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혹은 ‘꿈’에만 서 있는 사람은 없다.
‘일상(습관기억)’에 쏠려 사는 것도, ‘꿈(순수기억)’에 쏠려 사는 것도 건강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일상’과 ‘꿈’ 사이에서 균형 잡으며 살아가는 일일 겁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러나 이것들은 … 사실 결코 도달되지 않는 두 극단적 한계이다. 적어도 인간에게서는 순전히 감각-운동적 상태도 없고, 모호한 활동성의 기초도 가지지 않은 상상적 삶도 없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인간은 아메바와 같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순전히 감각-운동적 상태(습관기억) 상태”로만 존재할 수 없어요. “나는 무조건 돈만 벌면 돼” 간혹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죠. ‘나는 꿈 같은 거 상관없고 무조건(습관적)으로 돈만 벌면 돼’ 흔히 하는 말이잖아요. 불안해서 하는 말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불안으로 인해 발생한 자기기만 혹은 자기무지의 말이에요.
이들은 단지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이들이거나 혹은 돈이 충분하면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 모르는 이들일 뿐인 거죠. 돈을 벌다가 지치거나, 돈을 어느 정도 벌게 되면 그들 역시 “상상적 삶”을 생각하게 돼요. ‘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 사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소설·음악·그림)하고 싶었는데’ 이런 ‘순수기억’이 꿈틀거리게 되죠.
반대로 인간은 ‘순수기억’ 상태로만 존재할 수도 없어요. “나는 모든 현실적인 조건을 넘어서서 낭만적인 삶을 산다.” 간혹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죠. 자신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다 거짓말이에요. 타인을 속이거나 자신마저 속였거나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 거짓말이에요.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말이에요. 그 사람들도 다 계산해요.
물론 그 계산이 조금 모호한 이들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다 계산해요. 자기 통장에 돈이 없으면 부모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다 계산해요. 그게 인간이에요. 자신이 꿈꾸는 어떤 “상상적 삶”을 살든 간에, 거기에는 최소한의 “모호한 활동성의 기초” 즉 ‘습관기억’은 있게 마련이에요. 당장 내일 먹을 게 없는데, ‘꿈’만 꾸는 사람은 없죠. ‘꿈’을 꾼다는 것은 최소한 어디에 기대될 데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인 거예요. 진짜 바닥까지 가면, ‘습관기억’을 소환하게 돼요.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요.
‘습관기억’과 ‘순수기억’의 왕복
정상적인 심리적 삶은 그 두 극단 사이를 왕복한다. 한편으로 감각-운동적 상태 S는 자신이 그것의 현실적이고 행동적인 극단에 불과한 기억에 방향을 정해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억 자체가 우리 과거 전체와 함께 자기 자신의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현재 행동 속으로 삽입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정상적인 심리적 삶”이란, ‘순수기억’과 ‘습관기억’이라는 “두 극단 사이를 왕복”하는 상태인 거예요. ‘습관기억(S)’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행동해야 할 방향을 정해주죠. 다른 한편으로 ‘순수기억’은 “우리 과거 전체와 함께 자기 자신이 가능한 많은 부분을 현재 행동 속으로 삽입”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해요.
여기저기 돈을 빌리며 유학을 준비하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학 시절, 돈이 없던 제가 건넨 200만 원이 너무 미안해서였을까요? 그녀는 유학을 포기하고 개인레슨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삶이죠. ‘습관기억’을 통해 현실적으로 해야 할 행동의 방향(아르바이트)을 정해야 하죠. 하지만 그 방향이 완전히 ‘습관기억’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도 건강한 심리적 삶은 아닐 겁니다.
만약 생활이 어려워진 그녀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전혀 관심이 없는 일을 하거나 혹은 최소한 존엄조차 지킬 수 없는 일을 한다면, 그것 역시 건강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녀가 많은 일 중에서 개인레슨을 선택한 것은 ‘순수기억’이 작동했기 때문이죠. 자신이 “과거 전체와 함께 자기 자신이 가능한 부분을 현재 행동 속에서 삽입”했기 때문에 다른 일이 아닌 첼로 개인레슨을 하게 된 것일 테죠.
기억대로 살 수밖에 없지만, 기억은 생성할 수 있다.
그런 이중적 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무한한 다수의 가능한 기억의 상태들, 즉 우리 도식의 절단면 A’B’, A’’B’’로 그려진 상태들이 나온다. … 그것들은 그만큼의 우리 과거의 삶 전체의 반복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실 ‘습관기억’도, ‘순수기억’도 아니죠. 그 극단 사이에 있는 “무한한 다수의 가능한 기억의 상태(원 A′B′·A″B″·A‴B‴…)”, 즉 ‘상기억’들이죠. 이 ‘상기억’들은 앞서 말한 ‘습관기억’과 ‘순수기억’의 이중적 노력에 의해서 발생하게 되는 거죠. 바로 그 수많은 ‘상기억’의 평면들이 바로 “우리 과거의 삶 전체가 반복”된 것이죠. 우리가 “정상적인 심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무한한 다수의 가능한 기억 상태(상기억)”로 산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수의 가능한 기억 상태”라는 말이죠. 우리는 기억대로 살 수밖에 없어요. 과거 기억(가난·상처)에 의해서 현재 행동(노동·냉소)을 선택할 수밖에 없죠. 누구도 이 삶의 진실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과거에 의해서 이미 모두 결정되어 있는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의 기억은 “다수의 가능한 기억 상태”니까요. 매 순간 우리의 기억은 ‘습관기억’과 ‘순수기억’이 만들어내는 “이중적 노력”에 의해서 무한한 기억이 끊임없이 생성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억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각각의 절단면은 밑면에 가까운가, 꼭짓점에 가까운가에 따라 더 풍부하거나 덜 풍부하게 된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우리의 삶을 정해진 대로 끌고 가는 건 ‘습관기억’이죠. 반면 그 정해진 삶에서 틈을 내어 다른 기억으로 생성해 내는 것은 ‘순수기억’이죠. 그래서 “각각의 절단면(상기억)”이 밑면(순수기억)에 가까워지면 삶은 “더 풍부하게” 되고, 꼭짓점(습관기억)에 가까워지면 “덜 풍부하게” 되는 거죠. 이제 건강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죠. ‘순수기억’, 꿈을 향해 가야 해요. ‘순수기억’에 가까워질수록 삶은 더 풍부해질 테니까요.
물론 우리의 기억이 ‘순수기억’에 너무 쏠려 삶이 산만하다면, ‘꿈’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일상’을 챙겨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이 ‘습관기억’에 쏠려 삶이 너무 협소해진다면, ‘순수기억’을 향해 가야 해요. ‘일상’(직장)에만 매여 있다면, 먼지 쌓인 서랍을 열어 ‘꿈’을 찾아 나서야 해요. ‘습관기억’과 ‘순수기억’을 오가는 여행 속에서 우리의 수없이 새로운 ‘상 기억’들이 형성될 거예요. 그렇게 우리네 삶은 더욱 풍부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