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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구리 May 24. 2022

트래킹의 시작

마음먹기 나름


[트레킹의 시작]


 ‘모든 트레킹은 포카라에서 시작되고, 모든 트레킹은 포카라에서 종료된다.’


 물론 다른 길이 있을   있지만, 내가 나름 온라인 상에서 싹싹 긁어모은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포카라는 여행자들이 먼 여정을 떠나기 전 정보를 교환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사는 곳이다. 동시에 여독을 풀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즐거이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_도시의 모습도 그 기능도 반지의 제왕의 리븐델(rivendell)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먹거나 자거나 노래하거나 그냥 앉아서 생각하거나 그 모든 일을 한 번에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완벽한 쉼터_


 우리는 포카라로 갈 때에는 지상의 길로, 포카라에서 돌아오는 길은 하늘의 길을 이용하기로 정했다. 자그마한 벤을 타고 하룻밤만에 어쩐지 익숙해진 그 거리, 카트만두를 벗어났다. _카트만두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해보도록 하자:)_

 차와 사람, 오토바이로 복잡한 카트만두 시내를 빠져나온 지 한 10분가량 흘렀을까? 간신히 소강상태에 접어든 걱정들이 다시금 고개를 빼어 들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Danger!! 위험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 소 도시들도 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번쩍번쩍한 휴게소들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_물론 겉은 짭조름하고 포슬 거리는 알감자, 지루한 고속도로에서 오독오독 씹기 좋은 고구마스틱, 천안은 아니지만 어디던 그 이름을 앞세운 호두과자 등과 같은 주전부리들도 기다리고 있지!_ 그런 편안한 여행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을 당연하고, 일차 선인지 이차선이지 모를 이 도로를 간신히 달리는 것도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반대편에서도 차가 오고 있다. _이 좁은 길에서 반대편 운전자와 눈을 마주친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내 오른쪽은 낭떠러지인 것은 덤!_ 반대 편이 보이지 않는 코너를 돌 때는 알아서 비키든, 멈추든 해라! 라며 우리의 기사님은 연신 경적을 울린다.

 평소에도 앞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나는 기사님의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었는데 _우리는 12인승 벤을 타고 있었는데, 조수석엔 가이드인 프라카스가 앉아있었다._ 한쪽 손은 조수석의 헤드를, 한쪽은 손잡이를 잡은 채로 몸은 앞쪽에 거의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옆쪽 창밖은 바닥이 보이질 않아서 보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상황은 알고 싶었다. 내 눈동자만 앞, 옆, 뒤로 바쁘게 움직이나 싶었는데… 다행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보다. 나뿐 아니라 10쌍의 눈동자가 거친 파도 위에 높여진 조각배처럼 함께 출렁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무려! 히말라야 트레킹인데 편안함과 안락함 정도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아니 마음의 준비, 여행정보 따위는 찾아보지도 않고 이 흔들리는 차 안에 앉아있는 나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너 정말 용감했구나?! 그래도 무식이 답이라고 여기까지 왔구나!!”

이런 눈빛을 가져야만 네팔에서 운전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법 (필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불안의 바다에 표류하던 눈동자들은 어느새 잔잔하게 파도를 유영하고 있었다. 어느새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각자가 좋아하는 신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_사실은 소리를 질렀다고 해도 좋다. 겨울왕국 2의 into the unknown을 10번쯤 따라 외쳤고, 말도 안 되는 락과 올드팝들이 난무했다._ 과거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크웨이 _kwaye,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뮤지션_라는 가수에 단단히 꽂혀있었다. 20살 처음으로 대학 동기들과 먹은 감자탕이 맛있어 한 달 점심이 감자탕이었고, 우리 만날 때마다 파스타만 먹은 거 알아?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한 곳에 포인트를 주면 성에 찰 때까지 우리고 우려먹는 나였다.


 그날도 나는 sweetest life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을 몇 번이고 재생해달라고 요구했다. 뒷 좌석에서 이 곡은 누가 신청한 거냐?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타격감 zero’, coldplay의 노래가 끝나고 또다시 ‘elevate the tides, baby’라는 도입부가 흘러나왔을 때 또다시 탄성을 내지른 것은 당연히 나 하나였다.


 사실 이 노래는 나의 지리산 종주를 함께 해 준 노래기도 했다. _등산 시 노래를 크게 틀면 안 됩니다. 동물들이 놀랄 수 있어요._ 처음에는 분명 여럿이 삼삼오오 이야기도 하고, 끌어주고 밀어주며 산행을 하지만 산행 후반전이 시작되면 각자의 페이스대로 산을 오른다. 그러다 보면 한 동안 나 혼자 걸어야 하는 시간들이 생기곤 한다. 그때 이어폰에서 혹은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이 노래를 듣곤 했다. 평생 걸을 걸음을 하루에 다 걸어 다시 시작점으로 가는 길. 그 길 안에서도 또 목적지에 닿아서도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끝나가는 여름 그 무렵. 뜨거운 햇살 속에서 끈끈해진 내 몸의 땀을 식혀주던 잠깐의 바람 같은 노래가 바로 그 노래였다.


 아마 내일, 내일모레의 나도 걷다 보면 혼자가 될 수도, 아니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오늘을 기억하자.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노래 한 소절에 무거운 마음을 식히고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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