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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Oct 26. 2024

행복의 조건

  <교실 안의 야크>라는 아름다운 부탄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서 교사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 유겐은 세상에서 가장 외딴 곳처럼 보이는 작은 산골 마을 루나나로 배정받는다. 유겐은 마을의 조그만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곳에선 종이가 귀해서 학생들은 공책이 없다. 유겐은 각 학생에게 종이 두 장씩을 나눠주며 공부할 수 있게 돕는다.     


  우리는 얼마나 가져야 행복할까? 물질적으로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루나나 마을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을 가졌지만 삶에 불만족한 경우가 많다.

  루나나 마을 사람들은 야크를 기르고 약초를 채집하고 농사지으며 살아간다. 전기 공급은 불안정하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지만 많은 주민은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겐은 마을에서 야크를 돌보는 살돈을 만나 노래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도시로 언제 한번 오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살돈은 지금 사는 곳에 만족하고, 자신이 있을 곳이 바로 이곳임을 안다.   

  

  살돈은 날마다 산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모든 존재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검은목두루미가 노래할 때 누가 듣든 안 듣든 그저 노래하듯이, 살돈은 자신이 세상과 나눌 수 있는 것을 바친다. 내적으로 중심 잡힌 삶을 사는 살돈이 세상을 대하는 따듯한 태도가 아름답다.

  우리는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때가 많다. 이 영화는 우리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소중한 기회를 준다.

  영화에서 유겐과 어린 학생들은 함께 춤추며 노래 부른다.     


  순수하고 맑고

  겸허한 마음은

  행복이 그림자처럼

  따라오게 된다네     


  지속적인 행복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노래를 들으며 기억하게 된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에는 불만족이 따를 수밖에 없다. 소유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자마자 새로운 소유물을 또다시 원하게 된다. 소유는 일시적인 즐거움을 줄 뿐,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 못한다.     


  주안이가 다섯 살이 된 해에 우리 아빠는 주안이를 위해 세뱃돈 천 원을 준비하셨다. 그것을 본 엄마가 말씀하셨다.

  “천 원이 뭐야, 오만 원은 줘야지.”

  그런데 주안이는 세배를 한 뒤 할아버지한테서 세뱃돈을 받더니 “노란 거”(오만 원) 말고 “파란 거”(천 원)를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난 파란 게 좋아.”

  주안이는 이렇게 말하며, 할아버지가 다시 주신 파란 돈을 잘 넣어갔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취향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해 가을 나는 조카에게 물었다.

  “주안이는 매일매일 행복해?”

  궁금했다.

  “응!”

  “와, 좋겠네~”

  더 어렸을 때 함께 산책하러 나간 날 나무 그늘 아래 유아차에 앉아, 삶이 있는 그대로 만족스러운 듯 살짝 웃고 있는 조카의 사진이 떠올랐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는 하루 평균 400번 정도 웃는 반면, 어른은 하루 평균 15번 웃는다고 한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어린 조카를 보면 마음이 밝아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웃음을 잃어가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군분투를 멈추면 삶은 어떻게 될까?     


  어느 여름날 아침 나는 일찍 집을 나서 오래된 절에 도착했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절을 둘러본 뒤, 절 안에 있는 찻집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다.

  창밖으로 키 큰 소나무가 보이는 탁자에 앉자, 열린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팔에 닿았다. 찻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따듯한 유자차를 마시며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 삶이 만족스러웠다. 행복은 먼 훗날 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행복은 지금 여기 있었다.      


  꼭 큰일을 이루지 않더라도, 행복은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매달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몇 권, 1년에 좋은 영화 몇 편이면 마음이 넉넉하다.

  기쁨의 보고인 자연은 또 어떠한가. 어느 봄날, 숲을 산책하던 중 잠시 걸음을 멈췄던 적이 있다. 햇빛 받아 반짝이는 숲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이 푸른 숲의 일부인 나도 푸르른 느낌이었다. 내 바로 옆 나무에서는 작은 새들이 톡톡톡 가지를 쪼고 있었다. 나를 한 그루 나무처럼, 숲의 무해한 일원으로 여겨주어 고마웠다. 세상엔 이렇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다.     


  나는 한 달 동안 식재료나 생필품 같은 소모품 외에는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 행복하기 위해 어쩌면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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