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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구리 May 21. 2022

표식

보는 게 어떠한 거냐에 따라 달라

[표식]


’ 어딘가로 떠나자.’라고 결심을 해보자.

 그때부터 물음표들은 머릿속의 “여행”이라던지, “휴가”와 같은 달콤함이 뚝-뚝- 떨어지는 단어들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여행지의 멋진 포토 스폿, 수많은 맛집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등등 이 먹음직스러운 생각들 중 가장 메인디쉬는 뭐니 뭐니 해도 어디로 갈 것인가? 와 어떻게 갈 것인가? 가 아닐까?


 자,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가지나 되는 메인을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어디로 갈까? 는 정말 잘 구워진 스테이크 같은 질문이다. 보기에도 완벽하게 구워진,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없어질 만한 질문이 아니던가! 가고 싶은 장소, 공간 등운 누구나 하나 즈음 마음속에 품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 그렇다면 다음을 살펴보자. 어떻게 갈 것인가?

 아…. 이건 조금 까다롭다. 목적지가 정해지고 나면 어떻게 그곳까지 갈 것인가? 무엇을 타고 갈 것인가?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인가? 가는 길이 안전한가? 등등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최단코스부터 최소 환승까지 편리하게 나의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는 놀라운 세상이 아니던가?!


 자~~ 아무런 걱정이 없어, 뭐 죽겠냐 싶다니까?라고 자신만만하게 허리에 턱 올려놓은 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겸손을 되찾았다. 열개의 손가락은 앙 다물었고, 수다쟁이들도 입 안이 바싹 마름을 경험한다.


 왜냐고?

 본격적인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신발끈을 동여맸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우리가 목격한 것은?

 “뭐야?! 핸드폰 안되네?!”

 네팔 히말라야 xx번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와이파이도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곳. 설령 구글맵, 네이 지도가 된다 해도, 이 망망대해 같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귀엽고 조그마한 gps 동그라미가 어떤 도움을 주겠느냐만은…

순례자의 길에 조개껍질처럼 히말라야의 이정표 (필름)

 그때부터 내 안의 아니 우리의 모든 믿음은 가이드인 프라카스에게로 향한다. 맹목적인 그의 신봉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의 말이면 물은 포도주가 될 것이오, 떡과 고기가 100명, 천명을 먹여 살릴지어니!!

 믿음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내 발은 그저 그의 뒷모습만 따르면 되었고,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걱정은 글자로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온 털 한 올 한 올에는 이곳의 공기와 온도를 느끼고, 눈동자는 작은 온라인 네트워크가 아닌, 이 거대한 숲 속의 네트워크를 놓칠세라 쫓는다.


 1월의 히말라야. 서늘한 공기를 폐 가득 채워 넣어 마셨다. 나뭇잎 사이를 요리조리 헤엄치던 볕 들은 어느 틈엔가 우리 곁에서 따뜻함을 살랑거린다. 우리 외엔 아무도 없는 이 숲 속은 사무치도록 조용하게 그러나 위엄 있게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이 안에서 그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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