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글도 좋아요> 18화. 단풍국 블리야 작가님
제 12 회 오랜문학상 수상작은
단풍국 블리야 작가님의
<한밤중 일대일로 곰을 마주쳤다>
로 선정하였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지만, 가을의 문턱에서 한번 더 소개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봅니다.
귀여운 테디베어나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나 젤리곰이 아닌, 단풍국 블리야님이 만났던 진짜 곰을 상상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는 것으로요.
캐나다에 온 후 몇 년 간 하우스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오래된 집이기는 했지만 집주인이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레노베이션을 해 놓은 집이었다. 집 앞에는 커다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예쁘게 심어진 작은 정원이 있고 잔디가 깔린 넓은 뒷마당도 있었다.
집 근처에는 프레이저 리버 Fraser River 로 연결되는 코퀴틀람 리버 Coquitlam River 가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 강에서는 여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내려오는 연어 떼를 볼 수 있다. 강을 중심으로 있는 코퀴틀람 리버 파크 Coquitlam River Park 가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 강에서는 여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내려오는 연어 떼를 볼 수 있다. 강을 중심으로 있는 코퀴틀람 리버 파크에는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있어서 나는 그곳을 자주 걸어 다녔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늦여름 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여느 때처럼 주택가를 따라 걸었다. 차들이 다니는 거리보다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있는 주택가를 걷는 게 좋았다. 철마다 바뀌는 나무색과 집 앞에 꾸며놓은 조그만 화단의 꽃을 보며 걷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하루의 고단함이 풀리는 듯했다. 시간이 이미 10시가 넘어 오가는 사람들 없이 동네는 조용했다. 불이 켜져 있는 몇몇 집에서는 아직도 저녁 모임을 하는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던 중 멀리서 움직이는 까만 그림자가 보였다. 어느 집 앞마당 잔디 위를 어슬렁거리는 걸로 보아 그 집 ‘개’ 인 듯했다. 잔디 위에서 슬슬 밖으로 나온 개는 길을 따라서 서서히 걷는다. 그 개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는 그 개를 향해 걷고 있다. 크기가 꽤 큰 듯 간격이 좁혀질수록 점점 덩치가 크게 보인다. 내 시력으로 사물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거리에 가까워오자 나는 심장이 쿵! 멎는 듯했다.
“곰… 이… 다…”
곰이다. 까만 곰이다. 까만 곰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젠장… 페퍼 스프레이 하나쯤은 가방에 넣어둘걸…
호루라기 하나라도 갖고 다닐걸…”
걷는 길을 멈출 수가 없다. 무언가가 날 잡아당기는 듯, 홀린 듯 나는 계속 걷는다. 곰도 나를 향해 계속 걸어온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가서 저 모퉁이를 돌면 집이 보이는데…
어떡하지?
소리를 질러볼까?
불이 켜져 있는 저 집… 사람들 얘기 소리가 나는 저 집으로 달려가 살려달라고 문을 두드릴까?
그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난다. 그러다 급기야 내 생각은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이른다.
“기껏… 곰의 먹이로 바쳐지기 위해
내 운명은 나를 캐나다로 이끈 건가…
오늘 이 자리에서 곰에게 잡혀먹기 위해
그 고생을 하며 이곳에 살고 있었던 건가…
그냥 이대로 엎어져볼까?
죽은 척하면 곰이 그냥 지나간다고 하는데 확 쓰러져 버릴까?”
곰은 멈추지 않고 같은 속도로 나를 향해 걸어온다. 점점 선명하게 보인다. 얼굴도… 눈도… 툭 튀어나온 입도… 저 튼실한 네 다리도… 저 어마어마한 등치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놈은 곰이 확실하다.
“나는 죽는구나…”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무심하게도 하늘은 내게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을 주신다. 서로를 향해 걷던 곰과 나는 어느 순간 일직선상에서 마주하는 순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제발 나를 투명 인간이 되게 하라…
제발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 줘라 곰아…
이대로 그냥 스쳐 지나가면 되는 건가?
이대로 스쳐 지나가면 뒤를 돌아볼 수 없을 텐데… 곰이 나를 뒤에서 공격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어떡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공포감이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이렇게 엇갈려 지나는 순간이 오고 곰이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더 무서웠다.
‘곰이 이대로 내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가면 나는 그 순간부터 죽어라 뛰어야 하나?
그리고 코너를 돌아 집까지 쭉 달려가면 괜찮을까?
난 달리기도 잘 못하는데ㅜㅠ 곰이 달리면 나보다 빠르겠지?
내가 갑자기 달리면 곰이 방향을 틀고 나에게 뛰어오겠지?
그럼 내 뒤에서 나를 덮치겠지?
나를 덮치기 전에 내가 집까지 갈 수 있을까?
일단 보이는 집으로 무작정 달려 들어갈까?
곰이 내 옆으로 온다. 나와의 간격이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두 눈은 왼쪽에 있는 곰에 고정된 채 한 걸음을 내딛는데 곰이 내 등 뒤로 사라진다. 식은땀이 주르르 흐른다.
“일단 침착하자… 저 코너까지 침착하게 걸어가자…
같은 속도를 유지하자…
내 운명을 쥐고 있는 저 곰을 자극하지 말자…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걸으면 모퉁이다…
저 모퉁이까지만 버티자…
저 모퉁이만 돌자… 제발…”
오늘따라 내 보폭은 왜 이리 작은 건지… 걸어도 걸어도 모퉁이는 아직 저기에 그대로 있다. 귀를 바짝 세우고 뒤에서 움직임은 없는지 감지해 본다. 아직 이상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걸어! 걸어!
좀 더 크게! 좀 더 빨리 걸어!!”
모퉁이까지 왔다. 드디어 모퉁이를 돌았다.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고 조금 더 걷다가 심호흡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본다.
“그놈은 없다!”
오늘 내가 쪼리를 신지 않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쯤이면 해볼 만하다. 가방을 옆구리에 끌어올리고 그때부터 나는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뛴다. 고등학교 체육대회 때 100미터 달리기 이후로 이렇게 최선을 다해 뛰어본 적이 없다.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다.
“문 열어~ 문 열어~~”
집에 있던 조카가 놀라서 뛰어나온다.
“이모, 무슨 일이에요?”
“허… 허억… 고… 고오옴… 곰… 문 닫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난 닫힌 문에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길에서 일대일로 곰을 마주쳐도 살아남는 이 강인한 생명력!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연어 산란기가 오는 여름부터 겨울 직전까지 곰은 강 주변에 서식하며 연어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연어로 실컷 배를 채우고 필요한 에너지를 몸에 구축해 놓은 상태에서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난 그 공원으로 더 이상 산책을 가지 않았다.
두려움에 대하여
단풍국 블리야 작가님의 명작 <한밤중 일대일로 곰과 마주쳤다>는 제가 읽은 브런치 글들 중에, 아니 제가 읽은 모든 글들 중에 결코 잊을 수 없는 글이며, 놀라운 간접 경험이라 일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음에도 다시 한번 앵콜로 영웅 블리야 님과 곰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각각 다른 삶의 터전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살지만 우리는 늘 또 다른 곰을 만나고, 크고 작은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회피하거나 직면하거나 극복하면서 살아갑니다.
용기에 대하여
한비야 언니는 명저 <1그램의 용기>에서 '용기란 두려움을 극복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용기란 무모와 비겁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용기의 심리학자 아들러는 '진짜 인생을 살려거든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라고 합니다.
영성가들은 '두려움은 어두운 상태이며, 깨달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겁이 많은 저는 감히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지만, 두려움을 의식하고, 어둠을 의식하고, 옳은 일에 대해서는 대립을 감수하며, 무모와 비겁 사이를 의식하는 매일의 용기를 연습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존재감에 대하여
다시, 단풍국의 곰으로 돌아가서... 그 순간, 나라면 어떻게 했고,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다시금 오싹해집니다. 비겁에 가까운 용기로 무작정 뛰었다가 곰에게 따라 잡혔거나, 무모에 가까운 용기를 발휘하며 정면승부했다가 뼈도 못 추렸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극도의 위협 속에서 차분하고 적절했던 블리야 님의 대처가 놀라웠고, 저는 블리야 님께 '곰을 이긴 자'라는 별명을 지어드렸고, 이어서 오랜문학상의 특사로 추대하였답니다. 장난으로, 재미로 한 일이기도 하지만, 늘 차분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블리야 작가님의 명석한 판단력을 리스펙하여 저의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데 말이죠.
이름이 사라지고, 나이가 사라지고, 성별이 사라지고, 형체가 사라지고, 말이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한 일, 그 사람에 대한 예측, 그 사람의 느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그 느낌을 '존재감'이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존재감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늘한 두려움을 선사해 준 단풍국의 곰을 통해 용기의 사람, 블리야님을 알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특별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