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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04. 2024

제 5 회 오렌문학상 수상작 발표

-<작가님 글도 좋아요> 글방구리 작가님. '고통의 시간은 지나갑니다'



제 5 회 오렌문학상은 교황 주간을 맞이하여 글방구리 작가님의 글 '고통의 시간은 지나갑니다'로 선정하였습니다.
 
글방구리 작가님께서는 '누군가 이 글로 인해 작은 힘이나마 내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는 수상 소감을 밝히셨습니다.





고통의 시간은 지나갑니다

-연중 제 13주일 / 마르코 복음 5,21-43



연중 제 13주일인 이번 주일은 교황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강론이고 회칙이고 할 것 없이 참 쉽게 쓰십니다. 역대 교황님들이 발표하신 여러 회칙이나 문헌들을 읽을 때면 ‘이게 뭔 말이고?’ 하면서 하품을 하기 일쑤였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다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서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하신 말씀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나라를 방문하셨던 교황님에게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기를 요청했을 때 교황님이 하셨던 말씀이었죠.



살짝 맥락을 달리 하기는 하지만, 저는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구설수 오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섰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간을 결코 못 본 척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은 꽤 긴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조가 조금 특이해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할까요.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군중들과 함께 계실 때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린 딸을 고쳐달라고 청하죠. 예수님은 그 부탁을 들어주려고 길을 나서시는데 중간에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일어납니다. 많은 군중들이 이리저리 밀치는 혼란스러운 틈에, 하혈하던 환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죠. 환자는 옷만 스쳐도 나으리라는 믿으므로 했던 행동이었는데 예수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챕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은 치유된 환자를 찾아내시고 그녀를 축복하며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이 생기는 바람에 예수님이 가시던 길은 늦어졌습니다. 그 사이 어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아마도 회당장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예수님의 발걸음을 붙잡은 하혈하던 환자를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황망해하는 아버지를 안심시키신 뒤, 소수 정예만 데리고 가서 딸을 다시 살려 주십니다. 살아난 딸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라는 살뜰함도 보여주시지요. 여기까지가 오늘 복음의 줄거리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에서 ‘열두 해’라는 공통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 딸도 열두 살, 하혈하던 부인이 앓던 시기도 열두 해, 어린 딸이 언제 발병을 해서 얼만큼 앓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태어날 때부터 아팠다고 해도 최대한 열두 해입니다. 하혈하던 부인과 죽은 아이가 겪은 고통의 크기, 고통의 무게는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겪어낸 고통의 시간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고통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지만, 사람이 겪어내야 할 고통의 시간은 정해져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치유받기 위해 군중 속을 헤치고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죽었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기도 합니다. 고통에서 구원되는 과정은 다를지라도 치유가 일어나고 난 뒤에는 그들이 원래 살던 일상을 회복합니다. 먹을 것을 먹고, 평안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최근 들어, 주변에서 큰 병을 앓거나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고통받는 이웃들, 지인들, 친구들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그들은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암담함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혈하던 여인처럼 예수님을 찾아 나설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진 고통의 ‘열두 해’가 지나가는 때는 반드시 옵니다. 내가 찾아가든, 그분이 찾아오든 치유의 순간, 기쁨의 순간, 감사의 순간, 감동의 순간은 찾아올 것입니다.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니니까요.

 

 

어린 딸이 살아나 걸어 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 광경을 마주 대하게 된 회당장 야이로의 마음을 상상하며 오늘 글을 마치려 합니다. 저도 고통 중에 있는 벗들이 다시 걸어 다니며 일상을 회복하는 순간을 고대하며 미리 감사하려고요. 비록 지금은 절망스럽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그분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기다려 보려고요.

“탈리타 쿰!”

그 말씀이 귀에 들려올 때까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오렌문학상 수상작은 라얀 작가님의 멋진 목소리로 낭송해 드리고 있으며, 라얀님 연재 브런치북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에서 녹음 파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본문이 다소 긴 관계로 코멘트는 최소화하고, 영화 한편 추천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직접 출현하시고, 드물게 바티칸과의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맨 오브 히스워드>(2019)입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맨 오브 히스워드>는 죽음과 정의, 이민, 환경, 부와 불평등, 물질주의, 가족의 역할 등의 화두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과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사랑과 자유, 고통과 자유, 사랑과 선택, 예술과 아름다움, 미소와 유머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 특유의 밝은 카리스마로 분명하게 전하는 메시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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