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도 정신도 모두 행동을 향한다.

몸은 행동의 도구다.

『물질과 기억』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베르그손은 친절하게도 마지막에 ‘요약과 결론’을 추가해 놓았어요. 이 장에서 『물질과 기억』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고, 결론에 대해서 논의해요. 전체적으로 한 번 정리한다는 기분으로 읽어나가면 좋겠네요.


1, 2장에서 ‘지각’, ‘기억’, ‘신체’, ‘행동’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해서 논의했어요. 1장에서 가장 문제 삼았던 내용은 뇌에 관한 오해였죠. 베르그손은 뇌도 신체의 일부라고 말하며, 뇌는 ‘기억’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처리하는 곳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죠. ‘요약과 결론’에서도 이 부분을 힘주어서 반복해요.


우리 몸은 행동의, 그리고 오직 행동만의 도구라는 것이다. 어떤 정도로도, 어떤 의미에서도, 어떤 측면에서도, 그것은 표상을 준비하는 데에는 소용이 되지 않으며,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는 더더욱 아니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뇌(몸)는 ‘표상’(기억·지각·사유·상상)이 아니라 ‘행동’의 도구에요. ‘손’은 뭔가를 쥐고, 특정한 작업을 하려는 ‘행동’의 도구이고, ‘발’은 이동(행동)의 도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뇌’에 관해서는 다른 관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뇌에는 ‘기억’이 담겨 있고, 사유하고, 지각하고 상상하는 기관이라고 여기는 측면이 있잖아요.


하지만 베르그손은 뇌 역시 손, 발이랑 똑같이 ‘행동’의 도구라고 말해요. 흔히 뇌를 표상의 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인간의 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관점일 뿐이에요. 손이든, 발이든, 뇌든 그것은 모두 몸이죠. 그런 “몸은 오직 행동의 도구”예요. “어떤 정도로도, 어떤 의미에서도, 어떤 측면에서도, 그것은 표상(지각·기억·사유·상상)을 준비”하는 데 사용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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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기억’을 쌓이는 곳이 아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뇌는 기억이나 상들을 축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각에서도, 기억에서도, 하물며 정신의 더 고차적인 활동에서도 몸은 표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뇌는 “기억을 축적하지” 않아요. 그러니 당연히 “지각에서도, 기억에서도” 더 나아가 그보다 더 “정신의 고차적인 활동에서도 몸(뇌)은 표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아요. 이는 베르그손의 이론에서 당연한 일이죠. 베르그손은 이원론자죠. 즉, 신체와 정신은 서로 구분되는 두 가지 실체로 보죠. 그러니 뇌(신체)는 뇌의 역할(행동)이 있는 것이고, ‘정신’은 정신의 역할(표상)이 있는 것이죠.


그런 가설을 여러 측면에서 발전시키고, 그리하여 이원론을 극단에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우리는 신체와 정신 사이에 지날 수 없는 심연을 판 것으로 보였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이원론을 극단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신체와 정신 사이에 지날 수 없는 심연을 판” 거죠. ‘신체’와 ‘정신’은 다른 영역이에요. ‘신체’는 ‘행동’을 향하고, ‘정신’은 ‘표상’(기억·지각·사유·상상)을 향하죠. 이렇게 “신체와 정신 사이에 지날 수 없는 심연”이 있다면, ‘신체’와 ‘정신’ 사이에 접점은 전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죠. ‘기억’하고, ‘지각’하는 정신의 ‘표상’ 능력 역시 결국은 ‘행동’을 향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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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은 행동을 향한다.

사실 지각과 기억이 향해 있는 것은 행동이며, 신체가 준비하는 것도 바로 그 행동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정신’의 대표적인 두 기능인 “지각과 기억이 향해 있는 것은 행동”이에요. 그런데 “신체가 준비하는 것도 바로 그 행동”이죠. ‘정신’ 작용(지각·기억)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행동’이고, ‘신체’는 이러한 ‘행동’이 곧 실현되도록 준비하는 장치인 거죠. 결국 ‘정신’과 ‘신체’는 ‘행동’에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정신’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 걸까요? 먼저 ‘지각’에 대해서 생각해 봐요.


지각이 문제인가? 신경계의 증가하는 복잡성은 받아들인 진동을 점점 더 큰 다양성을 가진 운동 장치와 관계 맺게 하며, 그처럼 점점 더 큰 수의 가능한 행동들을 동시에 스케치하게 한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더 잘 ‘지각’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는 “점점 더 큰 다양성을 가진 운동 장치(몸)”를 갖게 되어 “점점 더 큰 수의 가능한 행동들을 동시에” 그려낼 수 있다는 의미죠. 베르그손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단순 신경계와 복잡 신경계를 비교해요.


단순 신경계를 대표하는 생물인 아메바와 복잡 신경계를 대표하는 인간을 예로 들어 볼게요. 아메바는 ‘수용 진동의 단일 운동 장치’에요. 수용 진동은 외부 자극(진동)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즉, 아메바는 외부 자극(진동)을 수용할 때, 단일 운동 장치로 기능해요. 아메바에게 어떤 진동(먹이)이 들어왔을 때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먹거나 말거나. 그것이 아메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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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 신경계는 자유롭다.


반면 인간은 어때요? ‘수용 진동의 복합 운동 장치’죠. 당근이라는 외부 자극(진동)이 들어왔다고 해 봐요. 인간은 당근을 ‘먹거나 말거나’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 수도 있고, 조각할 수도 있고, 그냥 멀리서 색깔을 관찰할 수도 있죠. 즉 “점점 더 큰 수의 가능한 행동들을 동시에 스케치”할 수 있는 거죠. 즉 인간은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복잡 신경계인 거죠.


생물의 신경세포가 단순해진다는 의미는, 수용 진동에 대응해서 반응할 수 있는 운동 장치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반대로, 신경계가 복잡해진다는 건 수용 진동에 대해서 다양하고 복잡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즉 ‘지각’이라는 ‘정신’ 작용은 결국 운동 장치(신체)와 관계되어 있어 있는 거죠. 그러니 ‘지각’은 더 많은 수(혹은 더 적은 수)의 가능한 ‘행동’과 관계되는 거죠.


여기서 ‘자유’ 개념이 나오는 거잖아요. ‘수용 진동의 단일 운동 장치’, 즉 단순 신경계를 가진 존재(아메바)는 상대적으로 부자유하죠. 왜냐하면 이러한 존재들은 받아들인 진동에 대해서 반응할 수 있는 운동의 종류가 적기 때문이죠. 반면 ‘수용 진동의 복합 운동 장치’, 즉 복잡 신경계를 가진 존재(인간)는 상대적으로 자유롭죠. 이들은 외부 진동(자극)에 대해서 반응할 수 있는 운동의 종류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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