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있는 인간 - 스콧 피츠 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야망 있는 인간
‘아메리칸드림’은 활발한 계층 이동과 연관 있다. 20세기 당시 미국은 세계 패권 국가로 우뚝 섰고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미국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무궁무진한 기회를 찾아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했다. 특히나 대공황 및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1950년~1970년 초까지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며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야망 있는 젊은이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실제로 벼락 출세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드림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경제 성장을 체험한 국가에서 일종의 상징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고도의 압축성장을 경험하면서 계층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 당시 한국인이 품었던 달콤한 희망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가졌던 아메리칸드림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식민지배와 남북전쟁, 그리고 지독한 가난의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최악은 지나간 듯 보였다. 미래는 낙관적이었고 야망으로 똘똘 뭉친 국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군부 정권의 주도 하에 한국인은 경제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졸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20세기만큼 인간 사회 야망의 총합이 컸던 적은 없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시작됐고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야망을 분출했다. 부모의 신분에 의해 생이 결정된 과거 세대와는 달리,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당시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았다. 본인의 노력으로 쌓은 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탯줄 대비 무척 공정해 보였다. 모든 계층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이제 사람들은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결핍과 야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또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사례를 부각하며 야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변변치 않은 출신의 사람들이 출세하는, 소위 ‘개천의 용’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오른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을 강화했다. 이론적으로 누구나 노력만 하면 명성과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예외가 원칙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성공의 월계관을 쓰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과거 계층 이동이 제한됐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운’하다고 여긴 것과는 달리, 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무능’이라는 낙인을 찍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런 사회 구성원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동등한 조건에서 출발했는데 누구는 성공하고 (보다 정확히는 자신이 준거집단으로 삼는 대상) 자신은 정체돼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에 사람들은 기를 쓰고 성공을 향해 질주했다.
신분제의 폐지는 응당 정의로운 진보였지만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상황을 악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끊임없는 무한 경쟁, 무력한 불안감, 만성적인 피로감 등은 중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의 불행이다. 과거에는 탄생과 동시에 부모의 출신에 의해 운명이 결정됐고 속 편히 사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집착적인 자기 계발 및 노동 숭배 분위기 속에서 일상의 여유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점차 가속화되는 삶 속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인간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기계로 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20세기에 폭발적으로 크기를 키우던 야망은 21세기 접어들어 그 세가 한 풀 꺾인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아메리칸드림이 종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계층이동의 유연성은 20세기 대비 현저히 경직됐다.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계급사회로 회귀하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해봤자 안 된다’는 부정성이 확산됐다. 과거에는 당연한 인생의 과업으로 여겨졌던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과 같은 것들을 달성하기 어렵게 되자 이를 포기하고 야망을 거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래에 자동화의 발달로 인해 일자리 및 노동 소득이 현저히 줄어들 것임을 고려하면, 이런 추세는 심화될 여지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미래를 낙관하고 야망을 장려했던 20세기는 무척 특별한 시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한편, 야망의 의미는 크게 와전된 경향이 있다. 교육학자 윌리엄 클라크가 말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흔히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명성, 부 따위를 추구하라는 말로 오해된다. 그러나 해당 명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그렇다. 여기에서 야망의 의미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인격도야를 뜻하는 것이지 결코 세속적, 물질적 가치 따위가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야망을 가슴속에 품었던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소설의 배경인 1920년대 미국은 재즈시대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상승하고 경제 부흥기를 맞게 되자 미국인들은 향락과 사치를 즐겨댔다. 사실 이 당시 묘사된 위선, 허영, 허세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표현함으로써, 개츠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데, 나는 이에 동의한다. 우리는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레지스탕스끼리 서로 같은 편임을 은밀히 확인하는 표식이다. 속물근성 만연한 현대사회에 불편함과 더불어 최소한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표이다.
<위대한 개츠비> 소개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총 네 명이다. 개츠비와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 데이지의 남편 톰. 그리고 이들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데이지의 사촌 닉. 미국 서부의 명문가 자제인 닉은 서부 대비 화려한 번영을 구가하던 동부로 이주한다. 동부로 향해 닉이 정착한 곳은 개츠비의 옆집이다. 개츠비는 자신의 대저택에서 수시로 성대한 파티를 주최하고 영향력을 과시하는 지역 유지다. 인상적인 것은 개츠비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해서 그렇게 큰돈을 벌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온갖 추축들이 난무하지만 아무도 개츠비의 출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샴페인을 터뜨리고 밤새 유흥을 즐길 때도 개츠비는 항상 사교의 중심에서 동 떨어져 있다. 닉은 수수께끼 같은 이웃 개츠비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던 어느 날, 닉은 개츠비로부터 파티 초대장을 받는다. 닉은 호기심에 끌려 파티에 참가한다. 언제나처럼 떠들썩한 개츠비의 파티 현장. 그곳에서 닉이 개츠비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닉이 개츠비의 첫인상을 묘사하는 다음의 장면은 개츠비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내가 개츠비입니다." 그가 불쑥 말했다. "뭐라고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 실례했습니다."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형씨. 제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했군요." 그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이상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미소였다. 잠시 동안 영원한 세계를 대면한 미소였고, 또한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며 당신에게 온 정신을 쏟겠다고 맹세하는 듯한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 믿는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최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분명히 전달받았다고 말해 주는 미소였다.
개츠비와 인사를 나눈 후 닉은 개츠비가 왜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초대했을까 의아해한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여기엔 꽤나 복잡한 사연이 있다. 군인 장교였던 개츠비는 한 때 데이지와 연인 사이였는데 전쟁이 발발하고 참전하게 된다. 결국 데이지는 개츠비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집안이 좋은 톰과 결혼하게 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집 맞은편에 위치한 대저택을 구입하고 그녀가 사는 곳을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본다. 그러다 데이지의 사촌인 닉이 자신의 옆집으로 이사 온 것을 알게 되자 개츠비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바로 닉을 자신의 파티에 정중히 초대하고 친분을 쌓은 뒤 데이지와 자연스럽게 재회하는 것이다. 개츠비가 닉에게서 원하는 것은 사랑의 큐피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닉의 주선 덕분에 개츠비와 데이지는 재회에 성공한다. 오랜만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두 사람. 개츠비는 데이지가 기혼녀인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는 그들의 애틋한 모습은 좋았던 그때 그 시절과 다름없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열렬히 구애하고 그녀 역시 옛사랑과의 만남에 흔들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닉은 개츠비와 더욱 가까워지고 그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야심으로 똘똘 뭉친 개츠비의 원래 이름은 개츠이며 그의 출신은 사실 지극히 평범하다. 개츠비는 세속적 성공이나 야망과는 거리가 먼 농부 부모 밑에서 자라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 개츠비는 상류 사교계의 여왕 데이지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변변찮은 그의 배경은 항상 마음에 콤플렉스로 남아있다. 의욕 넘치는 가난한 청년이었던 개츠비는 우연히 나이 많은 부자 코디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는다. 코디의 조수로 일하면서 개츠비는 그의 환심을 사게 되고 사업으로 큰돈을 버는 방법을 배운다. 그때부터 청년 개츠는 ‘개츠비’라는 야망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나고 세속적 성공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개츠비가 데이지와 재회한 이후 그들의 애정행각은 더욱 대담해진다. 톰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개츠비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개츠비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톰과 개츠비 사이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톰은 개츠비가 미천한 출신이라는 것을 걸고넘어지며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다. 갈등이 고조되고 개츠비는 톰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탄선언을 한다. 바로 데이지가 사랑하는 것은 개츠비 본인이며, 그녀는 톰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길 원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이 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데이지의 배신에 톰은 격노하고 그녀를 설득한다. 데이지는 큰 혼란에 휩싸인다. 개츠비와 함께 떠나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남자와 설레는 환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톰의 곁에 남는다면 진실된 사랑은 없지만 경제적 풍요가 보장된다. 닉이 데이지를 묘사한 것을 보면 그녀가 속한 세계 – 닉이 체험한 속물근성이 만연한 미국 동부 – 에 개츠비가 들어설 틈은 없어 보인다. 닉은 무책임하게 행동하면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드는 톰과 데이지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다. 반면 닉은 개츠비와 우정을 쌓으면서 그의 진실된 모습에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게 된다. 닉은 개츠비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톰과 데이지를 힐난한다.
"그들은 모두 썩어 빠졌어요. 당신은 그 사람들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오!"나는 그때 그렇게 말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보낸 유일한 찬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중에는 그 뜻을 이해한 듯 얼굴 가득 밝은 미소가 번졌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기다렸지만 결국 그녀는 오지 않고 그는 톰의 모략 때문에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된다. 톰과 데이지를 포함해 개츠비의 집에서 파티를 즐겼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개츠비의 죽음을 외면한다. 오직 닉과 극소수의 주변 인물들만이 개츠비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오로지 성공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야망을 연료로 삼아 질주했던 개츠비. 닉이 개츠비를 떠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츠비는 오로지 초록색 불빛만을 믿었다. 그것은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가슴 벅찬 미래였다. 그 미래가 우리를 교묘히 피해 간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팔을 더 멀리 뻗을 테니까. 그러면 마침내 어느 상쾌한 아침에 … 그렇게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맺음말
청년 스콧 피츠 제럴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거절당한다. 이 경험은 그가 훗날 <위대한 개츠비>를 쓰는 데 많은 영감을 줬다. 스콧 피츠 제럴드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사교계 명사가 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계급에 대한 콤플렉스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마치 개츠비처럼 말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 내가 보기에,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성공이라는 목적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었을 뿐이다. 이미 경제적인 신분 상승을 달성한 개츠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숙제는 데이지라는 상류 사교계의 여왕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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