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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ug 29. 2024

69프로젝트

-<작가님 글도 좋아요> 17화. '코스미안상' 이태상 선생님




'오랜문학상'을 개제하고 있는 이 연재 브런치북 <작가님 글도 좋아요>15화에서 오랜문학상의 내 마음속 별칭인 '정수옥 예술상'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하나의 별이 따뜻한 기운으로 서로를 끌어당겨 연결되고 연결되어 별자리를 만들듯이 '정수옥' 선생님을 생각한 후 따라 나온 생각이 바로 <69프로젝트>다. <69프로젝트>는 문학 공모전에 응모한 69명의 글 모음집의 이름이고, 공모전의 이름은 <코스미안상>이었다. 



인문 중심의 글로벌신문, 코스미안에서 주최한 제 1 회 코스미안상 공모전은 인문에 관련된 자유로운 주제의 칼럼 2편을 공모했고 여기에 응모했다. 대상 1명, 금상 1명, 은상 10명의 수상작에 내가 쓴 글은 뽑히지 못했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메일이 왔다. 1회 공모전이니만큼 낙선자에게도 응모해 준데 대한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메일일 줄 알고 건성으로 열어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제안이 적혀 있었다.



내용인즉슨, 당선작 이외의 모든 응모작들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수작이라 그냥 낙선으로 치부하기에는 아쉬운 나머지, 고심 끝에 동의하는 사람에 한하여 모든 참가작들을 모아서 글 모음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고, 동의 여부를 묻고 있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흔쾌히 수락했는데, 머지않아 또 한 번의 참신한 메일이 왔다. <69프로젝트> 출간기념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동저자 출간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낮에는 청소 일을, 저녁에는 공부 모임을 하고 있어 시간적, 체력적, 경제적으로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참석하기로 했다. 



덕분에 모처럼 KTX를 타고 여행가는 기분으로 인서울을 하게 되었다.

부산에 사는 내가 제일 멀리서 오고 나이도 제일 많을 줄로 예상했는데, 내 나이 기준으로 머리가 허연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 더 많았고,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춘천, 인천, 대전, 대구, 부산, 제주... 지역적으로도 전국구에, 단지 이 일을 위해서 오신 건지는 확인이 안 되었지만 뉴욕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 마음 속에서 '이게 뭐라고...'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스미안뉴스를 창립하신 이태상 선생님은 한국 코리안 타임즈 기자 출신으로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 영국 대표를 지내시고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 사상을 창시하셨다고 소개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원하는 모든 참가자들이 무대에 나와서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예상에 없던 일에 처음에는 모두 쭈뼛거렸지만 점차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한 마디씩 하게 되었다.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스피치를 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떨리긴했지만, 마이크를 잡자마자 무대체질인 나는 '내가 너무 오래 말을 안했고, 부산에서 자비로 서울 까지 온 사람이니 여러분들이 좀 들어주셔야 한다'는 기백으로 속사포 수다를 쏟아냈다. 늦게 오신 분이 있다면 발언하는 나를 보고 내가 주최측 인사인줄 알 정도로 오지랍을 떨었다. 약간 지루해하는 표정들을 확인하고서야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전달하면서, 사회자에 의해서 제재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기억나는 한 분의 사연은 학벌이나 직장이 누구나 부러워할만큼 좋은 분이셨는데, 자신은 10년간 단 한번도 입선하지 못했지만 매달 문학공모전에 응모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집중해서 글을 쓰지 않게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놀랍도록 많이 참가하신 은발의 노장들은 천천히 무대까지 걸어나오시는 품세며, 진지하게 꼭 하고 싶었던 말씀을 하시는 떨리는 목소리며,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울림을 주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모든 참가자들의 발언을 신중하게 듣고 계셨던 선한 인상의 이태상 선생님은 자신의 모든 경험과 인생을 '코스미안'에 집대성하고 계신 듯 보였다. 



시상식 자리를 물리고 2부로 뜨끈한 갈비탕으로 식사까지 대접해 주셨다. 은발의 작가지망생들과의 식사는 마치 경로 잔치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69프로젝트> 3권과 이태상 선생님이 쓰신 책 <코스미안의 노래>를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고, 아직 여의치가 않아서 지금은 못 드리지만 칼럼을 써주시는 분들께 고료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다. 돌아오는 KTX 안에서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떠올랐고, 글에 대한 열정은 곧 자신에 대한, 삶에 대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가 끝난 다음에도 이태상 선생님께서 직접 참가들에게 감사의 메일을 장문으로 보내주셨다. 



개인적으로는 1회로 코스미안상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었지만, 코스미안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자들에게 취한 충실하고 온정적인 태도와 준비는 한동안 긴 여운을 남겼다. 전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들 69명이 글로 모여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결했고, <69프로젝트>는 글이 실린 ISBN이 찍힌 책이 되었다.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선착장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또 각자의 길을 간다.

지금 내가 놀이처럼 하고 있는 오랜문학상의 씨앗이 '코스미안'의 바람을 타고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떤 ‘선물’이나 ‘상’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즐겁고 흐뭇하며 행복하지 않던가.
 그래서 선물이나 상은 언제나 남에게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애인이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손자 손녀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사람이면 다 느끼는 일이다. 궂은일은 차라리 내가 겪고 좋은 일만 네가 누리기를 빌면서 아무리 주고 또 줘도 부족해 더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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