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선택 너머의 선택'을 하는 힘
철학은 삶에 관한 학문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그것에 대해 잘 알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나도 한 때 그랬지만, 예상치 못하게 철학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철학이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삶에 관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취업 전의 나는 알바, 인맥관리, 학점관리, 취업 등 ‘해야 할 것’들에 치이다 보니 삶에 대해 깊이 생각본 적이 거의 없었다. 철학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해야 할 것’들의 결과물인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기분이 이따금씩 들었다. 나 자신이 낯설어 보이는 그런 기분. 거울에 보이는 그 어색하고 낯선 나의 모습... 이제까지 ‘해야 할 것’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내 모습이 안타깝게도 낯설어 보였다.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처음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이었지만, 이내 그 불안감은 죄의식과 불면증이란 구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났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는, 이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적응을 못할까?", “젠장... 난 대체 왜 이렇지?" 나를 부정하는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져 버린 탓에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기가 어려워졌고,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일도 잦아졌다. 이런 상황이 너무도 힘들어 마음을 다잡아보려 여러 노력을 해봤지만 나아지는 건 잠시 뿐이었다.
철학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행이었던 건, 독서에 관한 믿음이 있었다는 거였다.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책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관심이 가는 책을 찾아 읽으려 노력했고, 그 책으로 인해 새롭게 생겨나는 흥미로 인해 관련된 책을 또 찾아 읽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은 우연히 나를 어느 철학 입문서로 데려갔다. 그 철학서는 마르크스에 관련된 책이었다. 당시 나의 가장 큰 관심이 ‘일’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일까? 노동에 관한 깊고 낯선 사유를 보여준 그 책에 매료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마르크스에 푹 빠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았고, 그러는 사이에 이전엔 생각치도 못했던 것들을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으며, 그 경험 전과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사건을 시작으로 여러 철학자들의 낯선 사유를 마주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더 하게 되었었다. 그때가 철학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고, 동시에 어두웠던 내 삶을 새롭게 긍정할 수 있게 된 때이기도 했다.
철학은 산에 올라 삶을 내려다 보는 것
어떤 철학자는 철학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산에 오를수록 보다 높은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 말에 무척 공감을 한다. 나 역시 조금씩 산을 오르다 보니 보다 높은 위치에서 새로운 시야로 나를 내려다본다. 과거의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던 것들이 마치 색안경을 낀 것처럼 얼마나 왜곡되었던 것이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이제 안다.
그중 가장 크게 느낀 건, ‘주인된 삶’에 관한 것이다. 여태껏 나는 내 삶을 자유롭게 누리는 주인이라 여겼다. 이는 자기기만이자 허영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뒤로한 채 남들이 옳다는 것에만 집착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나 자신을 끼워 맞추려 나를 깎고 있었으니 어찌 아프지 않았을까. 철학은 나를 구원했지만 다시 아픈 질문을 던졌다. 대체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은 나의 삶에 들어와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주었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을 안긴 셈이었다.
철학은 '선택 너머의 선택'을 하는 힘
천천히 산을 오르다 보니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선택지 안에서 선택하며 산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뛰어 넘어, ‘나만의 선택지를 만들지, 혹은 만들지 않을지’를 선택한다.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은 ‘나는 어떤 선택지도 만들지 않겠다!’는 선택 혹은 ‘나는 오직 나만의 선택지 자체를 만들겠다!’는 선택을 하는 삶이다.
물론 안다. 그런 '선택 너머의 선택'이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 것인지. 아무도 걷지 않은 자신만의 길로 산을 오른다는 것, 다시 말해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분명 외롭고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렌다. 보다 높은 위치에서 탁 트인 시야로 나의 삶을 내려다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가 외로움, 불안, 고됨에도 불구하고 그 설렘을 만끽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 때문이다. 나의 철학이 나의 지팡이가 되어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란 철학, 정확히는 나의 철학에 대한 믿음. 왜 철학을 하냐고? 나는 철학을 믿기 때문이다.
필진소개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