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의 ‘정치’와 ‘치안’
정치politique와 치안police
진정한 민주주의란 어떤 것일까? 섣불리 답하기 전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라는 프랑스 철학자를 만나보자. 그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다. 그는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정치’와 ‘치안’을 구분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앞서 말했듯이, 직접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체제인 ‘폴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이 ‘폴리스’라는 말에서 유래한 두 가지 단어가 있다. ‘정치’를 의미하는 ‘폴리티크politique’와 ‘치안’을 의미하는 ‘폴리스police’다. 랑시에르는 ‘정치’와 ‘치안’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 둘은 분명한 대립관계에 있으며 그것을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치안은 정치의 대립물이며, 치안과 정치 각각의 영역으로 귀속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좋다.” 「불화」 자크 랑시에르
랑시에르가 말한 ‘치안police’은 무엇일까? 이것은 말 그래도 경찰police을 떠올리면 된다. 예컨대, 우리가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광화문에서 시위를 한다고 해보자. 그때 경찰은 그 시위를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이다. 이는 정부가 농업 관련 공약을 이해하지 않자, 백남기는 농민은 정부에 공약을 이행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이를 저지하려던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백남기 농민은 돌아가셨다. 이것이 치안의 대표적 사례다.
치안은 정치가 아니다.
치안은 얼핏 보면 정치인 것처럼 보인다. 정치가 무엇인가? 우리가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들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치안이 곧 정치처럼 보인다. 물대포를 쏜 경찰은 법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은 우리가 선출한 정치인들이 입법하고 집행을 지시했다. 즉 치안을 자행할 법을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즉 경찰이 자행한 ‘치안’은 우리가 참여한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간교한 억지 논리다. 왜 그런가? 우리는 권력자를 뽑았을 뿐, 실제로 그 법은 권력자가 발의하고 집행한 것 아닌가. 우리民는 누구도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발사해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는 법을 통해 독재를 할 수 있는 ‘입법독재’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치안’과 대립되는 랑시에르가 말한 ‘정치’는 무엇일까?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다. (중략) 정치의 본질은 두 세계가 하나의 유일한 세계 안에서 현존하는 불일치를 현시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자크 랑시에르
랑시에르는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시위) 이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권력행사는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치안’일 뿐이다. 이어 랑시에르는 정치의 본질이 두 세계가 하나의 세계 안에서 있기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마찰(불일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우리는 2016년 광화문에서 랑시에르가 말한 ‘정치’를 이미 경험했다.
2016년에는 두 세계가 있었다. (박근혜로 상징되었던) 권력자의 세계와 (시민으로 상징되었던)우리의 세계. 이 두 세계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세계에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국정농단을 참을 수 없었던 우리는 현재 존재하는 불일치(마찰)을 명백히 드러내었다. 수많은 우리民가 촛불을 들고 거리가 쏟아져 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쳤다.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가 말한 ‘정치’다. 랑시에르는 정치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치’다.
“‘그냥 지나가시오!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 치안은 도로 위에 아무 것도 없으며, 거기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치안은 통행 공간이 통행 공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이 통행 공간을 한 주체-인민·노동자·시민-의 시위(드러냄) 공간으로 변형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정치는 공간을 바꾸는 것, 곧 거기에서 할 것이 있고, 볼 것이 있으며, 명명할 것이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이뤄진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자크 랑시에르
치안police은 시위가 시작되려는 도로에서 말한다. “그냥 지나가시오! 여긴 아무 것도 없소!” 치안은 광화문은 광화문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는 그 공간을 변형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바로 주권자로서의 우리民가 자신의 주장을 드러낼 시위의 공간으로의 변형. 즉, 우리가 광화문은 그저 광화문이 아니며, 그곳에서 할 것이 있고 볼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치안과 곳곳에서 마주치며 또 대립하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자들은 치안police으로 정치politique를 누르려고 하니까 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치안이 아니라 정치다. 흔히 우리는 선거가 정치의 꽃이라고 말한다. 이는 틀렸다. 정치의 꽃은 시위다. 주어진 조건 때문에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로서 권력자를 선출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라기보다 치안 혹은 치안의 시작이다. 진정한 정치는 단호한 시위다. 선출된 권력자들이 우리民의 동의 없이 혹은 우리의 의사에 반하는 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시위.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 선거보다 시위를, 권력자의 선출보다 소환을, 권력자의 권력 보장보다 권력 통제를 주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치안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통해, 권력자를 소환하고, 권력자를 통제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도로를 시위의 공간으로 변형할 때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진정한 주권자(주인)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즉 진정한 민주주의는 ‘치안’이 아닌 ‘정치’를 통해 가능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