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지만 달달한 엔딩

055. 하기 싫은 일 vs 하지 않는 일

by Defie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미루고 그러면서 괴로워하느니 빨리 해치워 버리고 마음 편하게 있는 것을 선호한다.


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미루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쯧쯧쯧'이 자신을 더욱 괴롭히기 때문.


그런데 '하지 않는 일'을 접하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짧다고 말할 수 없는 10여 년의 경력, 그 안에서 사회생활, 그리고 에이전시 생활을 해나가면서 경험적으로 익힌 직업 스킬 중의 하나는 선긋기- 업무 스콥에 해당하지 않는 요청, 비용에 포함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거기까지는 우리의 일이 아니다'라고 상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독 일을 주고, 이를 수주하는 관계가 상하로 명확히 있고 인력으로 하는 업무에 대한 가치를 크게 쳐주지 않는 곳인 한국 사회에서 선 긋기는 대단히 어렵고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야 하는 부분 ㅡ 그래서 대부분 선을 그을 때에는 일단 이번은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 이 부분은 이번에는 재량껏 도와드리지만 실제 업무 스콥까지는 아니니 다음에는 불가능하다' 정도의 스탠스를 취하는 편이다. 그나마 이 부분도 회사가 '의뢰인한테 꿇으라면 꿇어'라는 곳이라던지 내가 중간관리자 이하의 직급인 곳에서는 어림없는 부분이다.

어림없는 위치에서 그래도 해야 한다면? 여기서는 납득도 되지 않고 미루어도 혹은 그 일을 해도 자신에게 쌓이는 건 자괴감뿐이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 '나는 뭘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나에 대한 물음이 마음속에서 가득 떠다닌다. 그리고 그 일이 쌓일수록 자존감은 바닥으로 향한다.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면 괜찮지만, 아 죽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월급이고 경력이고 다 떠나서 그 장소를 탈출하기를 추천한다. 혹 당장 어렵다면, 제한선을 두는 것도 좋다. 앞으로 3개월까지, 혹은 이 같은 일이 한번 더 있다면 그때는 바로 정리한다-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터널의 끝을 나 스스로 만들어두면 이게 의외로 마음의 안정을 준다.


힘든 삶 또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다. 내 대답은 "난 안 죽고 계속 살 건데?"였다.

삶은 녹록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 슬픔, 우울 등이 교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무언가 그만큼의 새로운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 그것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즐긴다.

예측할 수 없어서 삶은 재밌다.


내가 온전해야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뭔가를 할 여력이 생긴다. 나를 이루는 것 중 회사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 수 있다.


피해 갈 수 없는 '하지 않는 일'을 하고 나서 기분이 많이 상했다면

딸기요거트마카롱에 레몬티를 먹자.

어제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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