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불행하거나 행복한 이유
베르그손은 ‘역 원뿔 도식’을 설명한 후에 ‘삶의 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즉 삶에 ‘주의’를 기울여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죠. 우리네 삶이 불행 혹은 행복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흔히 불행 혹은 행복할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믿죠. 이는 대표적인 삶의 오해예요. 실제 우리네 삶에서 불행과 행복은 대부분 ‘주의’에 의해서 결정되죠.
어느 날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해 봐요. 그는 불행하겠죠. 그렇다면 그의 불행은 불행할 사건(암)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자신의 삶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죠. 술, 담배, 불규칙한 생활, 나쁜 식습관, 탐욕, 명예욕 그리고 그로 인한 혼란한 마음 등등. 그의 암은 아주 긴 시간 있어 왔던 삶의 문제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일 뿐이죠.
반대로 자신 삶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는 이들이 있죠. 이들은 생계가 조금 불안하더라도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 회사를 그만둘 것이며, 일상이 바쁘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어야 주어야 할 때 그렇게 하며 살 거예요. 이들의 삶은 점점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커지겠죠. 이들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은 하고 싶지 않은지에 대해서 늘 ‘주의’를 기울여 답해보려 하기 때문이죠. 이런 이들의 삶이 점점 행복으로 가닿게 될 것이란 건 자명한 일이죠.
‘주의’를 기울이는 삶은 ‘결정’하는 삶
삶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먼저 삶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봐요. 삶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모습이 무엇일까요? 바로 결정장애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일,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죠.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결정을 늘 유보하면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죠.
그들은 왜 결정하지 못하는 걸까요? 삶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결정을 회피하기 위해 삶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결국 삶에 ‘주의’가 없어서 결정을 못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 삶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에 상황에 맞게 적절한 ‘결정’을 내린다는 말과 동의어일 겁니다. 베르그손은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이 문제인가? 정신은 자신의 경험 전체를 우리가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모아서 조직화하면서 행동들로 집중시킬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우리네 삶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중요한 문제죠. 이런 ‘결정’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촉발되는 걸까요? 우리의 “정신은 자신의 경험 전체”를 갖고 있는데, 이 방대한 데이터를 각자의 “성격 속에 모아서 조직화하면서 행동”을 하게 되죠. 바로 이것이 ‘결정’을 내리게 되는 과정이에요.
다혈질인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이 있어요. 두 사람 모두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이들은 각각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다혈질인 사람은 ‘욱’하는 마음에 사표를 던질 것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다른 직장을 이곳저곳 알아보지만 결국 사표를 내지 못하게 될 겁니다. 이는 둘이 가진 경험의 전체가 달라서 발생한 차이인 걸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 둘 모두에게는 어떠한 결정이든 내릴 수 있는 충분한 ‘기억’(순수 기억)이 있을 테니까요.
이 두 사람이 내린 ‘결정’의 차이는 각자의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각자의 ‘성격’이 ‘전체 기억’ 속에서 특정한 기억을 어떻게 “모으고 조직화”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성급하게 사표를 쓰고, 누군가는 어영부영 회사를 계속 다니게 만드는 거죠. 그 조직화가 결국 어떤 행동을 ‘결정’하게 만드는 거죠. 쉽게 말해, 다혈질인 혹은 우유부단한 사람은 자신의 ‘성격’ 속에서 특정한 ‘기억’을 “모으고 조직화”해서 그에 합당한 ‘결정’(성급함·주저함)을 내리게 되는 거죠.
결정=성격+기억+현재 상황
거기서 당신은 그 행동들에 질료의 역할을 하는 과거와 함께 인격이 그 행동들에 새겨넣는 예견되지 않은 형태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행동은 현재 상황, 즉 시간과 공간에서의 몸이 어떤 특정한 위치로부터 나오는 정황들의 총체에 들어맞도록 이루어질 때만 실현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과거(기억)는 “행동들에 질료(재료)의 역할”을 하는 거죠. 어떤 재료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기억’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행동(결정)은 달라지게 마련이죠. 가난한 과거를 가진 이는 돈을 아끼는 행동(결정)을 쉽게 하고, 부유한 과거를 가진 이는 그런 행동(결정)을 좀처럼 하지 않죠.
그런데 유사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결정’을 하기도 하죠. 이는 ‘성격(인격)’ 때문이죠. 즉 자신의 ‘성격’이 과거(기억)에 의해서 촉발될 그 행동(결정)들 속에 “예견되지 않은 형태”를 새겨넣을 수 있기 때문이죠. 즉, ‘결정’은 ‘성격’과 ‘기억’이 중첩되어 이뤄지는 거죠. 그런데 ‘결정’은 이 두 가지 요소(성격·기억)의 중첩만으로 확정되지 않죠.
실제로 ‘결정’이라는 것은 “현재 상황, 즉 시간과 공간에서의 몸이” 처한 특정한 정황들에 들어맞게 될 때 실현되는 것이죠. 즉 ‘결정’은 ‘성격’과 ‘기억’, 그리고 그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의 중첩으로 이뤄지는 것이죠. 이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잖아요. 아무리 다혈질인 사람이라도 처자식이 있다면 쉽사리 퇴사를 결정할 수 없고, 아무리 우유부단한 사람일지라도 당장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면 당장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