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만추 1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단 Jun 08. 2020

가을 겨울 사이 서울 #5

바이닐&플라스틱, 서울브루어리 한남



#1

바이닐&플라스틱. 현대카드에서 운영하는, 회원 전용 바이닐 체험관 겸 음반숍이다. 음반숍이야 당연히 누구나 입장 가능하고 체험관도 카드 한 장당 최대 두 명까지 입장할 수 있었다. 마침 y와 k가 각각 한 장씩 현대카드가 있었고, 그곳은 파치드 서울에서 차로 고작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컨테이너 박스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한 거대한 구조물에 통유리로 안이 훤히 보이는, 새카만 건물 앞에서 택시는 멈춰 섰다. 

바이닐 체험에 앞서 그들은 바이닐과 LP 그리고 cd와 턴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를 파는 음반숍에 들렀다. y는 진열된 바이닐을 하나 집어 들었다. The verve의 3집 앨범 ‘urban hymns’ 20주년 기념 바이닐이었다. 가격은 무려 5만 원. y는 살포시 바이닐을 제자리로 돌려놓고는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이내 바이닐&플라스틱은 공중화장실로 변모했다. 4명은 나란히 화장실 앞에 줄을 섰고, 급한 나머지 먼저 들어간 뒤 감감무소식인 일행을 두고 큰 일인지 작은 일인지, 아님 화장을 다시 하는 건지 따위의 내기를 걸며 킬킬 거렸다. 불행히도 화장실 안이 방음 안되는 곳이라는 건, 안에 들어가봐야 알 수 있었다. 안에선 밖의 무리가 당사자 없을 때 무슨 얘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호박씨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쥐 죽은 듯이 까야하는 것이다.

음반숍을 나온 체험관으로 이동했다. 카페 겸 데스크인 1층에서 일행은 당당히 카드를 내밀고는 가방 일체를 보관함에 맡기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의 바이닐 체험관으로 입장했다. 거대한 바이닐 컬렉션이 2층 높이의 공간에 가득했다. 고개를 젖히지 않고는 그 끝을 올려다볼 수 없다. k와 c는 마치 명품 브랜드 전시관에 온듯한 표정으로 듣고 싶은 바이닐을 찾았고, 이내 소나무스런 취향 아니랄까 봐 k는 두아 리파를, c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바이닐 한 장 씩을 각각 들고는 턴테이블 앞에 경건한 자세로 마주 앉았다. 한편, j와 y는 턴테이블 체험 장소 건너편에 위치한 소파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해 여름, y는 바이닐 체험관을 다녀간 바 있었고, j는 조카에게 들려줄 동요 말고는 대중음악에 딱히 관심 없었다. 그들은 다음 스케줄을 걱정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제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고,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한 번에 30분씩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노래를 다 들으면 거진 3시고 한강진역 근처에 수제 맥주집에 가서 맥주 한잔 걸치고, 해지기 전까지 롯데타워로 이동해야 했다. 보통 5~6시면 노을이 지는데, 서울이라 차가 밀리는 것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촉박했다. 아니나 다를까 c와 k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j와 y는 갑작스러운 음악 감상의 종결에 당황했다. 둘은 바이닐 한 장당 한곡씩 총 둘이 한곡씩 듣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다음 휴가 때 와서 들으면 좋을 것 같다는 후기와 함께. 이유야 어쨌든 빠른 종결과 다음 행선지로의 진행은 스파르타 투어를 지향하는 y에겐 좋은 일이었다. 참고로 y는 서울 오면 식사도 거르고 돌아다니곤 했다. 

다음 행선지는 서울 브루어리 한남점이었다. 직접 오너가 만드는 맥주를 미슐랭 출신 셰프가 만드는 안주와 함께 마셔볼 수 있는, 펍이었다. 그들은 지체 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2

그들은 이름도 생소한 나라들의 대사관 공사로 가득한 언덕길에 내렸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청국장집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브루어리는 청국장집 위에 있었다.

스탠리스 각관으로 만든 듯한 계단을 올라 두툼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목재로 인테리어를 가득 채운, 세련된 가정집 같은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손님들로 가게는 시끌시끌했고, 일행은 좁은 4인용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들은 전혀 배고픈 줄 몰랐지만, 수제 맥주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다시 눈빛은 다시 빛났다. 메뉴판을 공부하듯이 훑으며, 맥주와 트러플 오일향 감튀를 주문했다.

한쪽 벽면에 줄 지어 늘어선, 제범 폼나는 맥주 탭에서 직원이 맥주를 담아냈고, 이내 감튀가 나오고, 그들은 이날을 위해, 서로를 위해 건배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인스타용 사진을 찍었다. 마셨다. 떠들었다. 다시 인스타용 사진을 찍고, 맥주를 마시고, 감튀를 먹고, 떠들었다. 다 마시면 새로 맥주를 주문했고, 이내 새로운 잔이 서빙됐다. 

그 와중에도 k는 마치 그 올곧은 취향을 대변하듯이, 하나 같이 작은 와인 잔에 특이한 색깔의 맥주를 주문했고, k는 양띠기가 왜 이렇게 작냐며 아쉬워했다. 다만 그곳은 양띠기만 작은 곳이지, 가격은 양띠기 큰 곳이었다. 맥주는 한잔 당 거의 9천 원에서 1만 원을 넘는 것이었고, 여기에 그나마 싸고 양 많아 시킨 감튀도 트러플 오일이 얹어진 것이라 1인당 고작 2잔씩 맥주를 마셨음에도 거의 10만 원 가까운 영수증 가격에 다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전 17화 가을 겨울 사이 서울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