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례하리만치 노골적인 시선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보느라 앉으라고 간곡히 청하는 내 말을 세 번이나 무시했다.
“좀 무례하시군요. 예고도 없이 방문한데 이어 집주인이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는데도 꼼꼼히 구경을 하시는걸 보니...”
약간 샐쭉한 어투로 불평을 하자 예의 그 옅은 미소를 띄며 그제사 자리에 앉는다.
“이렇게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고 먼지 한 톨 없이 잘 관리한 집을 객이 자세히 봐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억울할것 같은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꾸미는 것이 아니에요. 내 자신을 대접하는 의미로 집을 가꿀 뿐이죠. 난 가장 좋은 것만 쓰고 가장 깨끗한 환경에 있어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 늘 대접하는 겁니다.”
“......”
그다지 큰 의미를 담아 한 말은 아니고 나를 너무 남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쓰고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반박했을 뿐인데 그는 갑자기 말 없이 찬찬히 나를 들여다 보았다.
“그보다 이렇게 불쑥 방문하신걸 보면 뭔가 급한 일이 있나 보군요. 그리고 그래야 할꺼에요. 납득 안 가는 이유로 이런 무례를 범하시는 거라면 제가 화를 낼거에요.”
솔직히 그의 방문이 불쾌하지 않았고, 아니 조금 기쁘기까지 했지만 말은 이렇게 하고 있다.
“난 말이오... 당신의 그런 생각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결벽증 환자들을 주위에서 봤지만 아무도 그런 이유를 대진 않았거든... 대부분이 그저 취향이거나 습성이라고 둘러대는 편인데...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최고라 여기고 아끼는 것이 진정으로 느껴져 정말 진심으로 당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게 만들어요.
나도 당신의 것이 된다면 분명 최고로 아껴줄 것이 확실하니까...”
그 날밤의 뜬금없는 고백 이후 두 번째 그의 사적인 발언이었다.
“..... 여전히 제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있군요. 어떤 일 때문에 오셨느냐고 물었어요.”
“ 들었어요. 그리고 굉장히 타당하고 급박한 사안이 아니라면 나를 당장 저 문 밖으로 차 버릴 계획이란 것도...아.. 그래서 물론 나의 본연의 목적이 있지만 좀 더 그 목적이란 것을 묵직하고 심각한 것으로 포장하느라 바쁜 중이오만...”
그는 놀리듯 빙글빙글 웃고 있다.
어느 새 진짜 조금은 불쾌해져 저절로 팔짱을 끼고 그를 쏘아 보았다.
“오오.. 이런. 얼른 이유를 말해야겠네요. 당신이 팔짱을 끼고 한 쪽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을 땐 지금 당신이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라는 뜻이니까...”
“흠... 엄마의 습관까지 아는 당신은 대체 누군가요?”
“맞아. 저 모습은 엄마가 우리를 때리기 전에 하는 행동으로 지금 상당히 화가 났다는 뜻이거든요. 가족도 아닌 사람이 알아챈건 거의 처음이군요.”
어느 새 내려와 있었는지 와인장 뒷편에서 두 녀석이 슬그머니 기어나와 처음 보는 신사에게 약간 무례한 톤으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무시하기 시작한거지? 얼른 윗층으로 올라가서 숙제나 하렴.”
당황해서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는데 디노가 황급히 만류를 한다.
“아니 아니, 내 급한 용무가 바로 저 애들이에요.”
그의 말을 액면상으로는 알아들었지만 속뜻을 알 수가 없어 쳐다보는 사이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테이블 앞에 앉혔다.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은 내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난 내 스스로 당신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소.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내가 손해보는 작전이 아니더군. 당신에게 한 번 더 프로포즈를 했다가 거절 당할 수도 있겠고, 아이들에게 거절 당할 수도 있겠지만 만의 하나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을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승산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내 행동이 무례하다는건 잘 알아요.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면 좋겠소. 워낙 하고 싶은대로 살아온 편이라 행동은 버릇 없을수도 있겠지만 난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분명 화자는 그이건만 달아오르고 있는 건 내 얼굴이다. 그와 나는 정신적으로 미묘한 관계이긴 하나 공식적으로 연인관계도 아니고 이렇다 할 사건도 없는 사이인데 자식들 앞에서 이유 없이 쑥스럽고 창피한 것은 부모라 그런가...
덩치만 컸지 아직 아이에 불과한 두 아들이 약간 굳은 표정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그를 쏘아 보고 있다. 물론 아이들도 디노의 존재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디노가 스카웃 제의를 해왔을때 거절할 마음을 먹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스위스로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러대 잠시 나를 흔들기도 했다.
세 남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 아무도 말을 꺼내려 하지 않고 있다.
어색함을 견딜 수 없어 다이닝 룸 뒤쪽에 있는 부엌으로 가 차를 끓이기 시작했지만 온통 감각기관은 뒤쪽으로 쏠려 있다.
“저희를 만나보러 오셨다면서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거죠?”
침묵을 깬 건 다소 심술궂은 어투의 맥스.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테니 소개는 별 필요 없을 것 같고, 내 사심은 방금 엿들어 알 것이고... 설마 하고 싶은 질문조차 없을 정도로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늘 그렇듯 여유있게 적당히 느린 디노의 대답이 들려왔다.
“오래 전에 이혼을 했다고 들었는데, 왜죠?”
드디어 무례하기까지 하려는 아이를 저지하려 들어서는데 디노가 괜찮다는 듯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왜 그런걸 묻지? 중요한가?”
“그럼요. 참고로 우리 엄만 아빠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헤어지신거에요. 아시겠지만 그는 결혼생활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사람을 또 만나 엄마가 상처 받지 않게끔 지켜야 한다는 것쯤은 알만큼 컸다구요.”
이혼 후 가끔 아랄도와 통화는 하는 고프레도와는 달리 맥스는 아직도 아랄도를 용서하지 않았다. 한 때 맥스는 그의 아들인 것이 수치스럽다며 ‘성’을 바꾸겠다고 소란을 피운적도 있었다.
“그렇군. 그 이유가 자네에게 중요한 거라면 ... 뭐 굳이 숨길 이유도 없어. 조금 창피할 뿐이지... 내가 가진 것을 사랑했던 한 여자와 살았지. 내가 가진 것들이 주는 매력이 식상해질 무렵 그녀는 ‘욕심’ 과 ‘사랑’의 차이점을 깨닫게 해 주는 남자를 만났다고 했어. 난 그녀를 진정 사랑했기에 놓아주기 싫었지만 결국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 또한 견딜 수 없어 헤어지게 되었어. 뭐 굳이 나의 잘못을 밝히자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 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마리나의 마음도 얻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네. 그녀는 나를 온전히 가지게 될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