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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소 Jul 21. 2024

아버지의 모자

24년 7월

호불호의 탄생

어렸을 적 개개인에 대한 선호는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낭만적 평화주의 인류애자. 다만 일 년 이 년 해가 늘어날수록, 즉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성인군자 정도의 레벨이 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아니 이기적인 것이 사람이라는 것. 애써 정을 주었던 상대가 가식적인 반응이었음을 깨닫고부터는 호불호라는 판단이 생겼다. 판단의 결과는 무시로 응수하기. 최근의 상황적 혼란 때문에 정도가 심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지론이라 한다면 내 인생에 필요 없는 사람들까지 감싸고 돌 건 없다는 것.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건 없기에. 그들에 대한 나의 헌신은 시간 낭비다.

행복한 물놀이

물놀이를 좋아하게 된 요즘. 세상이 좋아진 건지 여름이 되면 동네의 놀이터가 물놀이터가 되어, 동네 친구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길 수가 있다.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아기를 집에만 있게 할 수 없어 주섬주섬 래시가드 챙겨 입고 나선 한 여름의 한낮. 형누나들의 파워풀한 물놀이에 움츠리긴 했지만 나름의 물놀이를 즐기며 시원한 시간을 보냈다. 형누나들의 물총을 넋을 놓고 있는 바라보는 아기가 왜 이리 귀엽던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아버지의 모자

2주 만에 방문한 아버지는 더 핼쑥해지셨다. 다행히 식사는 하시지만 여전히 체중이 올라오지 않는 모습. 앙상한 팔과 다리에 비해 발은 괜찮아 보였는데 사실 괜찮은 게 아니라 부은 상태였다. 이번에는 머리도 많이 빠지신 모습이다. 처음에는 이발을 하신 거라 생각했는데 정수리 쪽이 많이 허전한 것을 보고 앞에서 또 울컥할 뻔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좋지 않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손주 많이 보여주기 뿐인 것 같아 죄송스럽기만 하다. 잠들기 전 편지를 써 볼까도 했는데 막상 글자를 적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애써 잠을 청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건 상당히 마음 아린 일이다.

아버지에게 자가 필요하다 싶다. 예전에는 산을 타기 위해서 쓰시고는 했는데 이제는 안쓰러운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 쓰실 것 같다. 모자의 쓰임새가 패션만이 아님을 이제 알게 됐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힘내시려는 모습은 여전히 멋있다. 사랑한다 나의 아버지.

스트레스 해소법

스트레스가 가슴속에 차올랐다. 가래 뱉듯이 칵-퉤! 하며 내뱉고 싶지만 가슴팍에 머물러 나오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턱 하니 머물러 있다. 한숨을 크게 쉬어봐도 좀처럼 라앉지 않는 녀석. 애써 시선을 돌려봐도 떠나질 않는다. 정신건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에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사진첩을 열어 귀염둥이 아기 사진을 쳐다본다. 아기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잡념이 없어진다. 아기와 함께 한 일요일 낮의 물놀이 한 시간을 떠올린다. 속 안에 꽉 들어찬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아기가 주는 행복. 아기를 키워보지 않는다면 경험하지 못할 귀중한 경험이다. (물론 힘이 들기야 하지만) 아기는 나에게 있어 실로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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