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의 두 종류, 강박증과 히스테리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or “나만 항상 눈치보고 살고 있어!”
피해의식은 다종다양하다. 그 다종다양한 피해의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는 피해의식이고, 나머지는 “나만 항상 눈치보며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이다. 무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전자는 ‘강박증’적 피해의식으로, 후자는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은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신경증’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간의 무의식은 ‘신경증’의 형태로 드러난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의식되지 않기에 그 자체로는 드러날 수 없다. 그래서 무의식은 항상 ‘신경증’의 형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무의식의 영향 아래 놓인 인간은 저마다의 ‘신경증’을 갖고 있다. 이 ‘신경증’은 무엇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받으며 애정의 결핍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부터에게 버려졌거나 선생에게 이유 없이 뺨을 맞았다든가 하는 상처들은 애정의 결핍을 촉발하게 된다. 이런 결핍 때문에 신체적 이상 증상(틱 장애‧말더듬증‧거식증‧구토 등등) 혹은 정신적 이상 증상(불안‧공포‧건강염려증‧불면 등등)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경증’이다.
쉽게 말해, ‘신경증’은 무의식의 표현(외침)인 셈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이어받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은 이런 ‘신경증’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강박증, 히스테리, 공포증이다. (공포증은 상대적으로 예외적인 경우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이를 통해 피해의식에 대해 깊이 고찰해볼 수 있다.
‘강박증’은 무엇인가?
먼저 강박증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정신분석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브루스 핑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강박증자는 대상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며, 타자의 욕망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강박증자)에게 상대방은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일 뿐이다. 『라캉과 정신의학』 브루스 핑크
강박증은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며, 그 상대의 욕망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강박증자들은 상대를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쉽게 말해, 강박증자는 구호는 “내 맘대로 할 거야!”다. 강박증자는 자기의 욕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타인의 욕망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강박증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날까? 청결강박, 계획강박, 정리강박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강박적으로 손을 씻거나 샤워를 하고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또 자신이 계획한 일에 차질이 생기거나 변동이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공간은 자기만의 규칙으로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이는 자기 주위에 있는 대상을 자기 것으로 간주하려는 마음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그런 강박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강박증자는 상대방을 언제나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히스테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히스테리는 무엇일까? 브루스 핑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히스테리 환자는 강박증자처럼 대상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간주하기보다, 타자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아내려 한다. 그녀는 스스로 타자의 욕망을 지속시킬 수 있는 특정한 대상이 되려고 한다. 『라캉과 정신의학』 브루스 핑크
히스테리는 강박증의 반대 구조다. 히스테리 환자는 상대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아내려고 하고, 자신이 그 상대가 욕망하는 특정한 대상이 되려고 한다. 쉽게 말해, 히스테리의 구호는 “네 맘대로 해.”다. 히스테리는 자신의 욕망보다 언제나 상대의 욕망에 집중하려는 마음이다. 이런 히스테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날까? 과도한 눈치보기, 지나친 관심 요구, 지나친 감정기복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히스테리는 타인의 욕망에 나를 맞추려는 신경증적 증세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더라도 과도하게 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이 타인의 욕망에 잘 맞추었는지 확인될 때만 불안이 사라지기 때문에 타인의 관심을 지나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감정기복 역시 마찬가지다. 만나는 이들마다 상대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감정기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즐거운 이들을 만나면 상대의 즐거움에 나의 감정을 맞춰야 하고, 화난 이들을 만나면 상대의 분노에 나의 감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히스테리”라는 말의 일상적 쓰임의 이유를 알 수 있다. “히스테리 좀 부리지 마!” 이처럼, 우리는 ‘히스테리’라는 말을 신경질‧짜증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적확한 쓰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틀린 쓰임이라고 볼 수도 없다. 신경질‧짜증을 의미하는 “히스테리”는 정신분석의 한 양상인 ‘히스테리’의 결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히스테리’ 상태를 긴 시간 겪으면 나의 욕망은 뒤로한 채 타인의 욕망에만 맞추느라 신경질‧짜증이 난 상태가 된다.
‘강박증’적 피해의식
이제 우리는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강박증’적인 피해의식은 무엇일까? 직장 혹은 일에 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강모’는 직장에서 항상 화가 나 있고 그 때문에 종종 무기력해진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강모는 직장에서 자신이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강모’의 피해의식은 전형적인 ‘강박증’적 피해의식이다. 그는 왜 피해의식에 휩싸였을까?
직장에서 ‘강모’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일도 많았지만 ‘강모’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던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강모’는 직장 혹은 일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을까? 바로 ‘강박증’ 때문이다. ‘강모’는 ‘강박증’적이다. 직장에서 업무처리도 자신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어야 직성이 풀리고, 집에서도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정리정돈을 해야 불안하지 않다. 그러니 ‘강모’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열 번 중에 아홉 번이 자기 마음대로 업무처리‧정리정돈이 되어도, 한 번만 자기 규칙이나 계획에서 틀어지면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강박증’이 심한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도 항상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참고 있다’고 믿는다. ‘강모’를 옭아매는 것은 직장도 가정도 아니다. 모든 것을 자신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증’적인 마음이다. 이처럼, 강박증적인 이들은 대체로 강박증적 피해의식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히스테리’적 피해의식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은 무엇일까? 비난에 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나연’은 늘 두렵고 억울하다. 그 때문에 종종 우울함에 휩싸인다. “나만 눈치보며 살고 있어!” ‘나연’은 세상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비난할 것이기 때문에 늘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연’의 피해의식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나연’을 비난한 적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연은 비난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을까? 바로 ‘나연’의 ‘히스테리’ 때문이다.
‘나연’은 ‘히스테리’적이다. “부장님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 ‘나연’은 직장에서 늘 눈치를 본다. 자신 때문에 부장님이 기분이 안 좋은지 눈치를 보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조심하지 않아서 미움을 받을까봐 또 눈치를 본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연인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늘 연인의 눈치를 본다. “오늘 피곤해 보이는데 괜히 만나자고 했나?” “뭘 먹으러 가자고 해야 하지?” “영화 보러 가자고 하고 싶은데 싫어하진 않을까?”
이는 배려심이 아니다. 배려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나연’은 전혀 기쁘지 않다. ‘나연’은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보며 살아야 하는지 답답하고 억울하고 짜증나고 그 때문에 우울하다. 이것이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이다. ‘히스테리’가 심한 이들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도 항상 ‘나만 눈치보며 살고 있다’고 믿는다. ‘나연’을 옭아매는 것은 타인이 아니다. 늘 타인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히스테리’적인 마음이다. 이처럼, ‘히스테리’적인 이들은 대체로 ‘히스테리’적인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