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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2 29화

05.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무엇이 그토록 탁하였는지

(29)

by Hazelle

“야, 오늘 선생들 회식이래. 야자 째고 싶은 인간들은 잘 없는 절호의 기회지. 중간에 나가면 방해되니까 갈 사람은 지금 나가도록 해.”


교무실에 다녀온 반장 은주가 전한 희소식에 반이 술렁인다. 물론 10등안의 인간 중에는 그런 별 의미없는 뉴스에 흔들리지 않지만… 어차피 선생의 감시가 없으면 야자의 의미가 무색하게 반 전체가 소란해 지니까 은주는 이 편이 공부할 의지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뭐해? 너 가게?”


의외로 일등이 가방을 싸기 시작하자 방금 뉴스를 방송한 은주가 놀랜다.


“어, 나 오늘 좀 갈데가 있어서…”


승진과 정수가 동시에 윤조를 돌아보았다.


“야, 갈거면 같이 가. 혼자 어딜 가는데?”


“아… 혼자 가고 싶은데… 그럼 내일 봐.”


묻는 말에는 대답 없이 윤조는 얼른 가방을 닫더니 교실을 나가 버렸다.


“우리는 떡볶이나 한 접시?”


정수가 승진을 꼬드기자 어차피 마음이 심란해 공부할 생각이 없던 승진도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이혼을 하고 싶어 하는 거야?”


“아빠가…”


둘은 야자를 제꼈지만 집에 가기는 싫어서 드문 드문 가로등이 조용한 언덕길을 걷는 중이었다.


“아니 왜?? 너네 아빠 바람 났어?”


“글쎄… 뭐 그런 것 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엄마랑 헤어지고 싶대. 의무감이 다인 사랑이 지겹다나 뭐래나… 사실 둘 사이가 그리 된 건 좀 되었다나봐. 그냥 우리 앞에서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었을 뿐. 제길. 웬만한 재연 배우 연기력을 누르지 않냐? 그동안 나랑 내 동생은 감쪽같이 몰랐었으니까 말야.”


“뭐 어차피 우리가 부모를 살필 시간이나 있냐? 신새벽에 집을 기어나와 야밤에 들어가는데… 공부하느라 바빠서 어디 가족을 돌볼 틈이 있어야지…”


“누가 들으면 전교 1등인줄?”


“야! 1등이나 나나 같은 생활하거든? 가만… 같은 생활하는데 왜 어떤 년은 일등이고 어떤년은 이렇지? 정말 생각하다보니 울화통 돋네.”


“…어… 저기… 윤조 아냐?”


분식집들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던 승진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열린 몇 군데 분식집을 두고 윤조는 셔터가 내려진 컴컴한 분식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맞네. 많이 처먹는 고2가 저정도로 마르기는 힘드니까… 하윤조는 어디서나 눈에 띤다니까… 근데 왜 수연이네 집 앞에서 저러냐? 그 집 떡볶이가 뭐 대단히 다르게 맛난것도 아닌데…”


정수가 손을 들어 윤조를 부르려 할 때 승진이 얼른 옆구리를 찌르며 입을 다물게 했다.


“몰래 가까이 가 보자. 뭐 하는건지… 떡볶이 때문이 아닌건 확실해. 그런데 언제부터 하 윤조가 조 수연을 그리 신경썼지?”


“… 그러게… 윤조가 제일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애가 조 수연이잖아. 근데 지금 조 수연 결석했다고 야자까지 째고 보러 온거라고?”


둘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윤조를 살피러 조용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 좀 살필라니까… 왜 이 아줌마는 오늘 문을 닫았지…”


“야,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냐? 사는 이유 백퍼센트인 똘똘한 딸내미가 사라졌는데 이 아줌마가 지금 어묵 꼬치 꿰게 생겼냐고.”


“그 아줌마 지금 어딨어?”


“이 셔터 안에 있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얼굴은 쥐어터져서는 산송장처럼 그냥 방구석에 앉아 있어.”


“그 미친 애비는?”


“저 아줌마한테서 동전까지 털어서 노름판 갔어. 저 아줌마는 지금 딸을 찾을 생각이 없는게 차라리 이 집구석에 딸이 안 돌아오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참이니까.”


“그래도… 딸이 오밤중에 나가서 안 들어오는데 알아볼 생각도 안한다고?”


“아까 잠깐 딸 책상을 뒤지는거 같긴 하던데 뒤져봤자 아무것도 없으니까 금방 관두더라. 생각해보니까 같이 살았을 뿐이지 딸에 대해 아는게 아무것도 없거든. 사실 걔는 정말 아무것도 없기도 했고… 친구도 없고 아끼는 물건이라곤 중학교 졸업할때 선물로 받은 영어 사전 하난데 그나마도 걔가 가져본 것중에 새것이라곤 그거 밖에 없어서 그런거고… 보통 인간이 뜨면 남는게 몇개는 있게 마련인데 저렇게 뭐가 없는 애도 드물걸. 어쨌건 저 아줌마는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을테니 여기 살필 필요 없이 집에 들어가.”


“내가 지금 이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가고 싶겠냐? 병원을 가봐야 하나…”


윤조는 땅을 의미없이 차면서 망설이느라 한주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는 것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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