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처럼 젖어드는 사랑(3)

by Hazelle

준비된 차 주전자와 컵들을 들고 오다 하마터면 떨어뜨릴뻔 했다.

그의 말투에 더 이상의 웃음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담담하게 읊조리듯 얘기하는 그의 말소리가 집중하지 않아도 흘러들어 귀는 거치지도 않고 마음속으로 와 박히는 기분이다.

몇 년을 두고 두고 읽고 또 읽었던 ‘충성스러운 개’를 쓴 작가가 바로 그였던 것인가... 후에 나는 그가 시나리오등의 책을 집필할 때는 따로 필명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그 가여운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당신은 최선을 다해 멋있었다고 말해 주고 싶었던가... 어쩌면 한 번쯤은 의심해 볼 법도 했는데 너무도 둔했었다고 때 늦은 깨달음에 빠져 애써 끓인 차가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는 참에 한참을 답지 않게 침묵중이던 고프레도가 드디어 입을 연다.

“ 엄마, 생일엔 내 마음대로 누구든 초대해도 되는 거였죠?”

“..응?”

이런 어색한 상황에 본인 생일 이야기를 꺼내다니.. 살짝 눈꼬리를 흘기려는데 아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16세 생일이란 꽤 중요하니까요. 내키진 않지만 아빠도 미국에서 온다는 군요. ...

무슈, 그날 오셔서 엄마 옆을 지켜 주실 수 있으실까요? 처음 부탁드리는 것이니 거절하시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 듣던중 정말 기쁜 얘기구나. 난 당연히 생일 파티엔 초대받지 못할 거라 생각해 미리 선물을 가져왔는데 말이다. 그럼 이 선물은 다시 가져 갔다가 그 날 주도록 하마.”

여전히 큰 상자를 안고 있는 비서를 향해 눈짓을 한다. 비서가 상자를 차에 다시 넣어두러 나가자 그도 천천히 모자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 구애를 할 땐 그 아이들에게도 함께 고백을 해야 하는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소. 당신들 모두 대답을 해 주진 않았지만 난 이미 나를 보였으니 앞으론 더 귀찮게 굴지도 모르오 . 하하. 한 달 후 고프레도의 생일에 봅시다. 대답도 그 날 듣는걸로....”

난 여전히 ‘그 책’ 생각에 빠져 있다가 그제사 정신이 들었다. 이미 그는 외투를 걸치고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다.

“잠깐.... 그 책... 당신이었나요?”

그는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다 한참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었어요. 아픈 당신 옆에 있을수만 있다면 영원한 아픔이란 없으니 내게도 기회가 올거라고 확신했죠.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몇 달 전 부터 당신은 전 남편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소. 그 전엔 그의 이름을 꺼내려고 조차 하지 않았지. 그건 아직도 아프고 있단 증거기도 했으니까... 다시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걸 듣고 이젠 나를 당신의 인생에 초대해 달라고 떼를 써 봄직도 하다고 생각했소만... 착각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그를 배웅하러 나서는데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았건만 따라 나선다. 밖은 뿌옇게 까만 밤 안개가 커튼처럼 내려 있고 미리 비서가 시동을 켜둔 그의 롤스로이스의 헤드라이트가 안개 속에서 힘겹게 반짝이고 있다.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마음은 깊은 분 같군요.”

그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맥스가 나즈막히 중얼거린다.

나도 모르게,

“너보다 작은 거겠지...”

라고 대답하자 아이는 갑자기 내 얼굴을 들여다 보며 웃었다.

“좋아하는군요. 그분을...”

부러 숨기고 싶진 않았다.

“그래... 훌륭한 인간이고 남자지만 함께 하고 싶은지까지는 아직 모르겠구나.”

밤바람이 아직 약간 차가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고프레도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선택은 엄마가 하는 거겠지만, 두려움은 행운을 몰아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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