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소 May 19. 2024

나는 이기적인 남편이었다

24년 5월

힘들어도 너와 함께라면

주말이 순식간인 요즘. 이틀이란 시간은 왜 이리 순식간에 흘러가는 건지. 남들은 육아보다는 회사일이 낫다지만, 나는 회사보다는 육아하는 게 훨씬 낫다. 회사일이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는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하지만. 자꾸 떠돌아다니는 잔재가 싫다. 몸은 휴식을 요구하지만 활동성이 넘치는 아기는 편안한 충전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힘든 몸을 이끌고 나간 바깥나들이. 힘들어도 아기와 함께했기에 힐링이라는 작은 선물을 받았다.

분리형 인간이 되자

직장생활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는데 "열심히 하지 말자"이다. 사회생활 초창기에는 열심히 하면 날 인정해 줄 거야~라는 순수한 열정에, 주말에도 심야시간에도 업무와 함께 했는데, 연차가 높아지다 보니 그저 한낱 바보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회사에서 부려먹기 좋은 일꾼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본성이 노예 기질이라 그런지 여전히 "열심히"라는 수식어를 떼놓지 못한다. 부서별 책임 떠넘기기의 희생양으로 발돋움한 요즘 회사 나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하... 이를 어쩌지)

집에서도 불현듯 떠오른 회사 일. 머릿속에서 지우려 해도 생각이란 것이 떠오르면 각각의 분노들이 서로 지지고 볶는다. 요새는 나의 뇌세포들이 너무 쉽게 흥분을 경향이 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분리형 인간이 되야겠다.

선잠

아기가 감기가 걸려 새벽 내 자다 깨다를 반복한 탓에 선잠을 잤다. 코가 막히고 기침을 반복하는 아기. 계속되는 기침에 코를 풀라고 해도, 물을 마시라 해도 싫다며 짜증을 내는 아기.

출근 때문이라도 잠은 자야겠고 아기가 아프니 보살펴야겠고. 조그만 몸뚱이가 새벽 내 아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장시간 동안 힘듦을 견뎌내다 해가 거의 뜰 때쯤 지쳐 잠이 든 아기. 선잠 덕에 정신이 몽롱한 출근길이 되었지만 아픈 아기보다 더 힘들까. 오늘은 부디 야근을 없기를. 아픈 우리 아기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




이기적인 남편

또 비가 왔다. 요새의 일기예보는 예측률이 상당해졌다. 정확하게 오후가 되니 내리는 비. 소중한 휴일이 아까워 비 오기 전만이라도 바깥바람을 쐬려 했는데 갑자기 시작된 와이프의 집청소에 오전은 스리슬쩍 사라졌다. 나가자고 했더니 왜 갑자기 청소를 하시는 건지. 설마 비가 오려나 했던 오후. 먹구름이 끼더니 이내 비가 내렸다. 바깥 외출은 물거품이 됐다.

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답도 없는 회사의 과제가 머리에 떠올랐다. (혹시 정신 분리 방법을 아시는 분?) 답답한 마음에 내리는 비를 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휴일의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갔고 와이프는 잠이 들었다.

한밤이 되니 비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곤히 잠이 든 아내를 뒤로하고 밖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집청소를 시작했던 와이프의 머리에는 헤어롤이 있었음을. 가고 싶은 키즈카페가 있다고 폰으로 링크를 보냈음을. 그리고 이 날은 스승의 날이었음을. 에효. 너무 내 생각만 했다. 나는 이기적인 남편이었다.



이전 06화 출근 안 하고 아기랑 놀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