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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만추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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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단 Jun 08. 2020

가을 겨울 사이 서울 #3

비스테까, 비스테까, 비스테까


#1

차분한 인상이지만, 적잖이 긴장한 듯한 얼굴의 웨이터가 식전 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 그리고 약간의 소금과 후추가 들어있을, 소스도 함께. 소스에 따뜻한 모닝빵을 살포시 찍어 한 입 뜯었다. 허기에 탄수화물은 언제나 진리요 공식이다.

허나 모닝빵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떼기가 들어가 있었고, 일부 식성에 안 맞는 이들은 그 빵을 남겨버렸다. k는 이 비싼 식당까지 와서 취향 탓으로 음식 남기는 꼴(?)을 못 보는 터라 낼름 남은 빵들을 먹어치웠다. 뭔가 찜찜했지만, 크게 게이치 않았다.

입맛만 다시고, 괜히 주변이나 두리번거리며, k의 소개팅 얘기가 길어질 찰나, 다음 음식이 나왔다. 관자요리였다. j야 해산물을 안 먹는 것으로 유명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k도, c도 관자를 싫어한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같이 곁들인 렌틸콩이  탐탁지 않다는 이도 있고, 또 다른 풀떼기인 시금치도 싫다는 이도 있는 것이다. 상상한 그림이 완전히 빠그러지자, y는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성격들도 가지 가지고, 가리는 것도 가지가지구나..’




#2

그렇게 남긴 음식들을 먹어치운 건 결국 y였다. 그건 일종의 편집증 같은 집착이었다.

소싯적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y는 타고난 신체적 결함 때문에 가려야 하는 음식이 많았고, 그 음식들이란 대게 그 나이 때 가장 맛있다고 여기는 밀가루와 고기 그리고 우유 같은 것들로 조리된 음식들이었다. 그런 탓에 y는 금지된 음식에 집착했다. 틈만 나면 그것들을 부모 몰래 먹으려 들었다. 번뇌의 시작이었다. 그것이 라면이라 치자.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계란과 남은 삼겹살, 파를 잔뜩 넣고는 라면을 끓인다. 자유와 환희, 해방감. 그런 것들이 y를 휘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냄비를 비우고 나면, 이내 죄책감으로 몰려온다. 제 아무리 숨겨봐야 부모는 자식의 행각을 눈치챈다. 어쩔 수 없이 잔소리 내지 꾸중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그것들은 먹는 족족이 신체적 질병을 가중시켰다. 마음껏 먹는 순간도, 먹고 난 뒤 순간마저도 마음이란 편할 날이 없었다. y가 가지고 있는 우울 뫼비우스는 그런 번뇌에서 탄생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유난한 성격들도 아마 그런 우울함을 이겨보려는 발버둥의 결과물이었다. 산만하다 싶을 만큼, 다방면 뻗어있는 호기심도 끊임없는 자극으로 괴로움을 감춰보려고 한 것일 게다.

결과적으로 y는 자신에게 금지된 음식만 먹으려 하게 됐고, 그 외의 음식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게 되었다. 그것만큼 낯선 사람도, 새로운 경험도 y에겐 무관한 분야였다.

그런 의미에서 화폐는 참으로 위대하고도, 무서운 것이다. 조직생활을 시작한 y는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특히 어른들은 한 사람이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서 그 사람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이를테면 가리는 것 없이 야무지게 잘 먹는 사람은 일도, 동료와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잘 소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편견과 선입견이다. 그러나 일견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어른들이 말하는 지점은 아마도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서 그 사람이 가진 사고의 유연함과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를 엿보는 것이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자신을 낮추고 맞출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는 엿본단 말이다. 여기서 함정은 그것을 판단하는 이들이 곧 그 유연함과 포용적 자세를 펼쳐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즉 그들은 나름대로 새로 온 사람에 대=해 그럴듯한 평가 기준이 필요했고, 그런 몇 가지 기준 중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가장 자주 볼 수 있고, 원초적이며, 통제하기 힘든 식습관에서 그것들을  찾았다. 얼마나 잘 컨트롤하고 있고, 그 기호가 자신들과 맞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럭비공처럼 어떻게 튈지 모르는 사람에게 수학 공식처럼 일괄적으로 대입하는 건, 그야말로 확신에 찬 무지거나 귀찮음의 소치다. 그들은 거기까진 관심도 없고, 아마 그 지점까지 갈 생각 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그 정도의 사람들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입사한 y는 이 조직에 잘 적응하고 싶었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맞던 틀리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으니까. 그 결과 싫어도 맛있는 척, 맛없어도 맛있는 척, 맛있으면 더 맛있는 척하고 먹었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y도 도무지 아닌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홍어, 멍게, 해삼 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y는 그것들도 아주 오래전에 먹어 본 것이라면, 처음 먹는 것 마냥 먹어 보려 했다. 혹시 그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틈에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 이미 경험해서 익숙한 것이라도 어떤 일을 계기로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좋아하던 사람이 싫어질 수도, 싫어하던 음식이 먹고 싶어 질 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생각의 경계란 보기보다 느슨하다. 그 경계 밖의 환경은 끊임없이 경계를 시험한다. 경계를  견고히 유지하려 하기보단 기꺼이 그 느슨함에 몸을 맡겨 유유히 흘러가는 대로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 굳이 겪을 필요 없는, 고달픈 고통을 어린 나이에 신체적, 심적으로 너무 많이 체험해 버린 y의 결론이었다. 비극이라면 비극이겠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일련의 줏대 없어 보이고, 그저 눈치 보며 상황에 모든 걸 맞추려 하는 y는 여러 상황에서도 소소하게 혹은 막대하게 행복감을 누릴 수 있었다. 평소 기회만 되면 y는 설파한다.


‘박쥐처럼 살자.’




#3

낯빛 굳은 웨이터가 다시 좁은 볼에 회색도 아니고, 갈색도 아닌 기묘한 수프를 내왔다. 그녀는 서빙을 끝낸 뒤, 양송이 스프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막연한 기대에 군침을 다시는 y와 달리 나머지 셋은 일제히 혐오의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버섯 따윈 안 먹는 단다. Y는 허탈을 넘어 전의를 상실했다. 그 와중에 k는 다시 한번 익숙한 그들만의 용어를 시전 했다.

‘수프에서 정수리 향이 나요.’

y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하아아이아아....”






#4

험난한 불호의 코스요리들을 넘어 대망의 고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고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법. 사람은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육식주의자로 똘똘 뭉친, 일종의 동맹체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일치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나 같이 안심을 주문했다.(추가금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아무튼.) 이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은 고깃덩이를 보며 다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기실 이 식당은 스테이크가 맛있다 하여 온 곳이었기에 기대치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고기의 굽기에서 주문한 것과 달리 조금 덜 익거나, 조금 익은 불상사가 벌어졌다. 이내 y는 초조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고기는 위대했다. 자잘한 디테일에선 불합격했지만, 그래도 고기는 언제나 옳았다. 고깃덩어리가 입에 들어가자 대충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y는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앞에 두고 그들의 반응을 일일이 스캔하고 있었다. 눈칫밥도 이런 눈칫밥이 없으리라.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홀을 전세 낸 것처럼 떠들던 그들의 대화도 이젠 잘 안 들릴 지경으로..




#5

가장 먼저 식사를 시작한 만큼 가장 먼저 디저트를 먹었다. 다른 테이블은 이제 샐러드를 먹거나,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직원은 큰 볼에 담긴 티라미수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접시에 얹어줬다. 한 입에 진짜 티라미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이곳은 티라미수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직접 손수 관리해서 만든다는 것을. 심지어 위에 곱게 뿌려진 원두가루마저도 이곳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였다. 잘 볶은 원두의 고소함이 입에서 터졌다. Y는 이내 팀원들의 얼굴 표정을 둘러봤다.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내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랬다. 1인당 6만 원 가까이 투여해 여기까지 왔건만, 이거 싫고 저거 싫고 모두의 감탄사가 일제히 터져 나온 메뉴라곤 티라미수뿐이었다. y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그냥 피자나 먹을걸…. 칼질은 무슨 칼질이냐….”




#6

식사를 마치고 2층 홀에서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내려와 계산대 앞에 당도했다. 22만 원이란 거금을 k가 결재했다. 그날의 총무는 k였다. 그 옆에서 y는 가지런히 진열된 티라미수들을 우두커니 흘겼다. 진정 이곳은 스테이크 맛집이 아니라 티라미수 맛집이었다, 진열장까지도. 일각 y는 이 진정한 티라미수 맛집을 선물용으로 사야 하나 라는 생각에 잠겼으나, 이내 지금부터 선물을 샀다간 어깨가 내려앉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그리고 다시 상기했다.

‘티라미수 맛집. 티라미수 맛집..’

찬바람이 불어오는 자동문을 통과해 나오며, 다들 한 마디씩 소회를 밝혔지만, 공통된 의견은 단 하나뿐이었다.

‘티라미수는 맛있네’

y는 말했다.

“아니 이럴 거면 여기까지 왜 오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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