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취약할 때 힘을 발휘하는 글쓰기
그러니까 이 모임은 누군가 독서지도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이끄는 구조가 아니라 나름의 삶의 어려움 속에서 방향을 찾는 사람들이 나침반으로서의 읽기와 쓰기를 함께 하면서 도모하는 심리 재활 프로그램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자신의 글쓰기 수업에서 했던 방식 중 우리 모임에서 차용한 방식은 이것이다.
1. 10분간 모두가 글을 쓴다.
2. 10분이 지나면 각자가 썼던 글을 차례대로 읽는다.
쓰고 읽는 것이 다다. 단, 시간을 정한다는 원칙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글에 대해 비평하는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글이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요." 식의 말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좋다 나쁘다는 칭찬도 비평도 없다. 그냥 자신이 쓴 글을 읽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차례를 넘기면 된다. 또 자신의 차례에 발표를 생략하는 것도 허용된다. 자기 차례를 자주 통과시키는 사람이 있더라도 괜찮다. 아무튼 수업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 수업의 특징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읽고 때문에 의식이란 것을 챙길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비평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유를 얻게 된다. 다른 사람 작품에 평을 하지 않는 이 방식은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겠다는 건강한 욕구를 만들어 준다. 말하고 싶은 에너지를 다음번 글쓰기에 쏟아붓는 것이다. 쉬지 않고, 쓰고 읽고 쓰고 읽는 것을 반복하는 이 방법은 내부의 검열관을 잘라 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238-240쪽)
우리 모임에서는 처음에 30분으로 시작을 했다. 시작할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글의 배수로가 막혀있는 상태였고, 글제가 주어지자마자 머뭇거림 없이 곧바로 글을 쏟아내지 못해서 버퍼링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쉽게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답답함을 견디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펜을 잡은 손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마감 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5분만 더 쓰자는 제안을 할 만큼 많은 감정들이 쏟아지곤 했다.
글제를 정하는 것도 처음 한동안은 과거 직장에서 나이와 연차가 제일 많고, 이 모임을 주도한 내가 하다가 구성원 모두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주제를 생각해 오는 것으로 변화를 주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
-일주일 후에 내가 죽는다면?
-내 인생의 세 남자 (여자)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10년 후의 나는?
-나는 기억한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시도와 생성은 이 모임을 하는 동안 단지 교실 안에서 읽고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버는 일을 병행했다. 각자 상황이 달랐지만 직장을 잃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힘이 빠진 상태에서 누군가 한 명이 새벽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져온 활력은 곧 다른 학인들에게도 전염되었고, 헬스장 청소, 독서실 총무, 카페, 베이커리, 게스트 하우스 청소 등 일정한 시간 몸을 움직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의식이 휘저어졌고, 이는 곧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동력이 되었다. 글쓰기 근력이 실생활의 근력이 된 것이었다.
연재 브런치를 구상하다가 내가 시도해 왔던 생산적인 일들 중에 가장 잘한 것 같은 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일로 글쓰기 클래스가 소환되었다. 가장 힘들 때, 어둠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로 항상 새롭게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더 나이가 들고, 더 성숙해지고, 더 자유로워질 어느 날, 길모퉁이 작은 글쓰기 카페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평일 저녁에 글쓰기 카페에 머문다. 글제를 정하고 각자 편한 구석에 가서 30분간 글을 쓰고, 자기가 쓴 글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웃어도 좋고 울어도 좋겠다. 어설픈 위로 없이 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눈물이 마른 자연스러운 미소로 차를 마시면 좋겠다. 요란스러운 인사 없이 각자 가던 길을 가면 좋겠다. 카페 이름도 지었다. 사랑스러운 배우 맥 라이언이 나왔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의 배경이 되었던 뉴욕의 ‘길모퉁이 서점(the corner bookstore)’을 빌려왔다.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라고. 정신이 물질이 되는 날까지 글을 쌓아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