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의 얼굴: 두려움, 분노

1. 두려움

두려움, 분노, 열등감, 무기력, 억울함, 우울함. 피해의식의 여섯 가지 얼굴이다. 이 얼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두려움의 얼굴을 살펴보자.


돈에 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재길’은 가난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러 나간 건지 빚쟁이들을 피한 건지 늘 곁에 없었고, 남겨진 ‘재길’과 엄마는 모텔을 전전해야 했다. 옆방 연인의 신음소리가 여덟 살 아이의 귀에 들릴까봐 엄마는 흐느끼며 ‘재길’의 귀를 막아주었다. ‘재길’은 돈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이 생겼다. “비참하게 살지 않으려면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길’은 대기업에 취직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이룬 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재길’은 쉴 줄을 몰랐다. 아니, 쉴 수 없었다. 직장 일은 물론이고, 주식에, 부동산 투자에, 경매까지 하며 늘 정신없이 지냈다. “재길 씨처럼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도 없어.”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 무색할 정도로, ‘재길’의 몸과 마음은 잿빛이 되어갔다.


‘재길’은 왜 그리 돈을 벌려고 했던 걸까? 두려움 때문이다. 돈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 ‘재길’은 통장에서 크고 작은 돈이 빠져나갈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였다. 왜 그랬을까? ‘재길’은 이미 적지 않은 돈을 모아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일이 ‘재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통장에서 크고 작은 돈이 빠져나갈 때마다 ‘재길’은 다시 음습한 모텔에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던 아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두려움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발생한) 두려움에 휩싸일 때 우리는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저릴 만큼 두려운 대상(가난)이 있을 때, 자신을 과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길’은 알고 있을까? 그 두려움 때문에 ‘재길’ 역시 자신이 그리도 미워했던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사업 실패로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아버지와 밤낮없이 돈을 벌려고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정말 다른 아버지일까? 피해의식이 두려움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 때 불행의 전주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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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분노


성gender에 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민선’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았다. 오빠와 남동생은 통금도 없고 외박도 마음대로 했지만, ‘민선’은 그러지 못했다. ‘민선’은 늘 열 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했고, 외박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뿐인가?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오빠와 남동생을 우선시했고, ‘민선’에게는 항상 양보를 강요했다. “엄마 없으니 오빠 밥 좀 챙겨줘라.” 시험 기간에 공부하고 있던 ‘민선’은 아버지의 말에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갔다. ‘민선’은 성차별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살지 않으려면 무조건 남자랑 맞서 싸워야 해!”


‘민선’은 대학에 입학하며 독립을 했다. 독립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민선’은 이제 더 이상 부당한 억압과 차별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던 ‘민선’은 매혹적인 남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행복할 줄 만 알았던 연애는 종종 삐그덕댔다. “오늘 늦었으니까 조심히 들어가.” “왜? 남자들은 괜찮고, 나는 여자라서 조심히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야?” ‘민선’은 사소한 일로 남자 친구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가부장적인 집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민선’은 점점 불행해져 갔다.


‘민선’은 왜 불행해졌던 걸까? 분노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 ‘민선’은 남자 친구의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말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민선’은 이미 독립해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일이 ‘민선’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 친구의 걱정과 배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민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부당하게 차별받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분노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발생한) 분노에 휩싸일 때 우리는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대상(성차별)이 있을 때, 그 대상과 유사한 모습만 보여도 자신을 과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민선’은 알고 있을까? 남자 친구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분노만 보고 있는 ‘민선’의 얼굴은, ‘민선’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가부장적 질서만 보고 있었던 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민선’은 분노에 휩싸여 그리도 원했던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피해의식이 분노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 때, 불행의 전주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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