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 나름
[트레킹의 시작]
‘모든 트레킹은 포카라에서 시작되고, 모든 트레킹은 포카라에서 종료된다.’
물론 다른 길이 있을 수 도 있지만, 내가 나름 온라인 상에서 싹싹 긁어모은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포카라는 여행자들이 먼 여정을 떠나기 전 정보를 교환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사는 곳이다. 동시에 여독을 풀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즐거이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_도시의 모습도 그 기능도 반지의 제왕의 리븐델(rivendell)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먹거나 자거나 노래하거나 그냥 앉아서 생각하거나 그 모든 일을 한 번에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완벽한 쉼터_
우리는 포카라로 갈 때에는 지상의 길로, 포카라에서 돌아오는 길은 하늘의 길을 이용하기로 정했다. 자그마한 벤을 타고 하룻밤만에 어쩐지 익숙해진 그 거리, 카트만두를 벗어났다. _카트만두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해보도록 하자:)_
차와 사람, 오토바이로 복잡한 카트만두 시내를 빠져나온 지 한 10분가량 흘렀을까? 간신히 소강상태에 접어든 걱정들이 다시금 고개를 빼어 들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Danger!! 위험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 소 도시들도 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번쩍번쩍한 휴게소들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_물론 겉은 짭조름하고 포슬 거리는 알감자, 지루한 고속도로에서 오독오독 씹기 좋은 고구마스틱, 천안은 아니지만 어디던 그 이름을 앞세운 호두과자 등과 같은 주전부리들도 기다리고 있지!_ 그런 편안한 여행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을 당연하고, 일차 선인지 이차선이지 모를 이 도로를 간신히 달리는 것도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반대편에서도 차가 오고 있다. _이 좁은 길에서 반대편 운전자와 눈을 마주친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내 오른쪽은 낭떠러지인 것은 덤!_ 반대 편이 보이지 않는 코너를 돌 때는 알아서 비키든, 멈추든 해라! 라며 우리의 기사님은 연신 경적을 울린다.
평소에도 앞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나는 기사님의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었는데 _우리는 12인승 벤을 타고 있었는데, 조수석엔 가이드인 프라카스가 앉아있었다._ 한쪽 손은 조수석의 헤드를, 한쪽은 손잡이를 잡은 채로 몸은 앞쪽에 거의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옆쪽 창밖은 바닥이 보이질 않아서 보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상황은 알고 싶었다. 내 눈동자만 앞, 옆, 뒤로 바쁘게 움직이나 싶었는데… 다행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보다. 나뿐 아니라 10쌍의 눈동자가 거친 파도 위에 높여진 조각배처럼 함께 출렁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무려! 히말라야 트레킹인데 편안함과 안락함 정도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아니 마음의 준비, 여행정보 따위는 찾아보지도 않고 이 흔들리는 차 안에 앉아있는 나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너 정말 용감했구나?! 그래도 무식이 답이라고 여기까지 왔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불안의 바다에 표류하던 눈동자들은 어느새 잔잔하게 파도를 유영하고 있었다. 어느새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각자가 좋아하는 신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_사실은 소리를 질렀다고 해도 좋다. 겨울왕국 2의 into the unknown을 10번쯤 따라 외쳤고, 말도 안 되는 락과 올드팝들이 난무했다._ 과거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크웨이 _kwaye,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뮤지션_라는 가수에 단단히 꽂혀있었다. 20살 처음으로 대학 동기들과 먹은 감자탕이 맛있어 한 달 점심이 감자탕이었고, 우리 만날 때마다 파스타만 먹은 거 알아?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한 곳에 포인트를 주면 성에 찰 때까지 우리고 우려먹는 나였다.
그날도 나는 sweetest life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을 몇 번이고 재생해달라고 요구했다. 뒷 좌석에서 이 곡은 누가 신청한 거냐?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타격감 zero’, coldplay의 노래가 끝나고 또다시 ‘elevate the tides, baby’라는 도입부가 흘러나왔을 때 또다시 탄성을 내지른 것은 당연히 나 하나였다.
사실 이 노래는 나의 지리산 종주를 함께 해 준 노래기도 했다. _등산 시 노래를 크게 틀면 안 됩니다. 동물들이 놀랄 수 있어요._ 처음에는 분명 여럿이 삼삼오오 이야기도 하고, 끌어주고 밀어주며 산행을 하지만 산행 후반전이 시작되면 각자의 페이스대로 산을 오른다. 그러다 보면 한 동안 나 혼자 걸어야 하는 시간들이 생기곤 한다. 그때 이어폰에서 혹은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이 노래를 듣곤 했다. 평생 걸을 걸음을 하루에 다 걸어 다시 시작점으로 가는 길. 그 길 안에서도 또 목적지에 닿아서도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끝나가는 여름 그 무렵. 뜨거운 햇살 속에서 끈끈해진 내 몸의 땀을 식혀주던 잠깐의 바람 같은 노래가 바로 그 노래였다.
아마 내일, 내일모레의 나도 걷다 보면 혼자가 될 수도, 아니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오늘을 기억하자.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노래 한 소절에 무거운 마음을 식히고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