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을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가장 섹시한 직업으로 불리는 데이터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머신러닝을 활용한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직접 기존 알고리즘을 변형하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 알고리즘을 활용해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기존에 연역적 사고로만 기획했던 일 중 데이터를 통해 귀납적인 방법으로 검증하고 인사이트를 찾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머신러닝을 포함한 인공지능의 핵심 중 하나는 과거 패턴을 통해 미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현장 전문가나 전략 기획자들도 과거 패턴을 가지고 일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수사례를 찾아 그 패턴을 통해 새로운 일에 적용해보려는 시도는 대부분이 하고 있는 일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틀린 패턴들도 피드백 없이 반복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머신러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것을 새로 대체해서 정확한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과거 점포 개발 업무는 점포개발 담당자의 영업망으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영업을 기획하는 팀에서는 이렇다 할 계획보다는 몇 개의 패턴과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 신규 점포를 개발했습니다. 가령 대중교통의 발달에 따라 ‘버스 정류장 앞 가게’라든지 ‘지하철 출입구 앞 상가’ 등으로 패턴을 정한 것이죠. 이런 패턴이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온라인, 오프라인, 지금과 예전을 가리지 않고 매출이 발생하는 기존 조건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곳이 좋은 매출을 거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좋은 자리는 임대료가 비쌌기에 매출이 나와도 수익구조를 버티지 못하는 매장들이 나왔습니다. 점포 개발팀은 매출이 나와도 손해를 보는 매장에 대안을 내야 했습니다. 기존 패턴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죠. 상가 2층으로 자리를 옮겨서 임대료를 줄여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 2층으로 옮기는 것은 매출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대신 더 멀리 입지를 바꾸는 일도 했죠. 그러다 적정한 위치에서 매출과 비용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임대료의 변화에 따라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패턴을 바꾸는 데 성공한 조직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조직도 있었습니다.
흔히 전문가 시스템이라 불리는 ‘휴리스틱 로직’은 이렇게 시간의 단면을 잘라 그때의 암묵지 같은 원리를 정리할 수는 있지만 변화하는 패턴을 늘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사람이 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숙제가 따릅니다. 아무리 트렌드를 잘 파악하는 기획자라고 해도 감각이 떨어지면 금새 경쟁력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변화가 빠른 소비재나 유통, 패션, 코스메틱 업계에서 나이 든 기획자가 드문 것도 의도적으로 기업에서 내 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타깃 고객의 감성에 맞게 늘 유지할 수 없는 기획자 숙명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점포개발 업무를 한 번 정리된 패턴으로 ‘역 앞에 큰길이 아닌 바로 옆 길에 1층으로 개발해서 고객 수와 임대료의 균형을 잡겠다’라고 정하고 전국에 그런 곳을 찾아서 미리 지도에 찍어 놓고 기획을 한다고 해도 원리 자체가 변하는 상황을 겪게 되면 이런 정리는 필요 없듯이 기획이 하는 모든 일도 이런 식의 전문가 시스템을 넘어선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머신러닝의 등장은 이 지점에서 기획과 만날 수 있습니다.
머신러닝은 오픈소스의 확산을 통해 대중화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영업기획을 하시는 분도 회사에서 파이썬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돌려 패턴을 찾는다는 말을 최근 제게 했습니다. IT 부서에서만 할 것 같은 일을 경영학 전공인 영업 기획자가 한다는 게 이제는 많이 놀랄 일은 아닌 게 되었네요. 더군다나 로컬 서버로 간단하게 실행하면 프로그램 비용도 들지 않는 장점은 개인이든 법인이든 설명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머신러닝이 먼 이야기로만 남지 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가장 쉬운 머신러닝 방법은 판단입니다. 그게 맞냐, 아니냐 하는 양자 선택의 문제는 지도 학습을 통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미리 정답을 알려주고 정답을 만든 패턴들을 컴퓨터에게 학습시킨 다음 비슷한 패턴을 보이지만 아직 맞는 시점이 도래하지 않은 고객이나 상품을 찾아내는 것이죠.
기존 제조업에서는 상품과 고객을 분리해서 다루었습니다. SCM을 담당하는 부서와 CRM을 맡는 조직은 서로 많은 교류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상품을 잘 기획하고 잘 만들고 매출이 일어나게 하는 일과 구매하고 평가하는 고객을 한 번에 관리하는 게 별개의 일이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 조직에서는 전통적으로 SCM 관련 조직에 많은 힘을 실어준 반면 고객 관리는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편이 많았습니다. 물론 좋은 상품과 서비스가 핵심이지만 그것은 고객의 반응과 수요를 알고 제대로 피드백이 되어야 완성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따라서 기획자의 관심은 주로 상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한다고 하면 상품이 어떻게 팔리고 어떤 수익을 내는지 정도였죠. 간단한 집계를 엑셀이나 액세스, SQL 정도면 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과 트렌드를 파악하면 되는 일이기에 더 앞선 시장의 트렌드와 기술이 언제 여기서 어떤 식으로 푸는 지만 보면 되는, 벤치마킹의 시대였죠.
하지만 시장이 더욱 세분화되는 수요보다는 공급이 넘쳐나는 시대에 들어오면서 고객을 뒤늦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기획자에게 고객 데이터는 더 이상 부수적인 것이 아닌 것이죠. 고객이 어떻게 정보를 탐색하는지 관련된 데이터가 우리 회사 서버에 어떤 형태로든 있는 게 패턴을 잃지 않고 늘 찾을 수 있는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머신러닝을 여기에 적용하면 할 일이 많습니다. 상품과 고객과 관련된 데이터를 모두 모아 두고 상품과 고객을 매칭 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타깃 고객에 대한 암묵지만 있던 공급을 고객을 분석해서 고객에 맞게 공급할 계획을 만들 게 됩니다. 의사결정 나무나 군집분석 등을 활용하면 이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어느 기준으로 나뉘게 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 카테고리를 모아 놓고 커머스를 하는 기업에서 각 상품을 어떤 메시지로 고객에게 마케팅 포인트를 잡을지 기획할 때도 기존에 알고 있던 생각과 전혀 다른 인사이트를 머신러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매일, 혹은 매주, 매월 단위로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데이터를 넣으면 매번 변하는 고객의 프로파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객의 가입정보인 연령, 성별, 거주지, 결혼 여부나 자녀 수 등부터 출발해서 고객이 주로 접속하는 디바이스, 운영체제, 시간, 장소도 알 수 있게 되고 데이터 확보 여부에 따라 고객이 주로 검색하는 키워드나 장바구니에 함께 담아두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고객이 이탈하고 어떻게 제휴 채널을 통해 접속하는 지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마케팅 루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닌 고객의 프로파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통해 우리 서비스,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이 누구이며 이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지 기획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댓글이나 평가, 상담, SNS 메시지를 데이터로 분석하게 되면 현재 개선해야 하는 품질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객 몇 명 만나보고 업계지 찾아서 누구나 다 아는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일을 안 하거나 이런 것을 할 데이터가 회사 내부에 없거나 이걸 한 번만 하고 계속 추적 관리하지 않기에 이런 일이 기업 내부에서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데이터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죠. 감각 있는 사람이 모든 일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금융 시장에서도 이미 퀀트가 어지간한 펀드 매니저 이상으로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을 본다면 데이터를 가지고 기획의 인사이트를 뽑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입니다.
패턴이 있는 것이면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실제 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적용할 주제를 정하는 것입니다. 기획자가 기업 내부를 이끌고 가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실무 부서 몇 개와 함께 협업해서 실무에서 중요한 판단을 암묵지로 하는 것을 머신러닝으로 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CRM 캠페인의 고객 전환율을 올리는 것이나 재고 운영에서 할인을 언제 얼마나 해야 하는지부터 시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로스 해킹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서비스와 고객을 서로 맞추는 것도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 대비 시작하는 것을 비웃지 말고 계속 개선해 나간다면 데이터로 기획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시작입니다. 20세기 방식으로 기획을 하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빨리 다양하게 변하고 있으니까요.
머신러닝을 배우고 나서 과거에 기획했던 가설이 얼마나 실제와 달랐는지 알 기회가 많았습니다. 처음에 예로 든 점포 개발의 경우도 과거 암묵지로 어떤 시설이 반경 몇 킬로 내에 있고 주변 아파트 가격이 얼마라서 구매력이 어느 정도 있는지 추산하는 수준으로 대형 점포를 개발한 게 판판이 오픈 직후 부진한 매출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전문가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데이터로 일하면 생각보다 단순하고 뻔한 패턴이 정답이라는 결론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상당수는 핵심적인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할수록 높은 확률로 정답이 찾아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스스로 시스템에 갇혀서 과거 구매한 사람만 쫓아다니면서 신규 고객이 유입되지 못하는 서비스와 브랜드를 자초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규 구매가 가능할 것 같은 사람, 지금 핵심 고객은 아니지만 그 주변 정도 되는 사람을 데이터를 통해 찾아내서 새롭게 유입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세우는 게 필요합니다.
당장 기획 팀에서 몇 명이 모여 스터디를 진행하시면 됩니다. R이나 파이썬은 설치가 무료고 구글링을 통해서도 기본적인 수준은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좀 하다 보면 데이터 확보와 서버 스펙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있는 머신러닝 알고리즘도 어지간한 금융이나 추천 서비스가 아닌 다음에야 튜닝해서 쓸 필요까지는 없으므로 그대로 써도 되고 실제 앙상블 모형을 만든 것보다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회귀, 신경망, 의사결정 나무 알고리즘도 상당 부분 복잡한 알고리즘만큼의 정확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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