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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Oct 05. 2024

사랑을 표현하는 것

  어린 조카는 사랑을 망설임 없이 표현한다. 조카가 두 살 때, 여동생과 내가 조카를 보러 남동생네에 간 날이었다. 셋이 둘러앉아 같이 놀던 중 여동생과 내가 어쩌다 만세를 하자, 조카는 갑자기 사랑이 샘솟았는지 나에게 다가와 나를 꼭 안았다. 그리고 여동생에게도 가서 꼬옥 안았다. 기쁘고 감동적이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을 느낀 대로 표현하는 것. 어른이 되고 나면 어려워지는 것. 그날 조카의 그 티 없이 밝은 얼굴을 떠올릴 때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조카가 하원 할 시간에 여동생과 내가 조카를 데리러 갔다. 여동생이 조카를 안아 올리자 여동생의 귀에 대고 조카가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는 대개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화든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웃고 울고 화내고 금세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일에 몰두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많은 사람은 속마음을 감추는 경우가 늘어난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무언가가 싫어도 싫다고 내색하지 않은 채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곤 한다.

  나도 특히 십 대 후반에는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감정을 억눌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움직임에, 가슴속 느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모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고 그것이 자신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모두 유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마움이나 사랑, 미안함처럼 꼭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어색하거나 두려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면,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때 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미처 표하지 못한 마음은 후회로 남을 수 있으니.     


  남동생과 올케는 맞벌이 부부라, 주중에 일정 시간 조카를 봐주시는 분이 있다. 여동생과 나, 엄마와 아빠도 조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할 때 가끔 남동생네에 간다.

  조카가 네 살 때 열이 나서 어린이집에 못 간 하루는 내가 조카를 보러 갔다. 아침에 남동생 집에 도착했더니 조카는 방에서 자고 있었다. 남동생은 이미 출근했고 올케는 곧 출근했다. 

  나는 거실에 있었는데 조금 뒤 방에서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급히 달려가 방문을 열었더니 조카는 어둠 속에서 문 쪽으로 오고 있었다. 잠에서 깼는데 곁에 아무도 없어서 놀란 것이다. 나는 조카를 안고 달랬다.

  “주안아, 괜찮아. 고모야. 고모 여깄어.”

  주안이는 내 얼굴을 보고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우리가 기차놀이를 비롯해 이런저런 놀이를 하던 중, 주안이가 말했다.

  “주아이(당시엔 이렇게 발음했다)가 일어났는데 엄마랑 아빠가 없었는데 고모가 있어서 좋았어.”

  주안이는 내가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는 것을 보고 물었다.

  “고모, 그림 그리게?”

  “주안이가 한 말 쓰려고.”

  “주아이가 한 말?”

  주안이는 내 등에다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사랑해.”     


  조카가 다섯 살이던 해에 겨울, 나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써서 조카에게 주었다. 다음 해에 올케가 말했다. 주안이가 그 카드를 자주 꺼내 읽는다고.

  어느 봄날 주안이는 새벽 다섯 시에 깨서, 내가 준 크리스마스카드에 쓰인 “주안아 사랑해 –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고모, 큰고모가”를 읽더니, 자기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게 할머니 집에 가야겠어요.”

  그날 주안이는 우리 집에 와서 할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먹더니 할머니에게 달려가 할머니를 꼭 안았다. 밥을 먹고 나서는 아주 어려운 미로를 그려달라고 해서, 나는 아마도 생전 처음으로 미로를 그리고 있었다. 그동안 주안이는 아침 햇살 같은 눈길로 나를 보았다. 나 역시 그런 주안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마음 수행이 부족해, 같이 사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가끔 화를 내곤 한다. 하지만 조카가 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 조카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내가 조카를 대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삶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꽃을 보는 것처럼, 아기 새를 보는 것처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볼 수는 없을까?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가 거실 바닥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쓰다가 내게 물었다.

  “고모, ‘디귿’은 어떻게 써요?”

  내가 가르쳐주자 조카는 조그만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걸 마치더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종이 앞면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그리고, 뒷면에는 “사랑하는 고모들과 할머니 하라버지”라고 쓴 편지였다. 그렇게 조카는 감동을 주고는 말했다.

  “소중하게 간직해요. 이제 여기 오면 이렇게 편지를 쓸게요.”

  그날 조카는 집으로 돌아갈 때 고모들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한 사람 한 사람 꼭 안아주고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해요!” 외치고 떠났다. 조카는 우리에게 사랑을 아낌없이 주고 있다.     


  따듯한 마음을 주저 없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린 조카에게서 배운다. 소중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따스한 마음을 아낌없이 나누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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