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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Sep 27. 2024

일기 쓰며 일어서기

-<종이 놀이터> 21화. 




직업이고 경력이고 취미고 인간관계고 뭐든 꾸준히 일관성 있게 쌓아가고 확장하는 아스팔트 길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내 인생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뱅뱅 돌았다 슈붕- 슈붕- 롤러코스터 같은 어질어질한 길이었다. 그 복잡다단한 다층적인 구조의 인생길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이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의 단어를 떠올리고 기록하는 행위, 잊지 않기 위해 베껴 썼던 멋진 문구들, 맥락이 끊긴 참담함 속에서도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구체성, 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 멍 때림 속이라면 뭐라도 그리거나, 스티커라도 붙이는 무심한 행동들... 그게 다 무엇이었나 돌이켜보면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자기애의 발현이었고, 무너진 나를 일으키는 몸짓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을 때, 아무런 창의적인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더 이상의 봄날은 없고 인생이 하향 곡선이라 여겨질 때, 단어 하나를 쓴다. 점 하나를 찍는다. 점은 타원이 되고 타원은 물고기가 된다. 물고기가 움직이면 곡선이 나오고 물결이 인다. 물결은 파도가 되고 파도는 무언가를 실어 나른다. 바다에 물고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바다를 만들 수도 있다. 그 바다 위에 달이 뜬다. 달 속에서 오래전 배고픈 손님을 위해 자기 몸을 불 속에 던진 흰 토끼를 본다. 흰 토끼는 하느님께 그 마음을 인정받아서 달 속에 살면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일깨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이야기를 품고 잠으로 간다. 내일 나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나의 천사님께 질문을 하고 잠든다.



나는 본질적으로 인생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쭉 뻗어서 일관되고 이어지고 우여곡절 없는 짱짱한 아스팔트 길이 정답인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인생의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고 롤러코스터 같이 굴곡진 인생길을 펴서 아스팔트 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길은 이어져있고, 어디로든 통한다. 어떻게 되어야 하거나, 어떤 길이 나은 길인지 알 수 없다. 나의 길을 가면서 보고 듣는 풍경이 나의 그림이 되고, 나의 글이 되고, 나의 색깔이 되고, 나의 음악이 되고, 나의 신화가 된다. 나만의 이야기는 나의 길을 씩씩하게 걸을 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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