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의 시간> 최종화.
<삭의 시간>은 침묵에 대한 정수를 담고 있는 책,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애드워드 홀의 <침묵의 언어>, 말로 모건의 <무탄트 메시지>를 필사하면서 침묵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고자 했습니다. 특별히 <삭의 시간>이라는 이 멋진 제목은 신기율의 책 <은둔의 즐거움>에서 빌려왔습니다.
서른에 만난 발도르프 교육과 마흔에 만난 정신분석, 이 두 세계가 제 인생 태양의 시기를 건너가게 한 동력이 되었고, 이 귀한 배움들을 통해 방향을 잡고 속도를 내고 도움을 얻었지만, 궁극적인 내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나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열쇠는 언어, 그중에서도 침묵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어야 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인 동시에 가장 큰 죄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장 강하다는 것은 가장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강한 힘은 적재적소에서 잘 사용될 때 좋은 것이 되고, 잘못 사용되면 파멸에 이르는 파괴적인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침묵의 세계> 마지막 장에 인용된 침묵에 대한 명문 두 개를 재인용하는 것으로 침묵에 대한 글 <삭의 시간>을 끝내고, 이제 새로운 변형의 다음으로 향합니다.
<삭의 시간> 연재를 마치면서 '침묵도 언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반복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창조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침묵을 창조하려는 노력이 동반될 때, 우리 존재의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주는 평형수가 제대로 작동하여 안전 운항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조심스레 내려봅니다.
나는 가장 많은 빛들을 받아들이는 천국에 있었고
그리고 많은 것들을 보았으되 그러나 그곳에서 도로 내려온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말로 이야기할 수 없었으니,
왜냐하면 동경의 자취를 따라 황급히
한없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정신은
기억을 더듬어도 되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테, <신곡> "천국"
세계의 현상태, 생활 전체가 병들어 있다. 만일 내가 의사이고 그래서 당신이 무슨 충고를 해주겠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침묵을 창조하라! 인간을 침묵에게로 데려가라. 이렇게는 신의 말씀이 들릴 수 없다. 그리고 소음 속에서도 들릴 수 있도록 소란스러운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말씀을 떠들썩하게 외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므로 침묵을 창조하라!
-키에르케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