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글도 좋아요> 8회. 달그림자 님 '창가의 소녀_존재와 부재'
제 4 회 오렌문학상 수상작은 달그림자 작가님의 최근 업로드 작, 'EP 86. 창가의 소녀_존재와 부재', 'EP 87. 자화상 그리기'로 선정하였습니다.
EP 86. 창가의 소녀_존재와 부재
눈에 보이는 겉들 속에서 나는 공허한 맘으로 이 세계를 맴돌았다 끊임없이 그 둘레를 돌아다녔다 텅 빈 세계에선 내 영혼이 부식되어 시체가 모래로 변해 사라진 것처럼 증발한 채 없었다 껍데기는 남았지만 껍데기가 없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한다
모든 가식과 이중과 역설의 목소리에 속이 울렁거렸다 돌아가는 길은 암흑에 가려졌고 얼룩졌으며 동시에 내 마음도 그을렸고 악취로 가득 찼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그 빛은 미약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반짝였고 소음에 뒤덮여 있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공간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내 혼의 빛을 이 어둠으로부터 지켜내야지 하고 다짐했으나 여전히 세계의 유혹은 강렬했으며 또한 반짝였으며 동시에 그늘져 있었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블랙홀처럼 밖은 반짝였으나 안은 어두웠고 또한 모든 시간과 공간은 형체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좆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둘의 깊이가 막연히 어쩌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혼을 세계에 바친 채 세상의 노예가 되어 보이지 않는 죄수복과 쇠고랑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과 혼을 빨아들이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누리는 자유가 분명 다른 의미로 달랐다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가 나는 멀리서 빛나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그 빛이 희미해질 때 까지 또한 선명해질 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다시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바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서로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저 세계와 이 세계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나는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기에 정체성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어쩌면 나를 더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 공허한 감정과 자욱한 상실감과 어둠과 악취와 소음과 멀리서 흔들리는 작은 불빛과 기다랗게 이어진 길 위에서 앞으로의 내 발길이 어느 곳을 향하게 될지를 상상해 보다가 결국 다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란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발길을 옮기게 되어있으니까 그 발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뜻이 간절히 있기를 나는 바랐다
세계를 둘러싼 수많은 반짝임과 화려함과 겉치레와 돈과 허영과 오만과 탐욕이 주는 자유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였으나 보이지 않는 꿈과 진심과 너를 향한 걱정과 다정함과 살아온 발자취와 추억과 그 안의 성장과 아픔과 아픔이 주는 의미와 경험의 가치와 그래서 깊어진 내면과 단단히 뿌리내린 마음이 주는 자유는 바깥의 것들이 어떠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로서 존재하며 꿋꿋이 행복할 수 있는 자유였기에 수많은 유혹과 갈등 사이에서도 나는 내가 반듯한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더욱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기를 간곡히 기도했다
결국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마음의 진심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며 받아들여가며 그렇게 조금씩 그러다 찬란히 자유로운 내면의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내 존재가 꿋꿋하여 흔들림 없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나기를 그러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천진난만한 미소를 간직할 수 있는 순수함으로 남길 소망하며 천천히 자유에 가까이 닿아가길 말이다
EP 87. 자화상 그리기
누구보다 단단해진 내면을 갖고 싶었다 부질없이 물러터진 성격 덕분에 살며시 돌려도 어디서든 쏟아지는 수도꼭지처럼 눈물까지 완벽히 준비된 나의 모습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일들을 굳이 내 시간과 돈을 들여 돕고 베풀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편했으며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하게 여겼다 결코 가식은 아니었으나 언제 어디서나 모범적이고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함은 분명했다 나 역시 보편적인 여느 인간처럼 강함과 약함 그리고 악함과 선함이 공존하는 사람인데 오롯이 강함과 선함만을 용인하며 입을 봉쇄하고 손발을 종종 묶어버리곤 했다
이젠 더 이상 나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 내려놓기 연습 중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만 덜 생각하고 빠르게 내뱉고 행동하려 한다 생각이 본능을 지배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언어가 살아 움직이기 전에 본연의 나를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 입을 닫아버리고 싶은 날 일하기 싫은 날 눈물을 흘리고 싶은 날 꼼짝하기 싫은 날엔 내게 채찍질 말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 봐야지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역정이 가득한 날 받기 싫은 전화를 보고 모른 채 해버리는 것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지 그런 모습도 전부 나일테니 어떠한 모습이라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P.S. 저의 몇 안 되지만 소중한 브런치 친구분들,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길 바라며..
미셸 공드리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달그림자 작가님의 작가소개 글이다.
작가소개의 글처럼 흑백 사진, 배우인 줄 착각할 만큼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외모,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사유, 청춘의 한 페이지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흠모해 마지않는 브런치 작가님이다.
최근에 브런치 활동을 안 하시길래 바쁘신가 보다 했다가, 아주 살짝, 혹시 브런치에서 무슨 상처가 된 일이라도 있으셨나... 생각도 했었는데, 비 내리는 따분한 토요일 오후, 카톡 알림이 떴다.
달그림자 작가님이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몇 달 전에 남긴 내 댓글에 대댓글을 쓰신 거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고, 장기 출장 중이라는 근황을 알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브런치의 많은 작가님들이 달그림자 작가님을 좋아하고 기다릴 것 같아, 이 페이지에서 최근 글을 소개하고 싶었다.
단지 달그림자 작가님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아니다.
읽어보시면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먼 타국에서의 장기 출장 중이라는 환경 속, 작가님의 사유를 따라가 보면서, '존재와 부재 그리고 자유'에 대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오렌문학상 수상작은 라얀 작가님의 멋진 목소리로 낭송해 드리고 있으며, 라얀님 연재 브런치북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에서 녹음 파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친구는 그렇게 하는 거니까 ★ Connie Talbot - Count On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