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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구리 Jul 27. 2022

베이스캠프에서의 아침

허락하노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아침밥]


 액자 속 풍경, 내지 윈도 시작화면 같은 풍경이 내 눈앞에 정말로 나타나버렸다.

 우리의 트레킹이 시작될 출발지인 동시에 핫 샤워가 가능한 마지막 캠프인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마지막으로 씻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씻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모두 물에 닿기 싫은 고양이처럼 슬쩍슬쩍 물만 묻혀 얼굴을 닦아 냄으로 단장을 마쳤다.


아침해가 떠 오르면, 알람이 없어도 저절로 일어나곤 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우리가 모여든 시간 새벽 6시.

 이 얼마나 낯 선 광경인가? 한국에서의 내 아침밥을 잠시 돌아보자.  초등학교 때까진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라는 엄마의 목표와 함께 김에 말린 흰쌀밥을 빨간 양념이 된 건조한 반찬들과 함께 먹는 것_실상은 반쯤 감긴 눈들은 무시한 엄마의 강요와 친절이 입 앞에 대기할 뿐_이 나의 아침밥이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무슨 아침이냐며, 새벽까지 공부했다고 역정을 내며 “1분 있다 깨워줘”가 나의 아침밥을 대신했다. 학생 티를 벗은 지 한참 지난 요즈음, 어떻게든 살아내겠다며 사과즙, 양파즙, 클렌즈 주스 등등 각종 즙들과 함께 한 주먹 영양제를 밀어 넣는 것. 바쁠 때는 빈 속에 잠을 깨우겠다고 억지로 마시는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가 아침이 된 지 오래이다.


사진 요청에 흔쾌히 웃어준 주인이자 주방장

 

 다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의 아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제저녁 나는 찌야 와 바나나 팬케이크를 아침으로 먹겠다.라고 주문을 미리 해두었다. _보통 점심이나 저녁은 그 자리에서 주문을 하곤 하는데, 아침은 빠르게 먹고 다시 트래킹 길에 올라야 하기에 전날 저녁 미리 주문을 하곤 했다. 인공적인 빛이 없는 이곳에서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움직여야 하는 시간!!_ 통 실하게 베이지 빛의 반죽이 부풀어 있다. 뜨근한 김이 올라오는 위로는 메이플 시럽이나 꿀이 뿌려져 있겠지? 거기에 얇게 썰린 바나나 슬라이스! 정말 완벽한 아침 아닌가?!


 그. 런. 데?

 내 앞에 놓아진 이 접시는 무엇인가... 메뉴가 잘못 나온 것 같은데, 이건 바나나 전인가....? 통통하긴 커녕 중간중간 시커멓게 탄 부분도 있는 김치전 같은 바나나전, 또 어제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할 정도로 차디차다. 그래도... 또 한참을 걸어야 하고, 비싼 돈을 주고 시켜 놓았으니_물가가 절대적으로 비싼 것은 아니지만, 트래킹에서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모든 것의 금액은 올라간다._ 먹기는 해야 하니 속 안이 비어 가벼운 포크로 쿡 찔러 입 안에 넣어 본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만한 안나푸르나 뷰의 식당


 기대했던 맛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못 먹겠는 것도 아닌 바나나전을 우물거리고 있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다. 눈앞에 저 풍경이 믿기지 않아서 인가? 아니면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엄마의 말이 맞는 걸까?


 그리고 식탁 앞에서 왠지 모를 결의를 했다. 한국에 가면 햇살이 잘 드는 곳으로 식탁의 자리를 옮기겠다고! 밥을 먹을 때 아니 그저 그런 것들을 먹어도 나에게 아침을 대접하겠다고.

 그냥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은 위로를, 어떤 날은 파이팅을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아침을 먹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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