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다.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어 지는 겨울이 좋다.
겨울에 태어나서 일까? 나는 그렇게 겨울이 좋았다. 청명해진 차가운 하늘을 향해 뾰족해진 나뭇가지들이 봄여름가을 동안 부풀고 허영해진 내 감성을 찔러 부피를 차분히 가라앉혀 줌이 좋았다.
바람 빠진 그 감성을 따듯하게 내린 커피 한잔으로 데우기 시작하자 이내 살짝 부풀어 오른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은 유난히 하얀 설원 속의 오두막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날이었다.
이케아에서 자신 있게 구매했던 따스한 스탠드 독서등 아래서 나바호 블랑캣에 어깨부터 무릎까지 담그고 아침부터 책을 보다가 어스름이 깔리는 초저녁 무렵,
나는 핀란드에서 시작되는 영화 한 편을
조용히 보기 시작했다.
벽난로가 있었으면 더없이 좋았을 그 장소에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불편'한 무언가를 안고 살아간다.
각자가 받아들이는 차이에 따라 그 '불편'을
감당해내고 인생의 동력으로 삼는 이도 있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의 인생을 어두움과 축축함의 나락으로 침몰시키는 발에 묶인 벽돌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불편'함 중에 하나가 한껏 어른이 되고 나서 더 이상 진행되면 안 되는(?) '(배우자 외 다른 이성에 대한) 감정적 애착'일 때가 있다.
그것이 나 자신에 버금가는 애정과 인간으로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준다면, 나는 그것을 감춰야 할까? 아니면 드러내야 할까?
이런 불편함에 대해 어른들 대부분은 감정의 속박에 신탁하여 나는 결백한 존재라 등을 돌리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따른다고 자신에게 드러난 감정의 솔직함을 배신하고 만다.
'남과 여 (A Man and A Woman, 2015)'
어쨌든 저쨋든,
그 '불편'한 부분을 이 영화는 다루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국적인 배경과 앵글이 나온다.
겨울이고 유럽인 거 같았고 오프닝 배경음악이 너무 좋았다.
우리나라 영화가 아닌듯한 시작이다.
이곳은
'핀란드 헬싱키'
'핀란드'라는 나라가 주는 우리네 정서적 거리감은 꽤 멀다. 감독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나오는 장소를 핀란드로 정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멀리 있는 느낌의 나라를 선택했다'였다.
왜 그랬을까?
남과 여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곳이
이 곳 '핀란드'
가장 정서적으로 멀리 있는 나라.
이 곳에서의 만남은 집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인간 심리에 반영한다.
그것은 최소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과 예의마저 무뎌지게 만들어 주는 이 영화의 배경적 장치였다.
현실에서 도망치면 가장 좋을 것 같은 곳에서 남과 여는 처음 만난다.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자는 남자. 불안해 하는 여자.
영화 초기에 그냥 스쳐갈 수 있는 장면 하나.
각자의 아이들이 떠난 캠프 장소에 여자는 기어이 따라가려 처음 본 남자와 낯선 동행을 한다.
거의 도착을 했을 무렵, 남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남자는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러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한다.
불안해하는 여자에게 보란 듯이 남자는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 발로 쿵쿵 얼음바닥을 쳐 보인다.
자. 보세요 괜찮아요
남자는 안심시키지만 여자는 그냥 돌아서서 가자고 한다.
마치 가면 안 되는 곳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잠깐의 실수 일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필연을 가장한 우리의 억지스러운 욕심.
그 욕심은
가장 이성적이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본능적인 우리의 민낯이다. 그 민낯을 서로 드러냄으로써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자는 보호해야 할 대상(캠프에 간 아이)이 사라졌을 때, 엄청난 불안감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와는 반대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내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을 죄책스러워하고, 그것이 오히려 남자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어 서로에 대한 순간적 애착에 불을 지핀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보호자로만 자라온 연약한 어른들은 누구에게 보호받아야 할까?
위로만 해주었던 상처받은 어른들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비난은 있겠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현실이다.
돌아가지 말까요?
우리, 돌아가지 말까요?
남자는 제안을 한다.
만나는 것이 여행 같은 우리.
차라리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농담 아닌데..."
"우리 정말 큰일이다..."
무엇이 큰일일까?
정말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큰일일까?
남과 여,
둘의 섬세한 감정선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한다.
밀어내면 다가오고, 다가가면 밀어내고,
망설임이 서로 교차가 되지만 어긋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열정에 열정으로 답하지 못하고,
냉정에는 더 냉정해지지 못하는 걸까?
사람이란 게 인연이란 게 왜 그렇게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빗나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할까?
같이 있지만 나란히 앉을 수는 없는 현실
이 영화는 19세 미만 관람 불가?
아니 내 기준에서는 38세 미만 관람 절대 불가 영화다. 거기에 배우자와 함께는 절대 X100 관람 불가이다.
아무리 포장해도 아무리 양보해도, 아무리 공유와 전도연이 나온다 해도 영화의 현실은 너무도 '불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의 규범에 도전하는 것.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더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사랑에는 무엇보다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이 다른이 에게는 슬픔을 주겠지만 그것마저 배려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라면 이 영화를 혼자 조용히 음미하며 읽어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간 자의 눈물과
돌아가지 않은자의 눈물
엔딩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핀란드에서 벌어진다.
(원래 있던 곳으로)돌아간 자와
(원래 있던 곳으로)돌아가지 않은 자 모두 울어버린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후회의 눈물일까? 안타까움의 눈물일까?
누구의 눈물이 더욱더 슬퍼 보일까?
먹먹해지는 감정은 우울한 핀란드 하늘과 설경 속에 제대로 파묻혀 버렸다.
다시 꺼내보면 안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싸구려 조언 한마디를 우리는 알고 있다.
남자는 돌아가고, 여자는 돌아가지 못한다
남과 여,
그렇게 차이를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 했음을 인식했다면 그걸로 '남과 여'는 서로에게 자신에게 떳떳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 그 엄청난 반대를 이겨내고 솔직해졌던 순간이 있었으니까.
그건 최소한 남들이 비난을 하든말든
스스로의 세계에서는 '가치' 있는 모습이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