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예정인 가족여행

024. 나를 지키는 법

by Defie

친정 식구들이 모두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이 채 2주가 남지 않았는데, 마음이 무겁다. 그 이유는 바로! 여행지 때문이다. '한 번에 가긴 부담스러우니 돈을 모아서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자!'라고 결정하고 각 집당 돈을 모은 지 어언 3년, 자, 그러면 내년 설 명절 즈음해서 여행을 가자!라고 결정된 것이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친정엄마와 아이들 3명이 낀 총 10명의 가족여행이라 여행지는 그다지 비싸지 않고 무난한 마카오였고 12월 31일, 제주항공 특가로 총 10인분의 비행기 티켓을 샀다. 꽤나 선방한 비용이라 모두들 의기양양, 애 보랴 회사 다니랴~ 바쁜 언니 오빠들을 대신해서 사촌동생들이 호텔 등을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마카오의 가장 큰 볼거리가 워터쇼라고 해서, (1인당 10만 원.... 유아 할인 따위는 없다) 티켓까지 구매 완료!


그리고 일주일 전, 후난 폐렴이라고 불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카오'에도 상륙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관련 소식으로 여론은 들썩거리는데 정작 중국에서는 너무 대수롭지 않아 하더니, 명절 바로 전전날 '후난'이 폐쇄되었다, 안타까웠던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에 많은 중국인들이 놀러 '마카오'로 온다는 이야기도 함께 접했다. 잠복기 14일, 아무리 빨리 조치를 취해도 2월 정도까지는 피크를 찍을 거고, 5월은 되어야 잠잠해질 거라고 했다.


일단, 명절 전날에는 시댁에 가야 하니, 가족 톡방에 관련 글과 기사들을 남겼다. 상황이 심각하니, 생각을 좀 해보자고- 그리고 설 명절 당일, 친정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관련 회의를 잠깐 했다. 특가로 싸게 구입한 호텔비는 건질 수 있을지 미지수, 비행기 값은 1인당 얼마씩 수수료 징수, 워터쇼 비용도 건질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 근 삼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홀랑 날아갈 상황... 어른 들 만이라면야 마스크라도 쓰고 다니겠는데, 고령의 엄마와 아이들 때문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내 마음속은 이미 '안 가는 것'으로 기울었지만, 버리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아쉬운 얼굴들도 보여서 우선 한 주 더 추이를 보기로 했다. 어쨌든 선택지는 두 개니까. 간다 와 가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하는 가족여행이 아니고, 아마 우리 집의 세명만 함께 가는 가족여행이었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여행을 단념했을 것이다.

무언가에 기대가 크고, 이왕이면 '좋게 보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구멍 하나를 남겨두는 편이다. '올인을 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상황이 아니라면 뒤돌아보지 않고, 깨끗이 단념한다.

이번 건도 그와 비슷하다.


세상에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위한 방비를 해 놓는 것-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깨달았던 어렸을 적 나를 버티기 위해 만든 삶의 방식 같은 것인데, 이게 의외로 쓸모가 있다.

절망적일 때도, 혹은 지나치게 희망적일 때도 '이게 다는 아니야'라고 마음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나쁜 상황일 때에는 '더 안 좋을 수도 있잖아, 이 정도면 다행이다'라고 나를 위로하는 것이고, 좋은 상황일 때는 '이러다가 갑자기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방심하지 말자'라고 나를 단속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같이 제대로 무너지는 상황은 절망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제일 '좋은 시간' 바로 다음에 붙어서 온 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라는 소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다시 뉴스를 본다.

28일부터는 후난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오염지역'으로 선포한다고 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중국 여행 자제'를 권고한다. 그렇다면 비행기 수수료도 덜 뗄 수 있지 않을까? 혹 호텔비도 얼마쯤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진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혹시 모르고 갔다면 가서 누군가 하나 옮기라도 했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꺼냐고...


정말 힘들 때 이런 생각을 한다.


괜찮다, 살아있는 한 다음에 다시 하면 된다.


하물며 여행쯤이야?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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