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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만추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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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단 Jun 08. 2020

가을 겨울 사이 서울 #1

관계의 마지막 축제이자 화려한 피날레









#1

가을의 끝이었다.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2월의 딱 중간인 15일, 일요일이었다. 오전 9시 19분. 시외버스에 앉아있던 y는 그저 초조할 따름이었다. 9시 20분 출발하는 서울행 시외버스에 같이 타기로 한 k는 거의 다 왔다는 말만 남기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몰라 차도 준비한 터였다. k가 버스를 놓칠 경우, y는 k를 태우고는 서울로 내리 달릴 참이었다. 주문과도 같은 ‘나는 k다’를 세 번 외치면서. 만반에 만반을 준비한 날인지라 y의 그런 각오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시작부터 망가뜨릴 순 없는 날이었다.

시계의 숫자가 19에서 20으로 넘어갈 찰나. k는 헐래 벌떡 버스에 올라탔다. 이내 k와 y는 눈이 마주쳤다. 이 좋은 날 잔소리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k는 어쩔 수 없이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라오는 소리 없는 외침을 참을 수 없었다. 다만, 주변의 눈들이 한 두 개가 아닌지라 비교적 조용히 외쳤다. “일찍 일찍 다녀요!” k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반성의 신호를 보내고는 이내 예약한 자리에 앉았다. 둘은 묵시적으로 주말마저도 근무 느낌을 내고 싶진 않아 따로따로 앉은 터였다. 막상 잔소리를 내뱉고 나니, 따로 앉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일찍부터 주말만은 잠잠하던 4명의 채팅방은 이 날따라 아침부터 불야성이었다. j는 같이 사는 조카의 칭얼거림을 피해 너무도 일찍 버스에 탄 모양이었고, 모처럼 주말에 고향을 방문한 c도 거리가 거리인지라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j의 도착시간은 대략 우리가 약속한 11시에서 1시간가량 이른 상황이었고, c도 11시가 체 안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팅방은 잠잠해졌다. 다들 쳐자느라. 


그들은 그날, 감사를 무사히 끝낸 기념으로, 그간의 수고를 기념하고자, 그리고 감사 준비기간 동안 EDM으로 다져진 팀워크를 재차 확인하고자 먼 길을 나선 통이었다. 

일명, y표 서울 스파르타 투어. 서울행 버스 안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오늘 서울 날씨는 내내 흐림과 구름 틈 사이 잠깐 햇빛. 그리고 미세먼지는 겁나 많음이었다




#2

눈 떠보니, 톨게이트였다. y와 k를 태운 버스는 이내 서울 센트럴시티의 좁고 어둔 진입로를 통과해 서울 땅에 멈춰 섰다. 모처럼 한성 땅을 밟자 y는 한껏 들떴다. 반면 k는 그렇지 않았다. 허겁지겁 뛰쳐나온 탓에 안면 무장상태(?)가 완전치 못한 탓이었다. k의 애처로운 눈빛은 올리브영을 간절히 찾고 있었고, 엘도라도라도 찾는 양, 간절히 그 곳으로 가던 중에 j와 c도 만났다. 이른 시간 도착한 그들은 미리 약속한 11번 탑승장 앞에서 애처로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y는 꼭 올리브영을 가야 하냐며 투덜거렸지만, k는 비장한 표정으로 무장 상태가 미흡하다며 상가 2층의 올리브영으로 이동했다. 

k는 그곳에서 샘플용 화장품을 이용해 기어이 전투 모드를 완성하였고, 이내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평소에도 종종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래저래 잠이라도 푹 잔 날이면 k는 화장기 없이 출근부터 하고는, 오전 어느 순간부터 풀메 상태로 변신해 있었다. y는 그런 날이나 서울 투어 하던 날이나 똑같이, 당최 이해라곤 하려야 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절레절레. 



#3

화장의 끝은 곧 여행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동의 대부분은 택시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4명 중 두 명은 늙고 지쳤고, 제 아무리 그렇지 않은, 나머지 두 명도 이 과격한 스케줄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소화하는 건 무리였다. 만일 만일 그랬다간, 저녁 무렵에 y는 다수의 동료들로부터 멱살을 잡혀 대롱대롱 매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짝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고로 센트럴시티를 빠져나온 이들은 평소라면 얼쩡거리지도 않을 택시정거장으로 직행했다. 

그날의 계획은 대충 이러했다. 11시 서울 센트럴시티 집결. 점심식사는 이태원의 양식집 비스테까에서 12시까지 간다. 당초 지노스 피자라고 뉴욕식 피자집을 갈 예정이었지만, 재정적인 걱정은 아예 모른 척하고 거하게 지르기로 한 터였다. 1인당 6만 원에 가까운, 호사스러운 메뉴였다. 원래는 스시를 생각했지만, 다들 시간을 맞춰보니 도저히 토요일엔 시간이 나질 않았다. 하필 후보군에 있던 스시집들은 주말은 영업하지 않았다. 위치 또한 문제였다. 하나같이 버스터미널에서 너무 멀었다. 차를 끌지 않는 한, 이동만 하다 끝날 여행이었다. 그래서 나온 최종안은 이태원을 중점으로 두고, 예외적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스펙터클하다 느꼈던 롯데월드의 롯데스카이를 가기 위해 강남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스테까에서 점심을 먹고 파치드 서울이란 카페로 간 뒤, 현대카드에서 운영 중인 바이닐&플라스틱이라는 LP 음악감상실 및 판매 매장을 들려 음악 감상을 한 뒤 서울 브루어리 한남점에 들려 수제 맥주 마시고, 롯데타워로 이동해 노을 지는 서울 야경을 감상하고, 가능하다면 체코 화가 알퐁스 무하의 전시도 본 뒤, 터미널로 돌아와 역전우동을 한 그릇 떼리고는 집으로 궈궈하는 일정이었다. 대략 일주일을 고심한 결과였으며, y 나름 서울 돌아다 좋았던 곳만 고르디 고른, 엄선된 패키지 투어 종합 선물세트였다. 그리고 그 대장정이 이제 시작하려는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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