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룸메이드 일을 시작하면서 넘쳐난 이야기들을 꼭 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는 글을 쓰고 싶지만 몸이 너무 고되어서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뭐라도 써두지 않으면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2016년 어느 날, 떠 오르는 대로 목차만 써두었다.
제목 (가제) :천사의 일
목차
1. 군대와 소방관이 연상되는 룸메이드 열혈 훈련기
2. 차분한 힘이 필요한 멋진 일
3. 호랑이가 쫓아와도
4. 어떻게든 끝난다
5.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불행하다. 하나의 흐름일 뿐
6. 현자들의 어록
7. 서열 4위 나의 멘토
8. 서열 2위와 친구가 되다
9. 서열 1위와는 아직 대화해보지 않았다
10. 주임들의 포스
11. 손님들의 유형
12. 공간이 말을 한다
13. 돈의 힘. 팁 이야기
14.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15. 몸이 만든 길
16. 머리만 쓰는 일이 없듯이 몸만 쓰는 일도 없다.
17.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18. 천사를 만나 천사를 꿈꾸다
19. 성과 속. 지정의의 하나 됨을 위하여
20. 아름다운 흙이 되면 된다
그 마음이 점점 커지고 쌓여서 2019년에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때로서는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의 최선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급한 마음, 초조한 마음, 차분하지 못한 마음을 실패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잘한 것 하나는 '그래도 끝까지 썼다'는 것이고 어찌어찌해서 책이라는 한 권의 물질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실패라고 생각한 그 책이 없었다면 이후에 고쳐쓸 내용도 없었을 테니까.
제목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
부제 :작고 연약한 것들의 승리에 대하여
목차
이야기를 시작하며. 최악의 순간 나를 위로해 준 것들
1. 별이 들려준 이야기
2. 지하 감옥 여행기
3. 채셔 고양이와 갈림길
4. 하늘나라 여행기
5. 바다 선생님
6. 용서를 가르쳐 준 분
7. 들뢰즈의 고구마
8. 새들의 이야기
9. 앵두낙엽버섯의 관조
10. 원숭이 마음
11. 꽃 도둑
12. 전나무와 기러기
13. 나의 그리그인 시절
14. 순간에 사는 아이들
15. 하농 예찬
16. 꿀벌의 세계
17. 난독증의 독서가
18. 행복한 청소부
19. 작고 네모난 것들
20. 일상적 삶에 대한 긍정
21. 위인들의 아르바이트
22. 아침 열기
23. 천사처럼 커피 마시기
24. 버림의 미학
25. 양자의 세계
26. 디테일 수집가
27. 괴테의 식물원
28. 짚신벌레의 도주
29. 마음을 챙기는 글쓰기
30. 별과 먼지
31. 빛과 소금
32. 미카엘과 루시퍼
33. 약한 자의 승리
34. 신의 이름은 갈증
35. 신은 길 위에 있다.
이야기를 마치며. 불고 또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이 책을 쓸 때의 솔직한 심정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당시 모든 것으로의 상황이 절벽 앞에 서있는 것 같았다. 말 못 할 이유로(이 이유를 말로 할 수 있을 만큼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이 글쓰기의 최종 목표라는 생각을 이 대목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말 못 할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글로 표현할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딸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경험한 일들을 밑천으로 딸을 비롯한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들을 써보자는 절박한 생각으로 써나간 것이다. 유언이라는 표현은 한마디도 쓰지 않았지만 일종의 유언 같은 책이었다. 이후에 이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실패했다. 심지어 딸이 읽지조차 않았다. 이 유언집 사건으로 오래전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상대방을 위해서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라는 것은 사실 자신의 문제라고.
SNS에도 자녀에게 남기는 유언과 같은 글들이 많이 보인다. '이것만큼은...'이라고 쓴 절박한 외침들은 사실 자신의 삶에서 풀어야 할 문제에 닿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곧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딸과 세상을 향해 썼던 절실함은 딸에게도 세상에도 읽히지 않았다. 그 후로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고통스럽게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쓰리지만 냉혹하고 엄정한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죽지 않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살아남아 그때 초조한 마음으로 급하게 세상에 던졌던 글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고쳐 쓰고 있다.
결국 내가 할 일은 내가 쓴 글을 끊임없이 고쳐 써서 내가 하고 싶은 말에 가깝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쳐 쓴 글을 2023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을 통해 다시 한번 재표출했다.
제목 :프랭크를 찾아서
부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목차
1. 너는 왜 네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니?
-나는 왜 내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
2.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
-작가의 삶을 살기 위한 준비
3. 호텔 헤르메스
-값비싼 작가 수업
4. 프로젝트, 시지프스 ROOM11
-행동이 앎인 사람들
5. 고장 난 시계
-짚신벌레와 나무늘보
6. 빨간 성경책
-가장 어두운 곳의 빛이 가장 밝다
7. 꿈을 말하지 마
-선함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
8. 프랭크 찾기
-최후의 고독한 싸움을 향하여
9. 2020호의 숨겨진 우주
-구체적인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세계
10. 세상의 지평을 넓혀갈 나만의 탐험선
-글쓰기의 재발견
11. 너의 단어를 물로 가득 채워라
-새 글감 노트의 이름을 짓다
12. 앙갚음의 글쓰기
-세상에 통하지 않는 분노는 펜을 들게 한다
13.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
-묵은 감정을 배설하는 글쓰기의 치유력
14. 유브 갓 메일
-휴지통에서 건진 남자
15. 무드 오렌지
-정신의 물질화
16. 인생은 스톱모션
-세상은 원자로 되어있다
17. 지옥의 도서관과 천국의 도서관
-천국과 지옥은 공간이 아닌 영혼의 상태
18. 프랭크는 누구인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19. 읽지 못하는 것을 읽게 하는 힘
-힘을 불어넣어 주는 근원
20. 너의 천사에게 물어봐라
-천사는 우리와 함께 걷는다
이 글을 쓰면서는 2019년만큼 절박하지 않았다. 결과가 어찌 됐든 끊임없는 고쳐쓰기만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의 목차, 2019년의 첫 에세이집, 2023년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세 묶음의 글들은 모두 제목이 다르고 목차가 다르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프루스트가 '모든 작가는 사실 하나의 이야기 밖에 쓸 수 없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억과 해석이 바뀌면서 다르게 표현될 뿐이라는 것을.
프루스트는 '작가란 유한한 과거를 무한한 이야기의 밭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다.
2019년에 쓴 첫 번째 책이 단번에 성공을 거두었으면 2023년의 고쳐쓰기를 통한 성장과 생산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실패가 실패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