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녀를 편애한다.

엄마의 트로피와 희생양

by 정민유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녀를 편애한다.


우리 집 2남 2녀 중에서 엄마는 큰 남동생과 여동생을 편애했다. 어릴 때는 단지 그 둘의 외모가 뛰어났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자녀들 중 두 명은 엄마의 '트로피'였다는 거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녀를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트로피인 자녀는 완벽한 모습을 갖게 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그런 모습은 엄마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큰 남동생은 아들인 데다가 태어날 때부터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나 전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엄마에게 큰아들은 우상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나중에 사춘기가 되고 엄마의 통제를 벗어난 동생 때문에 엄청 우울해했는데 결국은 엄마가 자랑할 트로피가 없어져 슬펐던 거다.


그리고 여동생은 연예인처럼 예뻤고 밖에 데리고 다니면 독일인형 같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엄마는 그런 여동생을 항상 예쁜 옷을 입혀서 데리고 다녔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좋았던 거다. 트로피인 자녀는 엄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빠와 다투고 집을 나가겠다고 짐을 싸면서 자고 있는 여동생을 깨워서 " 엄마 집 나갈 거니까 너도 짐 싸서 가야 돼"라고 했다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다. 유치원 나이밖에 되지 않은 여동생이 감당하기엔 엄청난 부담감이었으리라.


특히 엄마는 어린 여동생을 정서적으로 의지했다.

그 둘은 완전한 밀착관계였다. 엄마가 아빠와 다투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사역할을 했다.

엄마 편을 들어 아빠에게 대드는 여동생을 아빠도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엄마의 감정받이 역할을 했다. 엄마는 우울하거나 힘들 때마다 여동생에게 얘기하며 자기 연민에 빠졌다. 여동생은 그런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며 기쁘게 해 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반면 나는 엄마의 '희생자'였다.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내향적이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엄마의 딸로서 자랑할 게 없는 아이. 하물며 난 엄마를 추앙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어도 엄마의 태도가 옳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런 내가 못마땅했겠지...


트로피인 여동생과 팀을 이룬 엄마는 항상 날 비난하고 공격했다.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껏 쏟아내는 대상이었다. 여동생과 다툼이 생길 때 한 번도 내편을 들어준 적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여동생과 엄마는 한 편이었으니까..


사랑을 주지는 않으면서 큰딸로서의 의무만 강조했다.

"너는 너밖에 모르고 이기적이다"

평생 엄마로부터 이 얘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인 사람이더라.


엄마는 자식을 많이 낳아서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게 우리들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다른 집 자식들은 안 그런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극성이냐?"

" 강한 남편 만나서 애들이 다 극성이다"

" 너희들 때문에 못살겠다"

짜증과 신경질적인 말로 자녀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40대 초반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거리를 두려고 연락을 안 하고 지내본 적이 있다. 그러면 엄마가 전화가 와서

"넌 내가 전화 안 하면 전화를 안 하냐?"

"넌 엄마가 보고 싶지도 않냐?" 하면서 또 죄책감을 유발했다. 사실은 전화를 안 하고 견디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었는데... 악몽을 꾼 적도 있고.

결국은 거리 두기도 실패였었다.


평생 엄마의 트로피인 여동생과 희생양인 내가 가까이 친하게 지내는 걸 엄마는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여동생에게는 내 흉을 보고 날 미워하게 만들었고 나한테는 여동생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니 나와 여동생의 관계가 좋았을 리 없다. 난 엄마가 여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아 질투하는 마음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여동생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느껴진다.


엄마와 정서적으로 융합이 되어 있어 엄마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유독 사랑했다고 생각하기에 엄마의 자기애적인 부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데 더 죄책감을 느꼈으리라.


자매끼리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고 갔었다. 그런 우리 모습이 정말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무슨 삼각관계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말로는 "자식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 그게 엄마는 제일 기쁘다"라고 한다.

스스로 자기를 인식하는 게 불가능해서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수밖에..


평생 엄마의 감정받이 역할을 해주었는데 정작 여동생이 힘들어지니까 엄마는 여동생의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했고 나 몰라라 했다. 막내남동생과 여동생이 다툼이 생기자 엄마는 은근히 남동생 편을 들었다. 거기서 여동생은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엄마의 트로피는 잘 나가는 막내동생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한동안 여동생은 혼란에 빠지고 우울해졌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그 고통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이제는 여동생도 엄마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퍼붓는 사랑이 건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편애를 받은 사람이나 편애의 상처가 있는 사람이나 결국은 다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이었다.


나도 이렇게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상처받았던 경험을 소환하여 다시 글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처럼 엄마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 힘들지만 나의 경험을 쓰고 있다.


내 글을 읽으며 '내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나르시시스트여서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하며 하루빨리 깨닫고 그 늪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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