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도전하는 인간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도전하는 인간

인간의 역사는 곧 도전에 대한 기록이다. 오늘날 인류가 정치, 사회, 경제, 과학, 의학 등 각종 분야에서 일궈낸 상당한 수준의 성과는 누군가의 도전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인간은 도전하는 존재이다. 익숙함을 거부하는 것, 관습의 틀을 파괴하는 것,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것, 가보지 않은 길을 탐험하는 것, 한계를 시험하는 것,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전이다.


도전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손쉽게 도전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스포츠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강인한 정신력, 의지, 협업, 우연성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현장에서 땀 흘리는 선수의 모습은 관중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사력을 다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은 분명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스포츠가 인기 있는 이유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고 극적인 결과를 연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짜릿한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사람과의 경주에서 승리한 350마력 자동차에게서는 그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인간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도전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올림픽의 구호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이다. 선수들은 4년 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국제무대에서 발휘한다. 올림픽의 묘미는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기록이 매번 경신되고 이변이 탄생하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올림픽의 기초 정신이 누가 승리했는지가 아닌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이라는 점이다.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자는 것이 올림픽의 원래 취지이다. 따라서 올림픽은 본디 모든 참여자가 즐기는 지구촌 축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한편, 도전의 대상 역시 자연, 경쟁자, 신기록 등 다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전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향하는 산악가, 달 탐사를 위해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 수 차례 도자기를 깨고 다시 새 작품을 만드는 장인, 7번 KO를 당하고도 다시 일어서는 권투선수, 올림픽 신기록을 깨기 위해 맹훈련 중인 선수, 글에 쉼표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시인. 행태는 상이할지라도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도전하고 있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최대의 목적은 바로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열정은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남들이 가는 익숙한 길과 가보지 않은 길을 마주한다. 다수는 도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익숙한 길을 가지만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 이때 어떤 길을 택하든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순전히 본인의 몫이며 자신이 내린 선택에 만족할 수도 불만족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전자의 삶은 일반적으로 풍미가 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삶에는 ‘실패’가 첨가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도전자는 실패를 경험한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실패야말로 도전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실패는 시행착오라는 터널을 지나 성공이라는 목적지로 도달하는 초기 단계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쓰고 있는 왕관은 실패를 질료 삼아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장려될 필요가 있다. “위험하게 살라”는 니체의 조언은 참으로 타당하다.


도전과 실패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을 고려하면 청춘은 축복이다. 실패할 자유와 새로운 가능성이 무한한 청춘이야말로 도전하기에 최적의 상태다.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은 청춘은 도전하고 실패해도 충분히 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춘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도전을 주저한다. 그리고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옹졸한 선택을 합리화하고 스스로 채운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조금이라도 젊을 때 과감히 도전해봤더라면” 하지만 뒤늦게 후회해봐야 청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버나드 쇼의 말은 일리가 있다.


성공과 실패 그리고 도전하지 않음. 이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물론 성공이지만, 차악은 실패 그리고 최악은 도전하지 않음이다.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우주에 잠재된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며,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으로서의 직분을 소홀히 하겠다는 뜻이다. 더러는 청년이면서 이미 노인의 삶을 사는 반면 (혹은 죽어있거나), 어떤 사람은 노인임에도 청년의 삶을 산다. 이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본인의 생을 도전이라는 도끼로 흠집 내고 자신만의 형상으로 깎아나가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노인과 바다>는 도전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노쇠한 어부가 바다를 무대로 사투를 벌이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온갖 시련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육신은 비록 노쇠했을지라도 정신은 분명 혈기왕성한 청춘이다.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였던 요기 베라는"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 책에서도 유사한 의미의 명대사가 등장한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도전하는 인간은 몰락하면서도 실패에 굴복하지 않는 자이다. 그래서 도전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노인과 바다> 소개

쿠바의 작은 어촌 마을.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상태다. 소년 마놀린은 산티아고를 존경하지만,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인 살라오로 불리며 무능력하고 한물 간 어부 취급을 받는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처음 사십일 동안은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이제 노인이 누가 뭐래도 틀림없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말했다. ‘살라오’란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로 옮겨 타게 되었는데, 그 배는 첫 주에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소년은 날마다 노인이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늘 노인을 마중 나가 노인이 사려 놓은 낚싯줄이며 갈고리며 작살이며 돛대에 둘둘 말아 놓은 돛 따위를 나르는 일을 도와주었다. 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 조각으로 기워져 있어서 돛대를 높이 펼쳐 올리면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


고기를 잡지 못한 지 85일째 되는 날, 산티아고는 언제나처럼 홀로 바다를 나가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하지만 노인의 조각배는 힘이 센 청새치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그는 바다에서 3일 동안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노인은 청새치를 작살로 죽이고 완전히 포획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인상적인 것은, 산티아고가 청새치에게 묘한 연민과 존경을 느끼며 그와 교감한다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마치 사람처럼 대

하고 그의 강건한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대어를 낚았다는 사실에 부푼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산티아고. 하지만 기쁨도 잠시, 거대한 청새치의 살점을 노리는 상어의 습격을 받는다. 노인은 망망대해를 무대로 상어 떼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한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는 다음의 대사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패배와 파멸의 차이는 정신이 굴복했냐 안 했느냐의 여부이다. 예를 들어,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산티아고는 파멸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배는 굶주리고 재정상황은 열악해졌다. 하지만 그의 올곧은 정신만은 꿋꿋하게 좌절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산티아고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


산티아고는 거센 상어의 공격에 맞선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던 청새치는 상어들에게 물려 이미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이다. 노인은 청새치에게 위로의 말을 걸며 상어 떼를 물리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노인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대어를 낚고 바다에서 상어와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 홀로 바다에서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던 산티아고는 소년 마놀린을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기진맥진한 산티아고는 깊은 잠에 빠지고 사자가 나오는 꿈을 꾸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노인이 거둔 허망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념과 도전하는 용기는 가히 밀림의 왕 사자와 견줄 만하다.


길 위쪽의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맺음말

헤밍웨이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지독한 슬럼프에 시달릴 즈음이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 이후, 변변찮은 작품을 내지 못해 문학 평론가들은 그가 작가로서 생을 다했다고 혹평했다.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을 패잔병처럼 묘사하는 초기 대목에선, 헤밍웨이가 느낀 우울함과 무력감이 담겨있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는 출간 직후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그는 화려하게 문단에 복귀하며 노벨상을 받았다. 슬픔에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노인의 모습에서, 헤밍웨이가 작품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도전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도전해보길 바란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말고,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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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0EzRKL8k5g&t=4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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