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조카랑 나랑 둘이 앉아 있던 여름날. 방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나: 바람이 시원하다.
주안: 바람이 어디서 불지? 에어컨에서 부나?
나: 아니, 바깥에서 불어오는 거야.
주안: 에어컨에서 부나?
나: (속으로) 아가야, 이건 천연 바람이라구~
당시는 코로나 유행이 심하던 때였는데, 폭염과 코로나 때문에 네 살짜리가 거의 실내에서 지내며 바깥바람보다 에어컨 바람을 더 많이 쐰 것일까. 안타까웠다.
내가 어릴 때는 여름에 요즘처럼 폭염이 심하지 않았고, 미세먼지도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아서 우리는 사시사철 밖에 나가 형제자매,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동네 놀이터를 지날 때 놀이터에서 조그만 아이와 엄마가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아이: 더 놀고 싶어.
엄마: 안 돼. 미세먼지가 나쁘단 말이야.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이 마음껏 놀지도 못하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기후 현상도 더욱 잦아지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이 어른이 돼 살아갈 때는 이런 극한 기후 현상이 예전보다 훨씬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전 세계 과학자들은 말한다.
나는 여름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운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선풍기도 잘 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나도 언젠가부터 집에서 선풍기를 틀게 되었다.
워낙 여름이 더워지니 에어컨을 트는 것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대중교통에서 너무 낮은 온도로 에어컨을 트는 것은 전기 소비 증가로 결국 기후위기를 가속해 더 심한 폭염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덥다고 무조건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틀기보다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필요하리라.
원래 한국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고, 인공물을 짓더라도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주위 환경에 어우러지게 건축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자연을 거침없이 파괴한 뒤,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 것일까.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며 많은 사람은 인간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우리 집에서는 거실 창밖으로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산이 조금 보인다. 날씨 좋은 날 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에게 내가 말했다.
나: 주안아, 저기 봐. 산이야. 와~ 멋지다.
주안: 산이 안 보여. 하얀 거가 가렸어. (하얀색 아파트들이 산을 거의 가리고 있어 산이 조금만 보였던 것)
나: 응, 언제 산에 같이 가자. 산에 가면 나무도 있고 새도 있고 꽃도 있어.
우리나라는 산의 나라인데 언젠가부터 아파트 산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시야를 가리는 아파트들처럼, 우리 집 역시 다른 집의 시야를 가리는 아파트다. 머지않아 산이 잘 보이는 곳에, 흙 가까운 곳에 살 생각이다. 작은 텃밭에 씨앗을 뿌려 싱싱한 채소를 거둬 먹으며 살려고 한다.
내 책상 서랍에는 토종 씨앗이 조금 있다. 서랍에서 팥과 깨 씨앗을 발견한 주안이가 우리에게 씨앗을 심자고 했다. 내 여동생이 말했다.
“씨앗은 흙에 심어야 해.”
주안이는 씨앗을 들고 아파트 창문 밖 아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흙이 없어.”
생명이 자라기 힘든 콘크리트로 뒤덮인 땅. 그 땅을 가득 채운 자가용. 때로 그런 상상을 한다. 동네 곳곳마다 푸릇푸릇한 텃밭이 있어 주민들이 함께 채소를 기르고, 주차장에는 차 대신 자전거가 죽 늘어서 있는 상상.
코로나에 걸려 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며 더욱 절실해진 소망은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였다. 머리 위론 미세먼지 가득한 뿌연 하늘, 발밑으론 흙을 다 덮어버린 콘크리트―이런 환경에서 건강을 원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흙도 숨을 못 쉬게 막아버리고 우리 자신이 숨 쉴 공기도 더럽혀왔다. 이를 포함해 갖가지 방법으로 생태계를 괴롭히다 결국 전 세계적인 병을 출현시킨 것은 필연일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세계인 거의 전부가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을 멈추고 자가용 사용을 줄이면 온실가스뿐 아니라 미세먼지 유발물질도 크게 줄어들 테니 공기가 더 깨끗해질 것이다. 희뿌연 하늘을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돌려놓고, 앞으로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지금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