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밍 Dec 22. 2022

홍이의 한국 대학 도전기 1

의지가 없는, 눈빛이 흐릿한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침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떠올릴 수 있듯이 어.렵.다. 


나에게는 홍이가 그런 학생이었다. 


"홍아, 고등학교 졸업하면 뭐 하고 싶어?"

"몰라요."

"하고 싶은 거 없어?"

"네."

"좋아하는 건?"

"없어요."

"그럼 한국에 계속 있을 생각이야?"

"그렇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도 모두 한국에서 일하시니까."


중국국적인 홍이는 ㄱ고등학교 3학년이다. 홍이를 가르치면서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몰라요,

글쎄요,

그냥요,

이 세 마디이다. 


홍이의 수업은 6월 초에 시작되었고, 계약된 수업시간은 3개월 120시간이다. 매우 짧은 시간. 이 의지 무(無)인 고3학생을 위해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홍이만을 위해서 한국어교실을 마련했기 때문에 1:1 수업이다. 홍이에게 제대로 된 맞춤수업을 할 수 있으니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학교에서 요청하신 바는 두 가지.

내신성적에 큰 의미가 없으므로 교과수업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어 수업이지만, 가능하다면 학생의 생활 상담이나 진로 부분에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한국어 강사가 학생의 생활 상담과 진로에까지 많은 부분을 수업시간에서 할애하기는 참으로 벅차다. 1:1 수업은 맞춤으로 그 학생만을 위한 양질의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학교 측으로부터 한국어 학습 외의 요구가 많아지기도 한다. 


홍이의 부모님은 조선족이다. 홍이도 어렸을 때는 한국어를 조금 배우고 할 줄 알았으나, 특별히 사용하지 않아도 어려움이 없으니 중국어만 사용했고, 한국어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거의 몰랐다. 부모님이 먼저 한국에 오셔서 일터에 자리를 잡고, 당시 중3이었던 홍이를 한국으로 불렀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었던 홍이는 유학생활을 즐겼다. 처음 한국에 와서는 이주배경청소년센터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결과가 좋아 장학금도 받으며 즐겁게 생활했다. 다문화 대안 고등학교에 들어가 좋아하는 농구, 기타 등을 취미로 하며 학습도 꽤 열심히 참여했다.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것은 조금 버거웠지만 같은 배경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힘들지 않았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그때의 사진들 속의 홍이는 모두 활짝 웃거나 미소를 짓거나 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부모님이 일터를 옮기고, 한국의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고나서부터 홍이의 생활이 달라졌다. 전학 간 학교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한국 친구들은 착하지 않았다(홍이가 이런 표현을 썼다). 왜인지 모르게 등교하면 본인의 책상 위에만 신발 자국이 나 있는 날이 계속되었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으나 별로 바뀌지 않았다. 친절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몇몇 아이들도 점점 각자의 생활이 바빠 등교하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수업은 너무 어려웠다. 그나마 미술과 체육시간이 홍이가 조금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고3이 되니 그마저도 시간이 줄었다. 수능과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들과 홍이는 공통점이 없었다. 비슷한 점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가 되기 어렵고, 그들의 무리에 들어가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렇게 홍이는 고등학교 2, 3학년을 지루하고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홍아, 선생님이 보기엔 넌 목표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학생이야. 네가 지금 상황에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 중국으로 바로 귀국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 한국 대학에 도전해 보자. 선생님이 많이 도와줄게."


이렇게 홍이의 한국 대학 도전이 시작되었다. 


[Photo by 2y.kang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받아쓰기는 부끄러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