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X’에게 끌리는가?
이제 베르그손은 ‘기억의 현실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기억의 현실화 운동’이 뭘까요? 말 그대로 과거의 어떤 ‘기억’이 현재 특정한 ‘운동’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과거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있다면, 현재 자전거를 타는 ‘운동’을 할 수 있잖아요. 이 ‘기억의 현실화 운동’은 미스터리한 삶의 문제 하나와 연결돼요.
‘나는 왜 X에게 끌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기억의 현실화 운동’에 있어요. 어떤 대상에게 끌리게 되는 경험이 있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유독 끌리는 한 사람이 있죠. 왜 그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요? 이는 우리에게 있는 어떤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기억’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죠. 즉, 이는 ‘기억의 현실화 운동’으로 인해 발생한 일인 거죠.
진정한 문제는, 어떤 측면에서는 모두가 현재의 지각을 닮고 있는 무한한 기억들 중에서 어떻게 선택이 이루어지는지, 왜 그것들 중의 하나만이-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의식의 빛으로 나타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왜 ‘X’에게 끌렸을까요? 달리 말해, “왜 그것들(많은 사람들) 중 하나(X)만이 의식의 빛으로 나타나는” 걸까요? 이는 자신의 특정한 과거 ‘기억’이 ‘X’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 중 ‘X’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수밖에 없는 ‘기억’이 자신한테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질문이 있죠.
‘왜 바로 그 기억이 소환되었는가?’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끌릴 수 있는, 즉 “현재의 지각을 닮고 있는 무한한 기억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중 하필 ‘그’ 기억이 선택되어 “다름 아닌 바로 이것(X)”에게 끌리는 되냐는 거죠. 이것이 진정한 문제인 거죠. ‘기억의 현실화 운동’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려는 거죠.
기억의 상하 운동과 회전 운동
베르그손은 ‘기억의 현실화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기억의 상하 운동’과 ‘기억의 회전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기억작용은 두 개의 동시적인 운동에 의해서 현재 상태의 부름에 답한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우리의 “기억작용은 두 개의 동시적인 운동에 의해서 현재 상태의 부름에 답”하게 됩니다. 베르그손이 말하는 “두 개의 동시적인 운동”은 ‘기억의 상하 운동’과 ‘기억의 회전 운동’이에요. 즉 우리가 많은 대상 중 ‘X’에게 끌린다면, 이는 ‘기억의 상하 운동’과 ‘기억의 회전 운동’에 의해서 “현재 상태의 부름에 답”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이 두 가지 기억의 운동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먼저 ‘기억의 상하 운동’부터 알아봐요.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기억의 상하 운동’은 ‘강한 빛’을 비춘다.
하나는 기억이 전체로서 경험을 맞으러 나아가서, 나누어지지 않으면서도 그처럼 행동을 위해 더 응축되거나 덜 응축되게 되는 상하 이동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기억의 상하 운동’은 ‘전체 기억’이 경험을 맞이하러 나가서 특정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상황을 의미해요. 배가 너무 고파서 짜장면을 먹었다고 해 봅시다. 수많은 음식이 있는데 왜 하필 짜장면에 끌렸던 걸까요? 달리 말해,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행동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요? ‘역 원뿔 도식’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습관 기억(신체)’으로서 세계를 ‘지각’하죠. 즉 습관(신체)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세계와 접촉하죠. 이는 ‘습관 기억’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특정한 대상에 끌릴(먹을) 준비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습관(신체)화되어 있다면, 이는 세계 속에서 짜장면이 ‘지각’될 때마다 그것을 먹어야 한다는 강한 끌림이 촉발된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배고플 때 (다른 음식이 아닌) 짜장면이 생각나고 그것을 먹는 행동은 자신의 ‘기억(의식의 빛)’이 짜장면을 비췄기 때문이잖아요.
이러한 내적 과정은 ‘꼭짓점 S’(습관 기억=신체)에서 빛이 나와 세계(짜장면)에 빛을 추는 형상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어요. ‘원뿔 AB’가 광원 전체고, 그것이 아래로 응축되면서 ‘꼭짓점 S’에 빛이 나와 세계의 특정 대상(짜장면)을 비추게 되는 거죠. 쉽게 말해,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음식(대상)이 있지만, 아주 응축된 빛으로 짜장면(특정 대상)만을 비추기 때문에 그것만 보이게 되는 상태가 되는 거죠. 이것이 습관적인 ‘반응’, 즉 강하게 끌리고 그로 인해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되는 내적 메커니즘이죠.
‘원뿔 AB’(광원 전체)가 아래로 떨어지면 응축되어 하나의 행동(반응)을 촉발하는 운동, 이것이 ‘기억의 상하 운동’이에요. 이를 ‘역 원뿔 도식’을 사용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볼게요. 어떤 끌림으로 특정한 행동(반응)을 한다는 건, ‘원 AB’(순수 기억)에서 ‘S’(습관 기억)로 내려온다는 것을 의미하죠. 즉 언젠가 짜장면을 먹었던 흐릿한 기억(순수 기억)이 ‘상 기억’을 거쳐 ‘습관 기억’(신체)로 까지 내려올 때, 중국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먹게 되는 거잖아요.
이는 달리 말해, 우리의 정신이 ‘순수 기억’에서 ‘습관 기억(신체)’으로 잘 내려오지 않을 때는 중국집이 근처에 있더라도 짜장면을 먹을 수 없게 되겠죠. 우리의 ‘의식 빛(기억)’이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을 비추지 않을 테니까요. 즉, 짜장면에 끌리지 않게 되는 거죠. ‘순수 기억’에서 ‘습관 기억’으로 내려오면(하강) 행동을 위한 ‘기억’이 더 응축(강한 빛)되는 것이고, 반대로 ‘습관 기억’에서 ‘순수 기억’으로 올라가면(상승) 행동을 위한 ‘기억’이 덜 응축(액한 빛)되는 것이죠. 이것이 ‘기억의 상하 운동’의 메커니즘이에요. 그렇다면 ‘기억의 회전 운동’은 무엇일까요?
‘기억의 회전 운동’은 ‘넓은 빛’을 비춘다.
다른 하나는 기억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가장 유용한 면을 내보이기 위하여 그 상황을 향해 방향을 잡는 회전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기억의 회전 운동’은 “당시 상황에 대해 가장 유용한 면”을 찾는 ‘기억’이에요. ‘기억의 상하 운동’이 행동을 위한 ‘기억’의 응축이라면, ‘기억의 회전 운동’은 그 행동을 위한 ‘기억’의 탐색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오늘은 짜장면이다.’ 이런 행동(반응)이 ‘기억의 상하 운동’에 의해 촉발되는 거라면, ‘오늘은 뭘 먹지?’라는 탐색은 ‘기억의 회전 운동’에 의해서 촉발되는 거죠. 이 ‘기억의 회전 운동’은 기억의 각 평면(AB·AB′·AB″·AB‴…)’이 회전하면서 현재 상황과 가장 유용한 측면을 찾아내는 운동인 거죠.
‘기억의 회전 운동’은 수많은 음식 중에 나의 현재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음식이 뭐냐는 걸 탐색하는 거예요. 저번 주에 너무 기름진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어서 체했다고 해봐요. 그러면 ‘기억’의 각 평면들이 회전하면서 짜장면 대신 전복죽을 찾아내는 거예요. 혹은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짜장면보다는 따뜻한 죽을 좋아한다는 ‘기억’이 떠올랐다고 해봐요. 그러면 그날은 짜장면 대신 전복죽을 먹으러 가게 되는 거예요.
‘X’에 대한 끌림은 ‘기억의 회전 운동’과 ‘기억의 상하 운동’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촉발되는 거예요. ‘기억의 회전 운동’이 세계를 비추는 ‘넓은 빛’을 만드는 일이라면, ‘기억의 상하 운동’은 세계를 비추는 좁지만 ‘강한 빛’을 만드는 일인 셈이죠. 그 회전 운동과 상하 운동이 같이 엮이면서 초점을 잡는 거예요. ‘넓은 빛’으로 많은 대상을 비추고, 그중 가장 필요한(유용한) 대상에게 ‘강렬한 빛’을 비추는 거죠.
수많은 기억의 평면들이 ‘회전’하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유용한) 대상을 찾고, 동시에 기억이 ‘하강’(순수 기억→습관 기억)하면서 행동(반응)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이것이 ‘기억의 현실화 운동’이에요. 과거의 어떤 기억으로 인해 바로 지금 특정한 현실을 구성하는 운동이 벌어지는 거죠.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끌리고 반응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억의 현실화 운동’에 의해서죠.
‘기억의 현실화 운동’은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돈 많은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도 있고, 화려한 외모나 명성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도 있죠. 또 깊은 사유나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도 있겠죠. 이는 모두 ‘기억의 현실화 운동’, 즉 기억의 상하 운동과 회전 운동의 동시 작용으로 결정되는 거죠. 돈(외모·명성·사유·예술…) 많은 사람에게 끌린다면, ’기억의 회전 운동‘으로 세계의 많은 대상을 탐색한 결과, ’기억의 상하 운동‘이 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거예요. 즉, 자신의 정신이 세계의 수많은 대상 중 지금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것이 돈(외모·명성·사유·예술…)이라고 판단한 거죠. 이는 (외모·명성·사유·예술…을 가장 유용한 것으로 인식하는) 그 자신의 정신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죠.
‘기억의 현실화 운동’은 우리네 삶에서 중요해요. 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거울이기 때문이죠. ‘기억의 현실화 운동’은 자신 정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기억’이 ‘회전’하고 ‘하강(혹은 상승)’하면서 끌림과 행동이 촉발되죠. 이 끌림과 행동(반응)이야말로 우리의 정신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바로미터예요.
‘나는 자상한 사람이 좋다’라고 믿는 이가 있다고 해 봐요. 그런데 그녀는 계속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녀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인 거죠. 그녀의 믿음이 아니라 그녀의 끌림과 행동이 그녀의 정신을 드러내 주니까요. ‘있는 그대로’의 ‘나’는 ‘기억의 현실화 운동’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이는 한 사람의 진정한 변화가 곧 ‘기억의 현실화 운동’ 변화를 의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기억’이 ‘회전’하고 ‘상승(혹은 하강)’하는 운동의 양상이 변해서 끌림과 행동이 변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니까요. ‘나는 자상한 사람이 좋다’는 믿음이 아니라 자상한 사람에게 끌리고 행동하게 될 때 그녀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이죠. 있는 그대로의 ‘나’는 끌림과 행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