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순수 기억’이다.
‘순수 기억’을 중심으로 뇌와 ‘기억’, 그리고 ‘정신’과 ‘지속’의 관계성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왜 기억이 뇌의 상태로부터 나올 수 없는지 이해된다. 뇌의 상태는 기억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앞서도 말했지만, 뇌(신체)는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에요. ‘기억’은 뇌의 상태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에요. 뇌는 (행동을 위해) “기억을 이어 나가는” 역할을 할 뿐이죠. 그렇다면 ‘기억’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정신’이죠. 그런데 ‘정신’은 ‘신체’처럼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잖아요. 이런 ‘정신’을 우리네 삶에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바로 ‘순수 기억’을 통해서죠.
순수 기억은 정신의 현시이다. 기억과 함께 우리는 진정으로 정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순수 기억은 정신의 현시(드러나 보임)”예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정신’은 ‘순수 기억’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거죠. 그 “(순수)기억과 함께 우리는 진정으로 정신의 영역”을 확인하게 되는 거죠. 뭔가 모호하고 흐릿한 어떤 ‘기억(순수 기억)’을 떠올리려는 상황을 생각해 봐요. 바로 순간이 우리가 “정신의 영역에 있는” 순간인 거죠. ‘정신’ 속에서 ‘기억’이 떠오르면(순수 기억→상 기억) 뇌가 그 “기억을 이어 나가”면서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행동) 하는 만드는 거죠. 뇌의 역할은 ‘기억’과 ‘기억’을 잇는 것이죠. 그 연장을 통해 우리는 행동하게 되죠.
‘지속’은 기억과 기억을 잇는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뇌가 있지만,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기억’을 이어서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는 건 아니죠. 어떤 이는 ‘기억’과 ‘기억’을 적절하게 잇지 못해서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잖아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뇌는 ‘기억’과 ‘기억’을 이어 주지만, 이 과정이 더 원활해지려면 하나의 요소가 더 필요해요.
바로 ‘지속’이에요. ‘지속’의 상황 속에서 ‘기억’과 ‘기억’은 더 원활하게 이어져요, 물론 ‘지속’이 없어도 뇌는 ‘기억’과 ‘기억’을 이어 나갈 수는 있어요. 직장의 시간을 생각해 봐요. 직장의 시간은 대체로 ‘공간화된 시간’일 뿐, ‘지속’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입사원 때 배웠던 ‘기억’과 어제 자료를 정리했던 ‘기억’을 이어서 오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잖아요.
이처럼 우리의 뇌는 ‘지속’이 없더라도, 생존을 위해 습관적으로 ‘기억’과 ‘기억’을 이어 나갈 수 있어요. 이것이 ‘습관 기억’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지속’ 없는 ‘기억’의 연장은 기존의 삶에 머무르게 하거나 혹은 점점 퇴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거예요.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삶은 정체된 삶이거나 퇴행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지속’은 창의성과 삶의 의미를 촉발한다.
삶의 진보(진화!)는 ‘지속’을 통한 ‘기억’의 연장으로 가능해요. 마음을 울리는 음악(영화·그림…)을 듣는 ‘지속’의 순간을 생각해 봐요. 직장에서는 결코 이어 지지 않았던 ‘기억’들이 연결되지 않나요? 이러한 ‘기억’의 연장을 통해 우리는 어떤 창의성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죠. 창의력이 뭔가요? 흔히 이를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죠. 하늘 아래서 새로운 건 없잖아요. 새로운 조합만이 있을 뿐이죠.
창의력은 연결되지 않는(연결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에요. ‘지속은’ 연결되지 않는(연결될 수 없다고 여기는) ‘기억’들을 연결함으로써 창의력을 촉발해요. 예술이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이런 맥락 아래서 나온 거예요. 예술은 ‘순수 기억’을 뒤흔들어서 이전에는 연결 짓지 못했던 ‘기억’들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지속’은 창의성을 촉발함으로써 삶을 진보시켜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의 삶은 조금씩 진보하죠. 그들은 ‘지속’하기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방식(습관 기억)을 답습하지 않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기 때문이죠. ‘지속’은 이러한 삶의 외면적 진보보다 더 심층적인 진보(진화)마저 가능케 해요.
온 마음이 쏠리는 이를 사랑하게 되는 ‘지속’의 순간을 생각해 봐요. 그 ‘지속’의 순간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죠. “그때 진짜로 행복했었구나. 그 순간이 있어서 지금 내가 있는 거구나.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 이러저러한 ‘삶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마저 깨닫게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삶의 진보(진화) 아닌가요? 이 모든 일은 ‘지속’을 통해 가능해지는 거예요.
‘지속’, 행복한 삶으로 가는 힘
뇌(물질)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기억(정신)’과 ‘기억(정신)’을 연결하는 건 아니에요. ‘지속’ 아래서만 연결되는 ‘기억’들이 있어요. 지속’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고, 좀처럼 ‘지속’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죠. 전자는 ‘지속’을 통해 ‘기억’의 연장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고, 후자는 ‘지속’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기억’의 연장이 소극적 혹은 퇴행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죠.
우리네 삶에서 ‘지속’은 아주 중요해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사랑이든, 우리는 ‘지속’할 수 있어야 해요. ‘공간화된 시간’ 너머 ‘지속’의 순간에 있어야 해요. ‘지속’의 감각을 익히려고 애를 쓰며 살아야 해요. 이건 단순히 “낭만적으로 살라!”는 순진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는 돈이든 차든, 집이든, 어떤 ‘물질’적인 것을 바라죠. 그런 ‘물질’적 진보를 바라죠.
그런데 그런 ‘물질’적 진보가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삶일까요? 그렇지 않죠. ‘물질’적 진보가 전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죠. 이들은 아직 물질적 진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에요. ‘물질’적 진보를 어느 정도 이루면 누구나 기묘한 공허에 시달리곤 해요.
우리가 끝내 바라는 삶의 진보는 ‘정신’적 진보, 즉 행복이잖아요. 이는 오직 ‘지속’을 통해서만 가능해요. ‘지속’을 통해 습관적 삶 안에서는 결코 이어진 적 없는 ‘정신(기억)’과 ‘정신(기억)’이 이어져서 삶의 궁극적인 진보(창의성과 삶의 의미)를 이룰 때, 우리는 행복한 삶에 이르게 되는 거죠. 음악을 들으며 미소 짓고 눈물을 흘리는 ‘지속’의 시간 속에서, 사랑을 통해 설레고 아픈 ‘지속’의 시간 속에 우리는 진정한 행복으로 점점 더 가닿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