지? 싶었던 흰둥 개는 계속해서 우리의 속도를 맞춰 걸었다. 또 어느새인가에는 검둥개도 함께였다.
사진에 보이는 친구들이 바로 앞서 말한 흰둥, 검둥개이다. _우리를 쫓아오는 줄 알았는데, 우리의 하산길에 만난 새로운 트레커들을 따라 바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을 하던 흰, 검둥이들^^_ 길고 긴 트레킹에서 일행이 되어준 이 친구들이 고맙고, 신기했다.라고만 하면 됐지. 왜 서두에 김춘수의 꽃이냐?라고 물으신다면 이들의 이름을 특별하게 불러줬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우리는 흰둥 개에게는 검둥이라, 또 검둥개에게는 흰둥이라 부르겠다고 정했다. 아마 한국에서는 흰둥 개는 흰둥이라 검둥개는 검둥이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낯선 이국이지 않은가?! 흰둥이는 흰둥이가 어떤 모양새를 가진 한국말인지 몰랐을 것이다. 검둥이 또한 검둥이가 어떤 모양새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마음대로 부르면 그게 제 이름이구나 했을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이렇듯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 참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것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처럼 내 맘에 피어 버리는 것처럼. 이미 우리의 마음속(머릿속)에 박혀 버린 오랜 관습과 습과 등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마치 흰둥이를 자꾸만 검둥이라, 검둥이를 흰둥이라 불렀던 우리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