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그리고 30대
20대를 마무리하던 29살, '라가불린 16년 산'을 통해서 제대로 위스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30대의 내 삶은 위스키 덕분에 더 풍요로워지는 기분이다.
증류소별 히스토리들을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것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보이는 캐스크와 테이스팅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도, 같은 증류소의 다른 라인업들을 비교 시음하거나 같은 캐스크의 다른 증류소 제품들을 테이스팅 해보는 것도, 그리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같은 위스키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참 다채로운 취미생활이지 않을 수 없다.
스코틀랜드 여행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증류소 팝업을 모두 가보았다. 멕켈란, 발베니, 글렌피딕 등 마치 위스키 팝업은 모두 강남에서 열려야 한다는 것처럼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한복판에서 열렸다. 발베니만 유일하게 성수동에서 큰 건물 한 개를 통째로 빌려 2번이나 팝업을 진행했지만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이미지는 비슷해 보였다. 팝업의 분위기 또한 대체로 비슷하다. 모터쇼나 백화점 1층 행사장에서 자주 본 듯한 모델들이 중간중간 서 있고, 짜인 대본대로 위스키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팝업으로 홍보하려는 목적의 신규 출시한 위스키의 특징에 대해서도 모든 팀에게 똑같이 얘기해 준다. 그래 놓고 시음은 생뚱맞게 칵테일 혹은, 신제품이 아닌 대표 라인업 제품을 다음 투어 팀이 오기 전에 얼른 마시고, 포토 스폿에서 어정쩡하게 사진을 찍고 나와야 한다. 그나마 발베니는 돈을 지불하면 신제품 라인업 제품을 먹어 볼 수 있었지만, 자리가 협소하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은 역시나 아니었다.
이건 내가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느낀 위스키 문화가 아니다. 어느 스코틀랜드 위스키 바를 가도 사람들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바텐더와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위스키를 추천받는다. 증류소들은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소박하며 본인들의 스토리에 집중한다. 개개인의 테이스팅 노트에 귀 기울이고 직원과 방문객 모두 위스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위스키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위스키 라벨들을 보고, 각 증류소의 분위기를 떠올렸으면 좋겠고, 한 모금 모금마다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들에 집중하며 위스키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의 추억 하나쯤은 위스키와 관련된 강렬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여서,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꼭 위스키 여행을 여러분들이 떠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