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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Oct 02. 2023

가심비의 대학원 진학

#8. 대학원과 시간의 trade-off

주변 사람들의 커리어에 결정적 순간들을 리뷰하면서 어떤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물론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여기서 말하는 평가는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게 메일 등으로 커리어에 대해 질문해 주시는 것에 대한 작은 대답이 되었으면 하는 차원에서 이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커리어 성공의 평가는 철저히 자기만족입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발견한 만족과 불만족을 공유드리며 여러분의 커리어에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8. 대학원과 시간의 Trade-off



1번 사례의 연봉 추이 (추정)

- 1년 차 3,000만 원 (첫 회사)

- 5년 차 4,800만 원 (휴직 전)

- 8년 차 6,000만 원 (대학원 진학)



포인트

더 나은 직장을 가기 위한 대학원 진학은 때가 있고 갈수록 가성비는 낮다





#1.



MD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 친구는 한 때 좋은 성과를 내며 계속 MD로 잘 나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잡은 아이템과 브랜드가 회사 내부적인 요인들로 실적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되자 그 조직이 통째로 날아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친구는 그때 때마침 출산과 육아로 장기간 휴직을 쓸 수 있게 되었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왔을 때는 원래 있던 브랜드도 사라져 새로운 조직에서 MD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회사는 MD 중에서 극소수만 승진 등 좋은 대우를 해 주었고 대부분의 MD들은 경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고 있었죠. 이 친구도 육아 휴직 후 복귀해서 경력은 쌓이지만 앞으로 어떤 대우를 받을지 너무 잘 알기에 지금 하는 일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까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1) 비슷한 아이템을 다루는 타 회사의 MD로 이직

2) 지금 회사에서 유사한 직무로 변경

3) MD 경력을 살려서 일할 수 있는 유사 직군으로의 타 회사 이직



이 친구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MD로서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휴직을 했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트렌드에 대해 손을 놓아버렸고 복직 후 회사에서 주어진 아이템은 이 친구에게는 이전에는 해 본 적이 없고 재미도 없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러면 원래 하던 아이템을 다루는 회사로 이직하면 되는 게 아니냐란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는데요. 이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회사보다 낮은 처우를 제시하는 회사로는 이직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때 선택한 결정이 대학원 진학이었습니다. '빅데이터 대학원' 이죠. 저는 그 결정을 처음 들었을 때 좀 의아했습니다. 물론 MD 경력을 살리면서 데이터를 볼 줄 알면 일하는데 도움은 더 되겠지만, 배움이 아닌 더 나은 이직을 목적으로 그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대학원을 나왔다고 해서 그 업계에서 채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을 텐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2년 정도를 대학원에서 보내고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MD를 했던 아이템을 판매하는 커머스 기업들의 데이터 분석 직무에 서류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8년 차 정도가 되었고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이 친구를 선뜻 채용할 회사는 없었죠. 모호했던 빅데이터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지만, 이직이 목적이었기에 2년이란 시간은 어쩌면 이직을 하는데 많은 기회들을 잃게 만들었는지 회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MD가 아닙니다. 데이터 분석가입니다. 중견 기업에서 회사 내부 및 타 회사의  데이터를 가공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하는 친구죠. 이 친구는 데이터 분석가로서 더 경력 개발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이직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때가 한 회사에서 분석가로서 일한 지 5년 정도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이직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정보 탐색부터 가고 싶어 하는 회사에서 필요한 역량을 배우고 준비하고 적용하는 과정도 필요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친구는 더 나은 이름의 학부 간판이 없다는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고 대학원 진학이라는 것으로 준비를 해 버립니다. '빅데이터 대학원'이죠.



이미 데이터 분석을 하기 위한 스킬 셋을 다 갖추고 있었고, 프로젝트도 해 둔 게 있는 상태였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회사를 가기 위해서는 학력이 필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일해서 경력을 만들고, 저기서 일해서 더 나은 성과도 만들고 하는 방식처럼 커리어를 가는 게 아니라 한 방에 높은 수준으로 가고자 하기에 지금 회사의 경력과 경험에 작은 것을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고 강력한 한 방, 공인된 학력이 도움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데 약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을 하면서 대학원 과정을 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힘든 부분이 많았기에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졸업장을 기다리며 이직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주어지는 프로젝트들이 갈수록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대학원 졸업장이 필요했기에 참고 기다렸죠. 그리고 졸업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회사에 자소서를 넣었지만 서류부터 통과가 잘 안 되었습니다. 당황했죠.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지만 대학원이 지금의 회사와 과거 학부를 덮고 남는 우산이 되어 주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더 많이 배운 사람이 필요해서 경력직을 뽑는 게 아니라 지금 일을 맡겨도 될 사람을 뽑는 게 경력직이기에 학위 한 줄보다는 지금 맡길 일을 해 본 경험한 줄이 더 이직의 성공률을 높여주니까요. 시장이 아닌 나의 생각과 필요로 시작한 대학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스스로의 생각을 눌러 버린 것이 시간이 지나 결과로 나타난 것이죠.



지금도 이 친구는 원래 다니던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원을 마친 뒤 1년 이상 지났고 다루는 프로젝트는 점점 방향성을 잃고 있지만 원하는 수준의 회사에 갈 때까지 일단 다니면서 자소서를 계속 넣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원하는 경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여러 회사에 바로 지원을 해 보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직장인이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직을 알아보는 이야기가 다 이런 식은 아닙니다. 연차가 더 빠를수록, 직무와 유사성이 높은 학과로 진학일수록, 사실 이미 경쟁력 있는 상태일수록, 진학한 대학원이 희소한 우수성을 가질수록 대학원 진학은 길게 보았을 때 더 나은 결과들을 만들어 냅니다. 대학원 회의론이 있는 지금도 그런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회사 돈이 아닌 내 돈을 내고 늦은 나이일수록, 목적이 배움이 아닌 이직일수록, 학력 콤플렉스를 지우기 위한 목적일수록, 대학원 자체가 가기 어렵지 않은 여러 개 중 하나일수록 대학원 진학은 가성비가 너무 낮은 선택입니다. 가심비는 넘칠 수 있죠.



십여 년 전에는 MBA, 최근에는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대학은 시대의 키워드에 맞게 교과 과정을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어느 정도의 배움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얻습니다. 여기서의 '어느 정도'는 단연코 기업에서 경력직을 채용할 때 서류 통과 하이패스, 면접에서 특장점을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여러 회사에서 면접관으로 참석해서 많은 동료 면접관들과 논의를 하면서 그런 것이 더 나은 기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소모하는 게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는 1년 반 혹은 3년 이상의 시간이 커리어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고 이직하기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상태일 수 있기에 골든 타임을 소비하는 결과일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직이 목적이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많은 자원을 써서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죠.



일은 일을 통해 보통 성장할 수 있고, 학습이 필요하면 일을 하면서 일 근처에 있는 부분을 배우면 됩니다. 작고 빠르고 가볍게 시작해서 부딪히고 다시 하는 과정이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규격과 의전을 갖추어서 대량으로 시작하는 것은 너무 무겁고 리스크가 너무 큰 선택입니다. 미국 가서 편의점을 차리려면 한국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먼저 해 보라는 내용을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요. 많은 부분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다음 연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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