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기억', 삶을 진보시킬 잠재성

‘기억’은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퇴행이 아니다.

베르그손의 여러 개념 중 ‘순수 기억’은 그 중요도 만큼이나 난해한 개념이에요. 이 ‘순수 기억’에 대해서 조금 더 다뤄볼 필요가 있어요.


진실인즉, 기억은 결코 현재에서 과거로 퇴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과거로부터 현재로 가는 진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단번에 위치하는 곳은 과거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먼저 ‘기억’의 특징부터 되짚어 볼게요. 흔히 우리는 ‘기억’이 현재로부터 과거로 가는 과정(현재→과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잖아요. 즉 현재(오늘) 어떤 일을 겪고 시간이 지나 그것이 과거(어제)가 되었을 때, ‘기억’하게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는 삶의 진실이 아니에요. ‘기억’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가는” 과정(과거→현재)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죠.


지하철에서 누군가 지금 우리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고 해 봐요. 그때 우리는 ‘지금-여기에(현재)’에 있는 걸까요? 그렇게 그 현재가 지나 그 일(지하철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름)은 어제 있었던 일(과거)로 ‘기억’되는 걸까요? 즉, ‘기억’은 “현재에서 과거로 퇴행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삶의 진실은 정반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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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진보이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우리가 단번에 위치하는 곳은 과거”예요. 그 과거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던 과거이거나 선생이 소리를 질렀던 과거일 수도 있고, 혹은 몇 해 전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던 과거일 수도 있겠죠. 그 과거가 어떤 과거이건 간에,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우리는 단박에 그 과거에 위치하게 돼요. 그리고 그 과거를 지나서, 누군가 지하철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현재를 만나게 되는 거죠.


지금 지하철에서 옆자리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면, 우리는 그 순간 아버지(삼촌·선생·강도…)가 소리 질렀던 과거로 돌아가게 돼요. 그리고 그 찰나가 지난 후에 다시 지금 옆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거예요. 즉 ‘기억’은 “과거(아버지)로부터 현재(지하철)로 가는 진보” 상태인 거죠. 이것이 ‘기억’이 만들어지는 실제 과정이에요.


우리는 ‘기억’에 관해 거꾸로 알고 있는 거예요. 현재가 과거가 되어 ‘기억’이 발생한다고 믿지만, 이는 ‘기억’의 진실이 아니에요. 먼저 과거(아버지 고함)가 있고, 그것이 현재(지하철의 고함)로 밀고 들어올 때, ‘기억’(내 인생에는 소리치는 사람이 참 많았구나)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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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상태, ‘순수 기억’


이제 우리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첫 번째는 우리가 단번에 위치하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이 현재로 밀고 들어와서 만들어지는 ‘기억’이겠죠. 전자는 소리를 지른 이가 아버지인지 선생인지 삼촌인지 모르는 흐릿하고 모호한 ‘기억’이고, 후자는 그때 소리를 지른 이가 아버지라는 사실이 선명하고 분명하게 떠오른 ‘기억’이겠죠. 후자가 ‘상 기억’이고, 전자가 바로 ‘순수 기억’인 거예요. 베르그손은 이 ‘순수 기억’을 “잠재적 상태”라고 말해요.


우리는 ‘잠재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일련의 상이한 의식의 평면들을 가로질러서 현실적 지각으로 구체화하는 지점까지, 즉 그것이 현재적이며 활동적인 상태가 되는 지점까지, 즉 결국 우리 신체가 그려지는 의식의 극단적 평면까지 이끌고 나온다. 순수 기억이란 그러한 잠재적 상태로 이루어진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순수 기억’은 “잠재적 상태”예요. 옆에서 누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를 때 우리는 분명 단박에 과거에 위치하게 되겠지만, 그 과거가 정확히 어떤 과거인지는 명확하지 않죠. 옆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 떠오른 ‘기억’에는 과거 소리를 질렀던 이가 아버지인지 선생인지 삼촌 혹은 강도였는지 명확하지 않죠. 또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소리를 질렀다는 과거가 명확히 ‘기억’ 났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몇 시에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는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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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기억’이 ‘상 기억’이 될 때 ‘지각’된다.


이처럼 ‘순수 기억’은 항상 흐릿하고 모호한 “잠재적 상태”인 거죠. 그 “잠재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조금씩 “일련의 상이한 의식의 평면들을 가로질러서 현실적 지각으로 구체화”되어 ‘상 기억’이 되는 거죠. ‘상 기억’ 상태가 될 때 ‘지각’이 가능해져요.


이처럼 기억이 작용하면서 현실화되는 순간, 그것은 기억이기를 멈추고 다시 지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기억이 작용하면서 현실화되는 순간, 그것은 기억이기를 멈추고 지각”이 돼요. 아버지가 소리 질렀던 과거 ‘기억’으로부터 지금 지하철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러서 놀라게 되는 현실적 ‘지각’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 과정을 지나면 “결국 우리 신체가 그려지는 의식의 극단적 국면까지 이끌고 나오는” 거예요. 이는 지하철에서 웃음이 나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죠.


지하철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면 잠시 과거(아버지 고함)로 갔다가 현재(지하철 고함)로 넘어오게 돼요. 그리고 다시 신체(웃음·분노)가 반응하게 되는 거죠. 이때 웃음이 나거나 화가 나는 상황, 즉 “신체가 그려지는 의식”의 차이는 왜 발생하게 되는 걸까요? 아버지가 술 마시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여전히 큰 상처로 ‘기억’되는 경우라면 화가 날 테고, 그 상처가 이제는 다 치유되어 그 과거가 별일 아닌 일로 ‘기억’되는 경우라면 웃음이 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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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기억’, 우리네 삶을 진보시킬 잠재성


“순수 기억이란 잠재적 상태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현재를 ‘지각’할 때, 단번에 자리 잡는 “잠재적 상태”로서의 과거가 바로 ‘순수 기억’인 거예요. ‘기억’은 “현재에서 과거로 퇴행”하는 상태가 아니에요. 오히려 ‘기억’은 “과거(순수 기억)로부터 현재(지각)로 가는 진보” 상태인 거예요. ‘기억’은 단순히 후회하거나 회상에 젖는 퇴행적인 일이 아니에요.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이 ‘순수 기억’이라면, 이는 우리네 삶을 진보(진화)시킬 잠재성을 의미하는 거예요.


행동의 평면(우리 몸이 자신의 과거를 운동적 습관으로 응축했던 평면)과 우리 정신이 흘러간 삶의 그림을 그 모든 세부 사항까지 보존하는 순수 기억의 평면 사이에서 우리는 의식의 무수한 상이한 평면들, 우리의 체험된 경험 전체의 총체적이고 다양한 무수한 반복들을 포착한다고 생각했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우리 안에는 무한한 ‘순수 기억’이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동했었던 평면들이 있죠? 또 그에 따라 정신이 흘러갔던 삶이 있죠. 그 행동적인 삶과 정신적인 삶의 모든 것들이 ‘순수 기억 상태’에서 보존돼요. 우리가 ‘상 기억’ 상태로 선명하게 ‘기억’을 하든 못하든 간에 우리가 행동했었던 모든 평면과 그 평면들을 따라서 흘러갔던 모든 정신적인 삶들은 ‘순수 기억’에서 다 보존되어 있어요. 우리가 미처 인지할 수 없는 수많은 의식과 경험이 다 ‘순수 기억’에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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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의 비밀은 ‘기억’ 속에 있다.


‘순수 기억’은 “우리 정신이 흘러갔던 삶의 그림을 그 모든 세부 사항까지 보존”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그 무한한 ‘순수 기억’ 중 어떤 기억이 ‘상 기억’으로 소환되느냐에 따라서 현재는 다르게 ‘지각’될 수 있겠죠. 바로 여기에 행복한 혹은 불행한 삶의 비밀이 있어요. 행복 혹은 불행이란 것은 현재를 ‘지각’하는 방식이에요.


물이 반쯤 차 있는 컵을 보고, 어떤 이는 ‘반이나 차 있네’라고 ‘지각’하고, 어떤 이는 ‘반밖에 없네’라고 ‘지각’하잖아요. 전자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크고, 후자는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크겠죠. 그러니 결국 행복과 불행은 ‘기억’으로부터 오는 거죠. ‘지각’은 ‘기억’으로부터 발생하게 되니까요.


현재를 다르게 ‘지각’할 때 우리는 삶은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될 수 있겠죠. 아무리 불행한 사람이라도, 현재를 다르게 ‘지각’해서 덜 불행한 혹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무한한 ‘기억’, 즉 ‘순수 기억’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불행한 ‘기억’뿐만 아니라 나름의 행복한 ‘기억’이 있을 거예요. 반대로 역시 마찬가지죠. 우리의 ‘순수 기억’은 무한하니까요.


행복 혹은 불행은 무엇일까요? 이는 외부의 어떤 ‘사건’을 통해 결정되는 일이기보다 내부의 ‘기억’과 관련된 일에 가까울 거예요. 자신의 ‘순수 기억’ 중 어떤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를 ‘지각’할 것인지가 행복과 불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누가 보더라도 불행한 삶이었지만,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죠. 반대로 누가 보더라도 행복한 삶이었지만,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죠. 충분히 행복할 만한 사건 앞에서도 ‘순수 기억’ 중 불행할 ‘상 기억’을 소환하는 이들이 있고, 충분히 불행할 만한 사건 앞에서도 ‘순수 기’억 중 행복할 ‘상 기억’을 소환하는 이들이 있는 거죠. 이는 각자의 ‘순수 기억’에서 어떤 ‘기억’이 작용해서 현실을 ‘지각’하게 만들었느냐의 차이일 거예요.


행복한 삶에서 불행한 삶으로 퇴행하는 것도 혹은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진보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기억’ 속에 그 답이 있을 거예요. 무한한 ‘순수 기억’ 중 어떤 ‘기억’을 소환하여 세계를 ‘지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불행 혹은 행복해질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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