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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an 25. 2024

쓰기를 자극하는 쓰기의 말들

-은유 <쓰기의 말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도서관에서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다가 믿고 보는 은유 작가의 책을 집어 들었다. 두껍고 양 많은 책 보다 가볍고 작은 책을 읽으면서 사유하는 식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200페이지 남짓한 초록색 작은 책은 펼쳤을 때 목차도 따로 없고, (차례는 프롤로그 -문장 001 -문장 104로 되어있다.) 각 꼭지마다 왼쪽 페이지에는 큰 활자로 작가들의 명언이 적혀있고, 오른쪽 한 페이지에 왼쪽 페이지에 적은 문장과 관련한 사색의 내용이 짧게 적혀있었다. 얼핏 보이는 구성이 내가 찾고 있던 읽기의 목적에 잘 맞게 기획된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보기보다 무겁고 단단하고 실하게 내 마음에 안착했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에리히 케스트너


그대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고 얻을 것은 세상이다.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서의 그대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봄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20년 후 芝에게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우리가 그녀의 외침을 듣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귀를 가진 까닭이다."

"쓴다는 것,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 어쩌면 내 삶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 -<워드프로세서>

-최승자


"좋은 문장은 제스처의 왕성함보다 감정의 절실함에서 나온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단단한 지반이라고 생각된 것이 거짓 지반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세상의 검은 심연이 보이기 시작한다."

-문학 평론가 김현 <행복한 책 읽기>


"저는 늘 제가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관중석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하기>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을음 지금도 나는 믿는다." -<입 속의 검은 잎>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포도밭 묘지>

-기형도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발터 벤야민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수전 손택


"힘든 노동을 좋아하고 신속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좋아하지만 너희들 모두는 너희 자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들이 말하는 근면이라는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도덕은 지금까지 삶을 가장 심하게 비방하는 것이었고, 삶에 독을 섞는 것이었다."

"고뇌하는 모든 것은 살기를 원한다."

"나는 다양한 길과 방법으로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행동하는 자만이 배우기 마련이다."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니체


"마르크스는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를 읽으면 스스로의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치다 타츠루


 나열한 이 많은 명언들은 4단락으로 구성된 프롤로그에만 실린 문장들로 아직 본문 104개의 명언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은유 작가는 '책을 좋아하는 것 치고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고, '다독가라기보다는 문장 수집가로, 서사보다 문장을 탐했다'라고 말한다. '문장 단위로 사고한 덕에 직관이 길러졌'으며, '훌륭한 작가의 한 줄 문장'에 대해 '깨끗하게 담장을 넘은 힘찬 홈런 볼'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저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음의 울타리 안으로 쏙 들어갔다'라고, '문장이라는 연료를 넣은 덕분에 글쓰기가 휘청거릴지언정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레프 톨스토이


 은유 작가는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도 아낌없이 들려준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꽤나 물질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당위도 돌아오는 끼니 앞에 무색하다. 그리고 몸은 익숙한 곳을 좋아한다. 먹고살기 위해 아침저녁 지옥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퇴근 후에 매일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걸, 나는 일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다. 아주 체력이 좋다면 모를까, 난 힘에 겨워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39쪽)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밑줄을 그을 수 없었으므로, 강렬한 충동에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왼손에 15센티 쇠자를 들고, 오른손에 빨간 볼펜을 들고는 종이가 눌러지도록 "쫙-쫙-" 밑줄을 치게 될까 봐, 펜이 보이지 않게 멀리 감출만큼 좋은 문장들이 넘쳐나는 문장의 향연이었다.

 앞서 빌려 읽었던 사람도 나와 비슷한 습관을 가진 분이었던지 드문드문 파란색 볼펜으로 희미하게 그은 밑줄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은유 작가는 헨리밀러의 말을 가지고 모든 창작의 원리를 담은 '틈틈이' 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 한 편 쓰려면 엄두가 안 난다. 하얀 종이 두 바닥을 나만의 언어와 사유로 채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견적이 크면 시작을 미룬다. 그래서,

'글을 쓰자'가 아니라 '자료를 찾자'며 시작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져 자료를 추려 놓는다. 

또 버스에서 시집을 보다가 관련한 단어나 괜찮은 표현을 발견하면 메모한다. 

틈틈이 생각의 단초를 풀어놓는다. 

문장 단위로 사고하고 단락으로 정리하며 매만진다. 마치 나무를 잘라놓고 대패질을 놓듯이 말이다. 

단락들을 요리조리 배열해 놓고 잠든다. 

꿈에서 사유를 불어넣는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고친다. 

어느새 편 완성된다.

큰마음먹기가 아니라 짬짬이 해 나가기의 결과다.' (31쪽)

틈틈이, 짬짬이, 조금씩, 해나가는 과정의 충실함, 그 탄탄하고 위대한 힘을 깨친 사람의 차분함이 돋보이는 글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 낼 수 있습니다."

-미루야마 겐지


 '나는 '영혼에 대한 이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 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책을 읽으면서 영재반 맨 뒷자리에서 참관하는 기회를 얻은 평범한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우울하지 않고 기쁨으로 넘쳐났다. 

 "나이스 캐치!"

 때때로 홈런을 친 선수보다 홈런 볼을 잡은 아이가 더 신나는 법이니까.

 그들이 투척한 명언 홈런 볼을 잡은 아이의 기분으로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연재 중인 브런치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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