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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2 30화

05.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무엇이 그토록 탁하였는지

(30)

by Hazelle

“병원엔 왜? 누가 아파?”


승진과 정수는 몰래 다가가 놀래켜 주려다가 윤조가 하는 말을 듣고 멈췄다.


“아… 아니.

아… 떡볶이 먹으러 온거야?”


“너 왜 수연이네 앞에 서 있냐? 설마 걱정되어서 온 건 아닐테고… 이 아줌마가 떡볶이 신급은 아니라고 보네만… 옆에 또보네 가자.”


윤조는 거절하려다가 그냥 그들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옆 분식집으로 향했다. 먹을 생각이 없다고 하면 수연이네를 살피러 온 것이 너무 뻔하고 그러면 저 참새들이 대체 언제부터 조 수연을 챙겼냐고 꼬치꼬치 물을 것이 자명하니까.


“야! 오늘 떡볶이 완전 찰지구만. 왜 손도 안대?”


여전히 정신이 딴데 팔린채 나온 떡볶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윤조에게 승진이 이상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아… 속이 좀 안 좋아서… 얘들아, 미안. 나 먼저 갈께. 맛있게 먹어.”


“야! 너 오늘 먹은 것도 없…”


승진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윤조는 이미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 골목길에 서 있었다.


“지금 병원 가 봤자야. 간호사들에게 안 들키고 병실에 넣어줄 수는 있지만 지금 미나가 혼자 있는게 아니거든. 괜한 헛걸음 말고 집에나 가쇼.”


한주의 말이 맞을 것이다. 윤조는 마음이 영 찝찝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돌려 집에 가기로 했다.


“쌀쌀한데 목도리라도 좀…”


가방안에 처박아두고 쓰지도 않고 있는 윤조의 목도리를 집어내려던 한주는 씁쓸한 표정을 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야, 그럼 너라도 가…”


“가긴 어딜?

밤바람 차고 비도 오는데 목을 그렇게 내놓고 다니냐? 감기 들게… 이거라도 뒤집어 써. 예보에도 없던 비가 오냐…”


갑자기 머리 위로 커다란 남자 점퍼가 씌워져서 쳐다보니 한주는 저만치 가로등 밑으로 물러나 있고 바로 옆에 붙어 선 것은 석수였다.


“너 여기 웬일이야?”


“미나 걔 오늘도 학교 안 왔지? 한 번 가볼까 했는데 너무 늦은거 같아서… 내일 가보고 없으면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미나가 혼자 지내던 반지하 자취방은 수연이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석수는 그 근처 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듯 보였다.


“아르바이트는 구했어?”


“응… 그냥저냥… 편의점 야간 알바. 그런데 돈이 별로 안돼. 나갈 곳은 많은데 한참 모자라… 야. 그 바둑 말야. 배우기 어렵냐?”


“그건 그때 어쩔 수 없이 한거지… 결국 그것도 도박이야… 야 난 괜찮으니까 이거 너 입어. 춥겠구만.”


“괜찮아. 작년 겨울엔 보일러도 없이 지냈는걸 뭐. 이정도 쯤이야. 넌 근데 야자도 제치고 왜 여기서 방황하고 있냐? 것도 혼자서? 이 골목에 깡패들 돌아다니는거 몰라? 가만 보면 기집애가 겁도 없어.”


“별 걱정을 다해주고 있네. 서방이야, 뭐야. 그리고 너 혼자 아니라고 말좀 해.”

어느새 둘 옆에 바짝 다가온 한주는 석수가 심히 마음에 안 드는 듯 이죽댔다.


‘야, 너 저리 떨어져서 가. 네가 가까이 오면 더 춥단 말야. 그리고 혼자 아니라고 어떻게 말하냐? 혼자인게 뻔한데 혼자 아니라 하면 얘가 나를 정신병자로 밖에 더 보겠냐?’


“쳇… 죽었더니 안 좋은게 또 있었군. 여자친구를 눈 뜬 채로 뺏기는 처지라니…”


‘뭐? 여자친구??’


윤조는 한주 쪽을 홱 돌아보았지만 한주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하 윤조. 듣고 있어?”


“어… 응? 뭐라했어?”


“이런데 혼자 돌아댕기면 위험하다고! 너 학교 마치고도 맨날 혼자 늦게 버스정류장 내려오지? 내일 부터는 내가 야간 알바 가기전에 버스 태워주고 갈께. 그리 알아.”


“그럴 필요 없어.”


“네 의견 물은거 아니고. 그런다고. 그런줄 알라고.”

어느새 석수는 윤조의 책가방도 뺏어서 메고 있었다.


윤조는 그런 석수가 싫지 않아서 입을 닫았다.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시간이 늦어지자 더 추워졌지만 이상하게 아까보다 따뜻한 느낌이다.


“쳇… 기집애. 마음이 타기 시작했군. 쓸데 없는 짓을 부탁해서 곤란해진건 난데… 아… 갑자기 인어공주가 이해가 가지? 분명히 물거품이 되기 전에 홧병으로 심장이 까맣게 탔을테지…”


한주는 근처 전봇대에 걸쳐진 전선에 앉아서 두 청춘이 본인만 모르게 숨긴 마음을 태우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란께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 안하요. 살았을때 들이대 보지 그랬소. 이제 와서 그래본들 뭔 소용이단가… “


“어차피 잘 보이진 않지만 저것들의 끝이 까맣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면 저 허당이 또 마음이 썩을텐데… 그게 좀 신경쓰일뿐이에요.”


“이미 봉우리가 맺어졌으면 결국은 열매를 보고야 말제. 어쩔수 없다고… 그런것은… 이승이나 저승이나 구천이나 제일 골치아프고 변수가 되는게 뭔지 아오? 그게 그 얄궂은 사랑이라는 거 아닌가… 에고… 한 잔 더 해야 쓰겄는디 이 거지같은 동네엔 노숙자도 없네.”


어느새 주정뱅이 영이 또 한주 옆에 붙어 앉았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저 쫓아다닐거에요?”


“당연하지. 자네 송사가 해결이 나야 내 송사도 드디어 끝이 난당께. 아 이놈의 떠돌이 생활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어여 불구덩이든 얼음벽이든 들어가서 갚을 만큼 갚고잡다고…”


“그래서… 생모의 한을 풀려면 그 집 구석을 다시 가봐야겠고… 사신장이 준 숙제도 풀어야 하고… 제기랄 죽어도 뭐 이리 할 일이 많아…”


“그런 건 죽기 전에 심사숙고 했어야지. 죽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제? 죽으면 그게 또 시작이여. 어쨌거나 좋은 대글빡 잘 굴려서 뭐시냐, 꼼꼼하게 계획을 좀 짜 보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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