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는 씩씩거리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이패드를 놓지 못했다. 그 시간에 동시 접속한 아이들끼리 아이패드로 덧셈 뺄셈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가장 빨리 정답을 많이 맞히는 아이가 1등이 되는 게임이었다. 주안이는 1등을 하지 못하자 화내고 울면서도, 1등을 하려고 계속 새로 게임을 시작했다.
“주안아, 그만해. 1등 안 해도 괜찮아.”
옆에서 우리(고모들과 할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주안이는 듣지 않았다. 주안이는 결국 몇 판을 계속해 1등이 된 뒤에야 게임을 멈췄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응원 안 해줬어요? 주안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으…응… 아까 주안이가 게임할 때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해서 저쪽에 가 있었지….”
나는 조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게임을 하며 행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늘 1등을 할 수도 없고, 1등을 하고 나서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또 조카가 1등을 한다 해도 그건 결국 다른 집들에서는 1등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 조카처럼 분해서 울고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게임에 참가하는 모든 아이가 열심히 하더라도 경쟁에선 1등과 1등 아닌 아이들이 갈릴 수밖에 없다. 집마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아이패드를 노려보며 더하기와 빼기를 하는 아이와, 그 옆에서 아이를 응원하는 고모나 삼촌을 상상해보자. 그 게임은 우리 교육 현실의 축소판 같았다.
경쟁의 압박이 없을 때 조카는 사실 산수를 좋아한다. 나는 조카가 덧셈과 뺄셈을 느긋하고 즐겁게 배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어린이가 어려운 수학을 못하더라도, 성적이 높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길 바란다.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은 이상적인 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어떤 대학에 가느냐는 어떤 직장에서 얼마를 버느냐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학력과 직업에 따라 인간관계에서 차별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러니 내 자식이 1등 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모두가 1등 하길 원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지속적으로 행복하기 힘들 것이다. 1등 한 아이는 1등 한 순간에는 잠시 기쁠지라도 1등을 놓칠까 봐 불안할 테고, 나머지 아이들은 1등을 못해서 불행할 테니까.
1등을 하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소득은 보장된다면, 지금처럼 지나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점차 바뀌지 않을까.
인문학자 도정일과 생물학자 최재천이 나눈 대화를 담은 책 <대담>에서, 최재천은 혼자 살아남으려 하면 멸망하고, 다른 생물들과 동맹을 맺은 생물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공생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생이 아니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자신만이 부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그리하여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고, 다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어느 날 거리에서 노숙하는 분을 본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어쩌면 아주 작더라도 눈비를 피할 수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더라도 정기적 소득이 보장되니 자신을 좀 더 잘 돌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민이 예를 들어 한 달에 50만 원씩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거의 절반에 달한다. 이 노인들이 젊었을 때 일하지 않고 놀아서 가난한가? 물론 아니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노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지금의 사회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국제연합(UN) 세계인권선언 1조는 선언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25조 1항은 선언한다.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으로 인해 충분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사회복지제도에는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기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복지 혜택을 못 받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모든 시민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소득인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자산 조사나 노동 요구 없이, 조건 없이 모두에게 개인별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에서 하승수는 사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국가로부터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땅과 같은 천연자원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들은 본래부터 있었던 이런 공유재에서 나오는 수익을 함께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은 본래 모두가 함께 사용했지만, 나중에 일부 개인과 기업이 사유화했다. 이들만이 땅에서 나오는 수익을 모두 갖는 것이 정당한가?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재원이 부족해서 문제인가? 지금 세계 전체의 부는 모든 사람이 먹고살기에 충분하고, 전 세계적으로 음식 쓰레기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쪽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상위 1%의 부유층이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은 집이 한 채도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집을 두 채 이상 가지고 있다.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가진 이들이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지 않는가.
비 오는 아침, 우리 동네에서 버려진 종이를 모아 생계를 꾸리시는 어르신을 보며, 나는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사회를 상상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체계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가 누구나 생존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비롯해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간다면, 과열 경쟁이라는 교육 문제도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