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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pr 26. 2024

아마존의 추억



프리마켓 주말 거리 예술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는데 오래전에 부산대 앞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말 프리마켓에 참여했었다. 이름도 멋졌다. 아마존! 대학교 앞이지만 주말 젊은이들의 약속 장소로 애용되는 이 거리는 장을 열자마자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즈로 만든 팔찌나 목걸이, 손바느질로 만든 동전 지갑이나 파우치, 손뜨개로 만든 머리핀이나 컵받침, 가죽으로 만든 키홀더와 손으로 제본한 가죽 노트, 고객의 얼굴을 직접 그려주는 초상화 화가, 홈메이드 사탕이나 쿠키, 어린이나 연인 고객을 타깃으로 준비한 솜사탕 아트 등등 재미있는 가게들이 줄을 지었다. 나는 몇 번은 나무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 머리핀 등을, 몇 번은 도자기로 만든 작은 인형이나 액세서리를, 몇 번은 울과 펠트로 만든 바늘 수첩 같은 걸 가지고 나갔는데, 거의 팔리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휴가 나온 남사친이 지원 기타 연주까지 해주러 달려오기도 했지만 밥값도 못 버는 수준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 좀 더 핫한 아이템으로 바꿔봐라. 포장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마케팅이나 다른 유통 과정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보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자존심이었는지, 그때만 해도 그다지 절박하지 않았었는지, 좋은 날씨에 야외에 나가서 사람 구경도 하고 소풍 가는 기분이 더 컸던 것 같다. 나중에는 아예 어차피 안 팔린다는 생각으로 그림 몇 개만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다가 결국 나의 예술 세계를 인정해주지 않는 그곳에 발길을 끊었다.




*이미지 Pinterest



비즈팔찌 소녀와 집시여인

한 번은 내 옆자리에 처음 온 아이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직 소녀 티가 나는 앳된 모습의 아이는 자잘한 비즈를 일일이 꿰어서 만든 비즈 팔찌와 큼지막한 꽃무늬 천으로 만든 리본 머리핀을 가지고 왔다. 그날따라 먹거리가 많이 들어와서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고 그 아이와 내가 자리 잡은 쪽에는 사람이 안 와서 우리에게는 파리만 꼬이고 있었다. 몇 번 공을 치자 그런 상황에도 유연해져서 여유가 생긴 나는 집시여인처럼 화려한 프린트의 치마를 입고 치렁치렁 한 비즈 액세서리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쓰고 그야말로 거리 예술가 같은 행색을 하고는 주말의 화창함을 누리고 있던 터였다. 연차가 조금이라도 된 나는 혼자 먹기가 뭣해서 음료수를 사서 주면서 그 아이가 만든 머리핀을 하나 샀다.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와서 덥던 차에 퀄리티가 좋으면서도 싸게 파는 그 머리핀이 딱 마음에 들었다. 길 건너편 기성품 머리핀은 이 정도 디자인이면 만원을 훨씬 웃도는 가격이었고, 이 아이가 파는 것은 수공예품인데 5천 원밖에 안 했다. 만원을 주고 거스름돈은 안 줘도 된다고 했다. 그때의 내 마음은 꼭 그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기보다는 우리의 혼이 새겨진 수공예품을 이렇게 싸게 팔아서는 안된다는 분노, 자존감을 지키자는 내면의 외침이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지지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도 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아이는 얼굴까지 새 빨게 지면서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며 만류하면서 원가는 진짜 얼마 안 된다며 거스름돈을 주려고 계속 시도했다. 글루건으로 대충 붙인 기성품도 훨씬 비싸게 파는데, 일일이 손바느질로 꼼꼼하게 꿰맨 자신의 애씀과 수고를 스스로 하향 평가하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건 사실 만원으로도 부족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었다. 큼지막한 리본이 달린 수제 머리핀으로 머리를 고정하고 앉아있는데, 그 아이가 도저히 마음이 불편했는지 냉큼 내 팔을 잡아채더니 자기가 가지고 온 팔찌 중에 제일 비싸고 예쁜 것, 내가 탐내던 빨간 비즈 팔찌를 손목에 채워주었다.  


 



고집스러운 간판

그 시절, 나는 안 팔리는 그림을 고집스럽게 들고나가서 집시 스타일을 하고서는 예술가 놀이를 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때때로 초조해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고집 피우기를 잘한 것 같다. 고집은 다른 말로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자신을 믿어라. 안된다고? 좋은 점을 발견하고 믿고 믿고 굳게 믿어라. 나는 간판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독성이 떨어지고 너무 긴, 되게 특이한 걸 내놓았다. 청소를 하다가 그때 간판으로 사용했던 액자를 찾았다. 그때 팔았던 목공예 액세서리, 도자기 인형, 펠트, 울 바늘 수첩, 그림들, 집시 스타일 치마까지 모두 다 사라지고 그 고집스럽던 간판만 하나 남았고, 덕분에 잠시 아마존으로의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그 노래 | 장기하와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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